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오사카(일본)] 김정용 기자= 황의조는 만화 ‘원펀맨’의 주인공 사이타마를 닮았다는 이야기에 절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외모에 대해서는 선수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더라도 여전히 닮은 점은 있다. 황의조나 사이타마나 태연한 표정으로 상대의 수비를 무너뜨린다는 점이다.

황의조의 인생은 세 달 만에 바뀌었다. 7월까지 황의조는 월드컵 인기와 동떨어진 선수였고, 8월 초에는 ‘인맥 논란’으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동갑내기 손흥민이 유럽에 머무를 수 있게 해 주며 영웅 취급을 받은 데 이어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황의조를 만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사카부(府) 스이타시(市)에 위치한 감바오사카 클럽 하우스에서였다. 이야기를 하다 점심때가 되자, 5분 거리에 있는 감바 선수들의 단골집으로 향했다. 황의조는 “요즘에는 골을 계속 넣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와요”라고 말하며 동료 선수들 사이의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1. 급성장한 결정력에 대해

황의조의 변화는 먼저 기술적, 전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본에 진출하기 직전, 성남FC에서 황의조의 역할은 윙어였다. J리그에서도 처음부터 스트라이커로 뛴 건 아니었다. 올해 초 감바에서 윙어를 맡다가 스트라이커로 보직을 굳히면서 득점이 늘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공격수 황의조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7경기 9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황의조가 손흥민을 도울 것’이라는 전망과 달리 손흥민이 뒤에서 궂은일을 하고, 황의조가 득점에 집중하는 모습은 신선했다. 한때 ‘어디서든 슛을 할 수 있지만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황의조는 올해 하반기 결정력의 화신이 되었다.

“시즌 초에는 거의 사이드로 뛰었고, 그러다가 포워드를 보게 됐는데. 포워드가 편한 것 같아요. 최전방에 머무르며 패스를 기다리는 플레이는 일본에서 배운 것이기도 해요. 일본 선수들은 워낙 좋은 기회를 만들어서 골대까지 주니까, 적응을 한 거죠. 일본은 한국처럼 길게 때리면서 축구하지 않거든요. 잘게 썰어가며 끝까지 만들어서 골대 앞까지 가는 스타일인데. 그런 축구에 적응하다보니까 찬스가 많이 왔어요. 그러니까 J리그 진출은 도움이 많이 됐죠. 세밀함을 채울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해요. K리그에 오래 있으면서 배울 건 다 배웠고, 일본에서 새로운 걸 접한 거니까요.”

파울루 벤투 A대표팀 감독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최전방 공격수 중에서도 득점에만 집중하라는 지시를 했다. 원래 스타일대로라면 측면과 2선으로 자주 이동할 법하지만, 최근 대표팀에서 황의조는 활동반경이 좁다. 황의조의 과거 역할이 에딘손 카바니와 비슷했다면, 지금은 마치 필리포 인차기같아 보인다. 황의조는 공을 받는 빈도가 확 줄었다. 대신 황의조를 의식한 상대 센터백들이 수비라인을 끌어올리지 못하게 함으로써 동료들에게 공간을 제공한다.

“벤투 감독님은 내려오지 말고, 상대 수비를 계속 뒤로 물러나게 만들라는 말씀을 하세요. 경기 중에는 답답한 부분도 있죠. 상대팀의 두 수비수 사이에 있는 게 힘드니까. 또 공을 많이 만지지 못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계속 체력을 비축하면서 준비하고 있다가, 찬스가 왔을 때 더 효과적인 슈팅이나 스프린트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황의조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예를 들어 질문했다. 황의조는 지난 10월 우루과이를 상대로 A매치 골을 넣었다. 약 3년 만에 나온 A매치 2호골이었다. 손흥민의 페널티킥이 골키퍼 선방에 막히자 재빨리 달려들어 오른발로 밀어 넣었는데, 잘 보면 공중에 뜬 공을 낮고 빠른 땅볼로 연결하면서 골키퍼가 막기 힘든 먼 쪽으로 정확하게 찼다. 어려운 동작이었다.

“흥민이 슛이 골키퍼에게 맞고 나왔죠. 그때 저는 전속력으로 뛰는 상태였고 공도 빨랐어요. 게다가 약간 떠서 오는 느낌이라 어떻게 차야 할지 생각을 했죠. 골키퍼에게 걸리지 않으려면 깔아 차야 했어요. 그래서 뜬 공을 ‘눌러서’ 찼죠. 그런데 의도대로 잘 됐어요. 발에 맞을 때 느낌이란 게 있잖아요. 느낌이 되게 좋았고 코스도 좋았죠.”

황의조는 문전에서 단순해진다.

“골대로 차자는 생각만 할 때가 많아요. 일단 골대 안으로 차면 유효슈팅이잖아요. 골키퍼가 실수해서 들어갈 수도 있는 거고. 일단 득점 찬스가 나면 골키퍼 딱 보고, 골대 안으로만 차자는 생각만 하고, 그리고 차는 거죠. 그게 다예요.”

공격수들은 좋은 흐름이 한 번 찾아왔을 때 오래 지속하는 것에 집착한다. 황의조는 인터뷰 당시 J리그에서 4경기 연속골을 넣고 있었다. “경기에 나가기 전에 골을 넣을 것 같다는 느낌이 와요. 매 경기 한 번은 찬스가 온다고 생각하면서 준비했어요. 그게 계속 이어져서 4경기 연속골이 된 것 같아요. 다음 경기는 어웨이거든요. 경기장이 사이타마예요.” 이미 다음 경기를 생각하고 있던 황의조는 멋진 드리블에 이어 수비수들의 타이밍을 빼앗는 슛으로 사이타마 경기장에서 우라와레즈 수비를 굴복시켰다. 연속골 기록이 5경기, 그리고 지난 10일 6경기로 늘어났다.

 

 

2. 아시안게임에 대해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자카르타에 대해 할 이야기가 아직 많았다. 감바에 대한 이야기 도중 아시안게임이 툭툭 튀어나왔다.

“아시안게임에 갈 때도 구단을 설득해야 했어요. 감독이 그때 브라질 사람(레비 쿨피)독이었으니까.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더라고요. 그럴 만하죠. 유소년 대회에 나이 많은 선수가 나가는 거니까. 남미 사람이 처음 들었을 땐 왜 가야 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해요. 제가 ‘이번 한 번이다’라며 부탁을 했고, 나중에는 저를 잘 보내줬죠.”

지금은 영웅이 됐지만, 아시안게임 개막 직전까지도 황의조는 최악의 선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와일드카드 한 장을 공격수에 쓴 것, 그 대상이 석현준이 아닌 황의조라는 것 모두 비판의 대상이었다. 황의조는 김학범 감독과 함께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감독님이 그러셨어요. ‘인터넷 같은 거 보지 마라. 나도 대회 끝날 때까지 안 볼 거다. 핸드폰은 시계만 본다.’ 그래서 저도 안 봤어요. 한국에서 나쁜 이야기가 있다고 전해 듣기만 했죠. 감독님은 제가 동생들을 잘 챙기기를 바라셨어요. 그게 도움이 됐죠. 그런데 부담이 있긴 했어요. 초반 두세 경기에서 골이 안 나왔으면 부담이 더 커졌을 텐데, 마침 골이 빨리 터졌어요. 그 덕분에 부담을 털어냈고, 좋은 대회가 됐죠.”

적게는 4살, 많게는 7살까지 나이 차가 나는 후배들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 성격도 아시안게임에서 도움이 됐다. 황의조는 아시안게임 당시 이승우와 한 방을 썼다. 지금은 국가대표팀에서 이승우와 황의조가 보여주는 ‘케미’에 팬들이 관심을 보이지만, 소집 전까지 두 선수는 인연이 없었다.

“승우는 아시안게임 때 처음 만났거든요. 재미있는 친구였고. 나이차가 좀 나는 제가 볼 때는 승우의 행동거지가 그냥 귀여웠어요. 그러다 친해졌죠. 승우는 결승전 전날에도 여유가 있던데요. ‘형,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죠’ 이런 소리나 하고. 저도 긴장을 안 하는 편인데 그래도 결승전 전날에는 잠이 안 왔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우승 못 하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그때 승우는 편안하게 쉬고 있었죠.”

아시안게임에서 또 한 가지 화제가 됐던 건 감바 동료인 하츠세 료와의 만남이었다. 황의조는 결승에 진출하기 전에도 하츠세를 만나 서로를 응원하기도 했다. “대회가 끝나고 팀에 돌아와서 다시 만났을 때 하츠세에게 축하를 받았어요. 좋은 친구예요. 우리가 일본을 꺾고 우승한 거지만, 동료들 모두 저를 축하해 줬죠. (오)재석이 형에게 들었는데 여기 스이타 쪽 사람들과 감바 팬 중에서는 한국을 응원한 사람이 많았대요. 너무 신기했어요. 여긴 일본인데 라이벌 한국을 응원한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어요. ‘황의조 너도 참 대단하다’라는 말도 들었죠.”

3. 일본에서 경험한 것들에 대해

황의조가 일본에서 경험한 건 축구 스타일만이 아니라 축구 산업으로서의 가능성이기도 했다. 원래 인기 구단이었던 감바는 신축 구장인 시립 스이타 스타디움을 활용하면서 더 활력이 생겼다. 인근 구단인 비셀고베는 루카스 포돌스키,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를 영입하면서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일본은 지역밀착 활동이 잘 돼요. 저희 연고지인 스이타와 오사카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많이 하거든요. 그러니까 경기장 지을 때 팬들이 직접 모금에 참여했고요. 자기 거라는 생각이 드니까 경기장에 찾아오게 되는 거죠. 대회 규모를 봐도 한국과 달라요. 일본에서 가장 비중이 작은 대회가 르방컵(리그컵)인데 다들 신경 안 써요. 사실상 버리는 대회인데, 그 대회 우승 상금이 15억 원 정도 돼요. 그런데 K리그1 상금이 5억 원이니까 차이를 느끼죠. 일본 사람들이 많이 쓰는 중계 앱 있죠? 다즌이라고. 그 앱으로 받는 중계권 수익만 해도 엄청 크니까 격차가 벌어진 것 같아요.”

지난 9월 고베를 상대하며 이니에스타의 기량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도 황의조에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오재석이 어시스트한 동점골과 황의조가 넣은 역전골로 감바가 승리했지만, 이니에스타의 ‘클래스’를 느끼기에 충분한 경기였다고 했다. 축구 잘 하는 선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 황의조는 유독 신이 난 말투였다. “바르셀로나 경기를 TV로 보면 상대팀은 전원 내려가서 수비만 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의아했어요. 바르셀로나가 아무리 공을 잘 돌려도, 수비하는 입장에서는 압박을 해야 하는 건데. 그런데 이젠 알아요. 압박을 하러 가봤자 안 되니까 안 한다는 걸요. 이니에스타가 공을 잡으면, 감바 동료가 바짝 붙어도 그냥 벗겨지더라고요. 그리고 공 다루는 모습만 봐도 ‘어차피 빼앗을 수 없다’는 게 느껴져요. 그러니까 나중엔 아예 안 가죠. 멀찍이서 어떻게 하는지 보고 수비하는 거예요. 바르셀로나는 이니에스타 같은 선수가 많으니까 상대팀 전체가 내려갈 수밖에 없겠죠. 같이 뛰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그러나 감바의 에이스는 한국인 황의조다. 황의조, 오재석뿐 아니라 한국인은 여전히 J리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인 선수다. 황의조는 연속골을 터뜨리며 J리그의 스타가 되어가는 자신을 느끼고 있다. 그럴수록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 강해진다고 했다.

“팀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감독님과 선수들이 좋은 말만 해 주는 걸 들으면 제가 인정받고 있다는 걸 느끼죠. 이런 상황이니까 더 열심히 경기에 임해야 동료들에게서 맞는 행동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더라고요. 특히 아시안게임 갔다 온 뒤로는 일부러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싸움 할 때도 세게 부딪쳤어요.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의 기운을 주고 싶은 것도 있어요. 한국은 운동할 때 시끌벅적하잖아요. 파이팅 안 넣으면 선배들이 뭐라고 하고요. 근데 일본 사람들은 소심하고 조용해요. 제 스타일이 도움이 된다면 더 시끄럽게 굴고 싶어요.”

 

최고의 2018년을 마무리하는 중

황의조는 어느 때보다 바쁜 한해를 보냈다. 때론 48시간 만에 경기를 치러야 했던 아시안게임, 강등권 탈출을 위해 늘 최선을 다해야 했던 J리그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이제 대표팀에서 땀 흘릴 시간이 다가온다. 11월 친선경기 2연전에 이어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 아시안컵’ 대표팀이 12월에 소집될 것이다. 황의조는 대충 계산해 보더니 “시즌 끝나면 딱 일주일 정도 쉬겠네요”라고 했다. 생애 최고의 해였던 2018년에 이어 2019년을 행복하게 맞이하기 위해서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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