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연길(중국)] 류청 기자= “박태하 감독만한 사람은 없다. 박 감독과 함께 라면 어떤 팀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위창룽 연변부덕 사장은 28일 박태하 감독 송별회를 하며 오열했다. 백발이 성성한 장년의 남자가 팬과 선수들이 다 보는 앞에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연변 축구의 한 시대가 끝났다.”

 

부끄러울 것은 없어 보였다. 위 사장만 운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기 때문이다. 마이크를 잡고 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던 박 감독도 펑펑 울었고,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선수와 구단 직원도 울고, 박 감독을 보내길 아쉬워하는 팬들도 울었다. 다른 지역이나 해외에 사는 팬들도 TV를 보며 고개를 떨궜다고 한다.

 

“사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마이크를 잡고 전광판에 내 사진을 보니 눈물이 났다. 나도 감정이 있는데 눈물을 참기 쉽지 않았다.” (박태하)

 

2015년 연변에 부임한 박 감독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연변을 떠나기로 했다. 부임 첫 해에 꼴찌였던 팀을 갑급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2016시즌에는 중국 슈퍼리그(CSL)를 9위로 마쳤다. 2017시즌에는 갑급리그로 강등됐지만, 2018시즌에는 스폰서로 인한 선수 구성 문제 등 악재 속에서도 잔류에 성공했다. 박 감독은 중국 무대에서 만 4년을 보낸 보기 드문 지도자가 됐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부임해 신화를 썼던 박 감독은 1990년대 후반 연변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고 최은택 감독과 비교될 정도다. 연변 사람들은 박 감독을 매우 각별하게 생각한다. 박 감독이 올해를 끝으로 팀을 떠난다고 발표하자 많은 팬들이 슬퍼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박 감독 홈 고별전을 보러 온 팬이 있었을 정도다.

박 감독이 단지 성적 때문에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다. 박 감독은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선수들을 보듬어서 기적 같은 결과를 냈고, 중국 조선족 사회를 가슴으로 이해했다. 위 사장은 “우리 선수들은 부모님이 거의 다 해외에 있다. 다들 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고, 실력도 좋지 않았다. 그런 선수들을 박 감독이 잘 다독여줬다”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이날 행상에서 눈물을 쏟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5년부터 박 감독과 함께 했던 공격수 김파는 경기가 끝난 뒤 ‘풋볼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너무 슬프다. 정말 너무 슬프다”라며 울었다. 그는 “언젠가 헤어질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슬플지는 몰랐다”라며 “타지에 와서 정말 고생이 많으셨다. 최근에도 너무 힘들어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3부 리그에서 뛰다 박 감독이 발탁해 지금은 장쑤쑤닝에서 뛰는 톈이눙은 아내의 도움을 받아 박 감독에게 긴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감독님이 4년 동안 연변에서 하신 일에 감사합니다. 감독님이 없었다면 저도 없었을 겁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감독님이 있어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했다. 

 

“박태하 감독이 와서 한 가장 큰 일은 한국에 대한 조선족 사회의 인상을 바꾼 것이다.” (최국권 연변라디오TV방송국 아나운서)

 

“’이상한’ 한국 감독이 하나 와서 우리를 감동시켰다.” (김호 연변공안국장)

박 감독은 연변 조선족 사회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박 감독이 무너져가던 팀을 재건하자 각지에 있는 조선족들이 축구를 매개로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연변이 상하이나 다롄 같은 큰 도시에 경기하러 가면 연변 팬들이 1천명 이상 들어오는 건 일반적인 일이다. 연변과 박 감독이 원정을 떠나면 새벽에도 공항에 팬들이 찾아오곤 한다.

 

박 감독은 한국과 연변 사이에 큰 다리를 놓기도 했다. 박 감독이 놓은 다리로 인해 조선족 사회와 한국이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최국권 연변TV 아나운서는 “한국인에 대한 인상 자체를 바꿔놓았다”라고 평가했다. 김호 연변공안 국장은 “박 감독이 어떤 외교관보다 뛰어나다”라고 말했다.

 

“언젠가는 가실 줄 알았지만, 정작 이별을 해야 하니 마음이 참 무겁습니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나 봅니다. 이번 이별도 한동안은 많이 아플 것 같습니다. 감독님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독님 덕으로 우리가 슈퍼리그의 맛도 보게 되었고, 뿔뿔이 흩어진 조선족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감독님과 함께한 4년은 참 즐겁고 뭉클했습니다. 그 어디에 계시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고 미안합니다.” (한 팬의 글)

 

박 감독은 아직 다음 팀을 정하지 못했다. 중국 내에서도 여러 팀이 그를 원하고 있다. 연변에 빈손으로 왔던 박 감독은 4년 동안 많은 것을 얻어 간다. 그는 여전히 갈 길이 먼 감독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팬들의 진심 어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그가 좋아하는 노래 제목처럼 ‘행복한 사람’이다.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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