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성남] 김정용 기자= 성남FC는 스타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고 고른 활약으로 승격한 팀이다. 그래서 주장 서보민의 역할은 중요했다.

서보민은 원래 포지션인 윙어가 아니라 윙백으로 시즌 대부분을 보냈다. 그만큼 덜 돋보였을 것 같지만, 오히려 득점이 예년보다 늘어났다. 또한 ‘인싸(친화력이 좋은 사람을 뜻하는 유행어)’ 스타일의 주장으로서 팀 전체의 조직력을 향상시킨 중심이었다. 한 성남 관계자가 “서보민이 주장을 맡지 않았다면 승격할 수 있었을까”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다.

탄천종합운동장에서 23일 서보민을 만나 승격 비결에 대해 물었다. 서보민은 전술, 팀 운영, 선수들의 끈끈한 관계 등 다양한 시각에서 성남 우승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농담을 유쾌하게 받아칠 줄 아는 서보민은 ‘인싸’가 맞는 것 같았다.

 

다음은 서보민과 한 인터뷰 전문. 

- 2016년 겨울에 강원 소속으로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성남을 강등시킨 주인공이시죠. 이젠 그 팀에서 승격하게 됐네요.

맞아요(웃음). 성남에 와서 처음 한 인터뷰부터 기분이 묘했어요. 제가 떨어뜨린 구단에 왔으니까. 제가 다시 1부로 올려놓겠다고 당차게 말을 했어요. 그게 실제로 이뤄졌네요. 지금 생각하니 정말 이상하네요. 신기하기도 하고.

 

- 승격은 기대 이상의 성적입니다. 성남으로 이적하면서 이런 결과를 예상한 건 아니었을텐데요.

동계훈련 때 일곱 번 정도 연습경기를 했는데, 한 번도 못 이겼어요. 상대가 프로건 대학팀이건 이길 수가 없더라고요. 코칭 스태프가 올해는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하셨어요. 그런 줄 알았죠. 그런데 개막전에서 저희 이지민 선수가 퇴장을 당하면서 포메이션을 스리백으로 바꿨거든요. 그때 경기력이 확 좋아지더라고요. 그리고 5연승을 하면서 기대를 갖기 시작했고, 시즌 중반까지 선두권을 유지하면서 승격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 포메이션 변화가 어떻게 성적 향상으로 이어진 건가요?

저희가 패스 게임을 주로 하는데, 포백일 때는 양쪽 풀백이 많이 올라가다보니까 수비 숫자가 부족해서 역습에 대한 위험부담이 늘 있었어요. 그 문제가 스리백으로 해결된 것 같아요. 중앙 수비가 세 명이니까 풀백이 더 공격적으로 할 수 있게 됐고. 그래서 공격이 살아났죠. 중앙 수비가 국가대표급이잖아요. 그 부분도 한 몫 한 것 같고요.

 

-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선수가 바로 서보민 선수인데요. 원래 공격자원으로 분류돼 왔는데, 스리백 도입 후에 윙백으로 뛰었잖아요.

동계훈련을 다 공격수로서 했고 첫 경기도 공격수로 했는데, 그 경기에서 퇴장이 나오면서 감독님이 고민하셨던 것 같아요. 신인 사이드백 자원을 넣느냐, 포지션 변경을 해서 저를 내리느냐를 두고요. 감독님이 저를 부르셔서 ‘왼쪽 가능하겠냐’고 하셔서 가능하다고 말씀드렸죠. 사실 오른쪽 수비은 본 적 있지만 왼쪽은 없었는데 해 보겠다고 했어요. 스리백의 사이드백은 예전에도 해 본 적 있으니까 계속 봤는데 그게 올 시즌 잘 먹힌 부분인 것 같아요.

 

- 공겨수였다가 수비수가 됐으니 답답한 건 없었나요? 득점 기회 때 문전에 있고 싶다, 내 슈팅력을 더 보여주고 싶다, 그런 거요.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포지션이 바뀌고 나서 경기장에 들어갈 때 골을 넣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잘 맞는 걸 찾았죠. 아무래도 제 뒤에 (윤)영선 형이 있으니까 제가 공격적으로 해도 뒤에서 잘 ‘카바’해 주거든요. 그런 면에서 영선이 형과 잘 맞았던 것 같고. 수비적인 부분에서 부담을 덜 수 있었죠.

영선이 형은 같이 뛰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죠. 러시아월드컵 가기 전에도 경기력이 좋았어요. 월드컵 갈 때 우리끼리 작별인사를 다 했어요. 강원FC로 이적하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월드컵에서 독일전에서 뛰었죠. 그런데 다시 성남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죠. (*윤영선이 상주상무 소속으로 복무 중이던 지난 1월 구단끼리 강원 이적을 합의했으나, 규정 위반으로 무산됐다)

 

- 풀백으로 전환했는데도 골은 프로 데뷔 후 가장 많이 넣었네요. 기존 최다골이 시즌 3골, 이번 시즌은 5골입니다.

그러니까요. 부담을 더니까 골도 많이 넣고. 마음의 부담을 더는 게 역시 중요한 것 같아요.

 

- 슈팅 기록을 보면 더 재미있네요. 공격자원일 때보다 오히려 슛을 많이 때렸어요. 2015년 강원 소속으로 36경기 74슈팅을 시도한 것이 최고 기록이었는데, 올해는 34경기 만에 74슈팅을 날렸어요.

그래요? 제 포지션에 상관 없이 상대 진영에서 놀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우리 팀 경기력이 좋으니까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래서 찬스도 더 많이 난 것 같고.

 

- 스스로 꼽는 이번 시즌 최고 명장면은 뭔가요? 원래 중거리 슛을 인정 받는 선수였는데요.

부천전 왼발 슈팅(4월 16일, 2-1 승)이 가장 기억에 남았죠. 짜릿하기도 했고. 홈 관중들 앞에서 세리머니도 시원하게 했고.

그때 아마 부천 선수가 한 명 퇴장당해서 저희가 여유 있는 상황이었어요. 부천이 지고 있는 상태여서 밀고 나왔는데. 제가 역습으로 치고 나갔죠. 그때 저희 팀 선수들이 좀 지쳐 있었어요. 그런데 ‘시원하게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때렸는데 연습 때도 잘 안 나온 그런 장면이 나와서 굉장히 좋았죠.

 

- 그럼 명장면은 아니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좋았던 건요?

수비수로 포지션을 전환하고 나서, 상대 선수와 격한 몸싸움 할 때 희열을 느껴요. 개인적으로는 아산과 할 때, 안현범 선수와 맨투맨을 했거든요. 감독님이 경기 전에 ‘안현범이 잘 뛰는지 네가 잘 뛰는지 보겠다’라고 하신 거예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깨물어서라도 막아야겠다. 격하게 뛰었던 기억이 나요. 넘어지면 머리까지 대 가며 몸싸움하고. 안현범 선수가 굉장히 잘 뛴다고 들었는데 그 점에서 지지 않았고 몸싸움도 지지 않았어요. 공차는 걸 다 떠나서 그날만큼은 뛰는 건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 윙백으로 전환하고 주력, 활동량에서 스스로 강점을 느끼는 것 같네요. 원래 ‘체력왕’ 이미지는 아니었는데요.

체력운동 같은 거 하면 잘 뛰는 편은 아니에요. 중간보다 약간 위 정도인데. 경기장 체력은 괜찮더라고요. 상대가 나보다 먼저 힘들어하는 거 보면 희열을 느끼고, 더 뛰게 되거든요. 정신적인 차원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 이번 시즌 주장입니다. 축구 인생에서 몇 번째 완장이었나요?

초등학교 때 해 봤고, 고등학교 때 몇 개월, 성인 되고는 이번이 처음이었죠.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죠. 처음 완장 차고 들어갈 때 거꾸로 차서, (완장에 새겨진) C가 반대로 돼 있는 걸 보고 감독님이 똑바로 차라고 하실 정도로 어설펐어요. 저는 ‘내 목소리가 제일 커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어요. 그래서 경기 뛰고 나면 목이 항상 아팠죠. 그러면서 성장한 것 같아요. 팀을 생각하는 선수가 됐죠. 철도 많이 들었고.

 

- 어떤 주장이 되고 싶었나요? 그 모습과 실제 모습을 비교해 본다면?

강원 있을 때 백종환 형님과 김오규 형님을 멘토로 생각했어요.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좋은 주장이라서 따라하고 싶었죠. 그래서 올 시즌 저도, 말보다 행동으로 해야 애들이 따라올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희생하는 선수가 되려 했어요. 형들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얼마 전에 시즌 끝나고 선수들과 맥주 한 잔 하는데 어린 선수들이 이야기 해주더라고요. 제가 동생들 편하게 해 주기 위해 스스럼없이 다가가려 했는데, 어린 선수들이 그런 부분들을 괜찮아했던 것 같더라고요. 한번 그런 분위기가 생기자 심지어 영선이 형도 어린 선수들에게 편하게 대해 주시고. 그게 먹혔던 것 같아요.

- ‘인싸’ 스타일의 주장이셨군요.

(웃음) 원래 무게 잡는 성격이 아니어서요. 그러면 역효과가 날 것 같더라고요.

 

- 후배들에게 다가가려면 세대차이도 느꼈을 텐데.

애들이 쓰는 언어만 봐도 그렇죠. SNS 댓글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물어봐야 뜻을 알고. 애들이 그런 거 물어보면 아재라고 놀리거든요. 그렇지만 이걸 소재로 편하게 대화 한 번 더 하는 거니까 불만 없어요. 저도 ‘아싸’라는 말은 원래 대학 때부터 썼는데 ‘인싸’는 몰랐어요. 또 뭐더라? 영어 단어를 조합해서, JMT인가? 그런 건 도저히 뜻을 알 수가 없잖아요. 처음에는 TVN 같은 채널 이름인 줄 알았어요. 지금은 뜻을 알지만요.

저도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는데, 주장이 되자 사진을 올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5월 이후로는 한 번도 안 올렸어요. 구설수에 오를까 봐.

 

- 주장으로서 감독 등 코칭 스태프들과 어떤 이야기를 했나요?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힘을 많이 실어주셨어요. 제 입지가 커야 애들이 말을 듣고, 팀을 하나로 뭉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제 건의를 웬만하면 들어주셨어요. ‘훈련 힘드니까 오늘 하루 쉽고 재미있는 훈련 하자’고 말씀드리면, 훈련 프로그램을 짜 오셨다가도 ‘그래 오늘은 보민이 말대로 레크리에이션 한다’고 하셨죠. 그런 부분이 코칭스태프에게 굉장히 감사해요.

감독님은 앞에서는 무서운데 막상 문 두들기고 들어가면 대화하는 걸 좋아하세요. 경기 진 날에도 용기 내서 찾아가 ‘하루 더 쉬게 해 달라’ 하면 그렇게 화나신 상태에서도 알았ㄷ며 힘을 실어주시고요.

 

- 패배한 날 저녁에 감독에게 휴식 요청을 했다고요? 쉽지 않은 일인데요.

네. 서울이랜드 상대로 홈에서 졌을 때일 거예요. 그때 감독님이 화가 나셔서 선수들을 돌려보내지 않고 저녁 9시 미팅을 잡으셨거든요. 그 때도 찾아갔었죠. 영선이 형과 함께 갈 때도 있고, 혼자 갈 때도 있었어요. 대화로 그렇게 풀어지면 하루 더 쉬고 오라고 하신 적도 있었죠. 네? 이 정도 주장이면 수당을 더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요? 받을 만한 것 같긴 한데….

 

- K리그에서 가장 스로인을 잘 던지는 선수로도 유명한데, 올해는 많이 보여주지 못했어요.

올해는 많이 보여주지 못했죠. 어시스트라든가 그런 결과가 있어야 회자될텐데 그러지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아쉬운 건 전혀 없어요. 올해는 손으로 못 한 걸 발로 해서 개인적으로 최고의 성적을 냈으니까. 제가 공격수면 상대 진영에서 스로인할 일이 많을텐데 수비수였어서 기회가 적었던 것 같아요.

 

- 빌드업 할 때도 롱 스로인은 전술적 가치가 있잖아요.

그런데 올해 그라운드에 물을 뿌리는 게 의무화되면서 저뿐 아니라 스로인을 멀리 던지는 선수들에게 불리해졌어요. 물기가 있으면 멀리 던지기 힘들거든요. 별 짓 다 해봤어요. 손에 핸드볼 선수들이 쓰는 ‘찐득이’를 묻혀봤고, 장갑도 껴 보고 다 해봤는데 물이 있으면 소용이 없더라고요. 이젠 결정적인 상황이 됐을 때만 벤치에서 수건을 건네받아 닦은 뒤 던져야죠.

 

- 성남은 스타 없이 승격한 팀으로 불립니다. 그 중 가장 고마운 선수를 꼽는다면?

이학민이요. 우리 팀의 비공식 부부장 같은 거거든요. 공식적으로는 이지민, 연제운이 부주장인데 시즌 중간에 감독님이 학민이에게도 부주장 타이틀을 줬어요. 그걸 본인이 비공식이라고 하고 다녔어요. 제가 선발로 못 뛴 기간에 학민이가 대신 완장 차고 들어가서 제 역할을 해 줬어요. 원래 떠드는 선수가 아닌데 완장을 차니까 소리를 잘 지르더라고요.. 그래서 제일 감사했죠.

 

- 승격 이후에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뭔가요?

궁금해요. 저희가 K리그2에서 많이 압도해서 승격한 건데, 과연 K리그1에서 통할까 궁금하더라고요. 이 멤버 그대로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보강이 있겠죠. 도전해보고 싶고. 재미있을 것 같아요.

 

- 휴가 기간 동안 뭘 할 건가요?

어지간하면 여행이요. 그리고 C급 지도자교육에 참가해요. 미래를 준비해야죠. 저는 프로축구연맹을 통해 신청한 게 아니고 혼자 인터넷으로 신청해서 ‘선수 조’가 아니라 일반 조에 편성됐어요. 일반 조에도 최호정, 김교빈 등 프로가 몇 명 있긴 하더라고요. 양산에서 약 2주 동안 공부해야죠.

 

- 별명 중 ‘반건조 차인표’라는 게 있어요. 활약상이 좋으면 팬들이 ‘반건조’를 떼고 차인표라고 불러주기로 했다면서요. 승격했으니 이제 ‘생물 차인표’가 된 건가요?

그 팻말을 만드신 팬에게 직접 선물 받았어요. 그때 제가 ‘내년에는 더 예쁘게 만들어주세요’라고 했더니 만들어주신대요. 어떤 차인표일지는 팬들께서 해 주시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기대가 됩니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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