[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한 수 아래 상대가 가드를 빈틈없이 올리고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그 위로 공격을 해야 하는 것이 강팀의 영원한 숙제다. 한국이 아시안컵 첫 경기 필리핀전에서 숙제를 겨우 풀었다.

7일 밤 10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위치한 알막툼 스타디움에서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1차전을 가진 한국이 필리핀을 1-0으로 꺾었다. 한국은 같은날 키르키스스탄을 2-1로 꺾은 중국에 이어 조 2위에 올랐다.

필리핀은 대회 전 4-3-1-2 포메이션을 쓰는 팀으로 알려졌지만 한국전에서 공격수를 한 명 줄이고 수비수를 한 명 늘려 5-4-1 포메이션으로 나왔다. 노골적인 수비를 위한 선수 배치였고, 실제로도 수비에 치중했다.

몸이 무겁고 민첩성이 떨어진 상태의 한국 선수들은 필리핀 선수들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공을 다루지 못했고, 퍼스트 터치가 조금만 투박하면 필리핀 선수 두셋이 달려들어 재빨리 빼앗아냈다. 그런 와중에도 한국은 크로스, 패스 연계 등 다양한 방법으로 슛을 시도했지만 완벽한 기회를 만들지는 못했다. 전반전에 8회나 슛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골과 다름 없는’ 득점 기회는 없었다.

공격적인 전술 변화 이후 겨우 한국이 골을 만들었다. 후반 13분 부상당한 기성용 대신 더 공격적인 미드필더 황인범을, 후반 19분 공격형 미드필더 구자철 대신 이청용을 투입했다. 포메이션은 그대로지만 좀 더 공격적인 선수들이 투입되면서 한국의 경기 운영이 달라졌다. 특히 좁은 지역에서 패스를 연결하는 것이 특기인 이청용은 선발 선수들보다 훨씬 가벼운 몸놀림과 판단 속도로 패스를 연결했다. 결국 투입된 지 3분 뒤 이청용의 깔끔한 연계 플레이가 황희찬의 어시스트를 거쳐 황의조의 골이 됐다.

이번 아시안컵은 참가팀이 기존 16팀에서 24팀으로 늘어나면서 참가팀들의 수준이 떨어졌다. 한국과 필리핀, 키르키스스탄의 객관적 전력차는 크지만, 이는 상대가 노골적인 수비 위주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에 앞서 첫 경기를 가진 호주는 요르단의 완강한 수비에 막혀 골을 넣지 못하고 결국 이변의 희생양이 됐다. 같은 조의 중국도 명백히 전력이 앞서는 가운데 키르기스스탄 수비를 뚫지 못해 고전하다가 상대 골키퍼의 자책골로 운 좋게 승리했다.

한국은 조별리그 내내, 상대에 따라서는 토너먼트에서도 계속 상대의 집요한 수비를 맞이해야 한다. 강팀 한국은 속공이 어려운 경기 흐름 속에서 어떻게든 상대 수비를 흔들고, 좁은 틈이 생겼을 때 공을 투입해 득점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역습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득점만큼이나 중요하다. 정상적인 수비가 아니라, 경기 내내 웅크리고 있다가 단 몇 번만 빠르게 튀어나오는 상대 공격수를 막아야 한다. 한국은 필리핀을 상대로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내주며 역습 제어에 어려움을 겪었다. 필리핀의 속공을 혈혈단신 책임졌던 하비에르 파티뇨는 한국 수비가 3명 달라붙었을 때도 좁은 틈으로 공을 빼내 속공을 성공시켰다. 오히려 한국 수비수가 한 명만 막고, 나머지 선수들이 뒤에서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면 파티뇨의 돌파는 2중 수비에 막혔을 상황이었다. 한국 수비수들은 급히 공을 빼내려고 일제히 덤볐다가 한 번에 돌파 당했다.

한국의 다음 상대는 12일 새벽 1시 알아인에서 만날 키르키스스탄이다. 필리핀보다 더 전력이 약한 것으로 평가 받는데, 그만큼 더 집요한 수비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 필리핀전을 재료 삼아 ‘절대 약팀’을 상대하는 방법을 더 연구할 필요가 생겼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