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의 별칭은 별들의 전쟁이다. 국가대표 레벨에서 최고의 대회가 월드컵이라면, 클럽 레벨에서 최고 수준의 경기를 볼 수 있는 무대는 UCL이다. 현대 축구의 발전사를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무대, 'Football1st'가 2018/2019 UCL의 진수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2018/2019시즌 전세계에서 가장 경기력이 좋은 팀 중 하나였던 리버풀이 아무런 힘도 못 쓴 채 당했다. 흔들리는 듯 보였던 나폴리는 리버풀전에서 완벽한 카운터 펀치를 준비했다. 위르겐 클롭 감독과 리버풀은 적절한 대응 방법을 찾지 못했다.

4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나폴리에 위치한 산 파올로에서 UCL C조 2차전을 치른 나폴리가 리버풀을 1-0으로 꺾었다.

리버풀의 몸이 무거웠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리버풀은 9월 30일 첼시 원정에 이어 나폴리로 해외 원정을 왔다. 체력 관리를 나폴리가 더 잘 한 측면도 있다. 두 팀 모두 앞선 5경기를 3~4일 간격으로 치러 왔다. 나폴리가 리버풀전에 내놓은 주전 선수들은 지난 5경기 동안 평균 3.4경기 선발 출장을 기록했다. 반면 리버풀 주전 선수(선발로 나온 나비 케이타 대신 전반 19분 교체 투입된 조던 헨더슨 포함)들은 평균 3.81회 선발 출장을 기록했다. 리버풀 주전이 나폴리보다 더 고정돼 있었다.

그러나 아직 체력 부담이 쌓이기엔 이른 시점이다. 경기력 격차는 약간의 체력 문제만으로 해석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나폴리는 슈팅 횟수에서 14회 대 4회로 리버풀을 완전히 압도했다. 유효 슛은 나폴리가 5회인 반면 리버풀은 하나도 없었다.

리버풀이 자랑하는 전방 압박과 빠른 공격 전환은 거의 구현되지 않았다. 빠른 경기 운영을 선호하는 리버풀 특성상 점유율이 43.1%에 그쳤다는 건 그리 나쁠 것 없지만, 공을 빼앗은 횟수 역시 15회 대 16회로 나폴리보다 뒤쳐졌고, 가로채기 역시 8회 대 10회로 뒤쳐졌다는 건 나쁜 기록이었다. 리버풀은 특유의 빠른 경기 운영에 거의 실패했다.

 

‘4-4-2 마스터’ 안첼로티의 나폴리

나폴리는 지난 시즌까지 마우리치오 사리(현 첼시) 감독이 다져놓은 4-3-3 포메이션을 버리고 최근 4-4-2 포메이션을 도입했다. 과도기라는 점을 노출하듯 지난 9월 30일 유벤투스에 1-3으로 패배하기도 했지만, 실험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리버풀전은 실험이 성공한 경우였다.

카를로 안첼로티 나폴리 감독은 4-4-2 포메이션의 세계적인 마스터 중 하나다. 4-4-2의 기본적인 형태인 ‘두 줄 수비’와 전방압박은 이 축구를 완선한 1990년대 AC밀란에서 선수로서 경험했다. 감독이 된 뒤에는 이 포메이션을 변형한 4-3-1-2, 또는 ‘다이아몬드형’ 4-4-2 포진으로 AC밀란을 다시 유럽 정상에 올렸다.

어느 4-4-2든 핵심은 인시녜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인시녜는 4-3-3 시절 왼쪽 윙어로서 측면 수비를 맡아야 했지만, 지금은 스트라이커인 만큼 수비 부담 없이 공격 전개에 전념하고 있다. 리버풀전 득점은 인시녜의 시즌 6호골(세리에A 5골, UCL 1골)이다. 안첼로티 감독은 AC밀란 시절 카카, 레알마드리드 시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핵심 공격수를 수비 부담에서 풀어주는 것이 특기였다. 나폴리에서는 인시녜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다.

현재 나폴리에서는 다양한 미드필더와 측면 자원을 섞어 기용해가며 두 가지 형태의 4-4-2를 혼용하고 있다. 케빈 말퀴트 등 공격적인 풀백을 기용하고 좌우 미드필더에는 중앙 지향적인 피오트르 치엘린스키, 파비안 루이스를 기용해 4-3-1-2 시절과 비슷한 운영을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풀백은 수비적인 선수로 바꾸고 좌우 측면에 호세 카예혼, 시모네 베르디 등 윙어 성향의 측면을 기용하면 ‘두 줄 수비’ 기반의 4-4-2 형태로 바뀐다. 상대 팀의 장단점을 감안해 여러 가지 전술을 혼용할 수 있게 됐다.

안첼로티 감독이 20년 넘는 감독 생활 동안 지적받은 가장 큰 약점 중 하나가 ‘작은 선수단’이었다. 주전에 대한 의존도가 크고, 한 번 정한 선발 라인업을 잘 바꾸지 않는 점이 문제였다. 교체 선수도 3, 4명 안에서 해결하는 걸 선호했다. 현재 나폴리에서 매 경기 라인업을 바꾸며 상대 전술에 대처하는 모습은 새롭다.

 

리버풀 상대로 내놓은 나폴리의 변형 스리백, 후반 교체까지 적중

리버풀을 상대로 나폴리의 전술은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라이트백에 원래 센터백인 니콜라 막시모비치를 배치했다. 지난 시즌 거의 전력 외 취급을 받던 막시모비치를 센터백으로 살려낸 것에 이어 후보 라이트백으로까지 기용했다.

막시모비치는 오른쪽 풀백처럼 뛰기도 했지만, 자주 중앙 수비로 이동하며 일종의 변형 스리백을 만들었다. 그러면 오른쪽 미드필더 호세 카예혼이 특유의 성실함으로 오른쪽 윙백 역할까지 했다.

나폴리는 리버풀의 공격적인 풀백 운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는 선수단을 갖고 있었다. 리버풀 레프트백 앤드류 로버트슨이 오버래핑하면 카예혼이 막았다. 리버풀 왼쪽 윙어 사디오 마네는 중앙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막시모비치도 아예 스리백의 스토퍼처럼 포진해 수비를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나폴리 수비의 조직력은 리버풀 공격을 적절하게 지연하고 빠른 공격을 전개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나폴리가 빌드업할 때 모든 선수가 고루 지닌 기술과 패스 능력은 리버풀의 압박을 빠져나가기 충분했다.

나폴리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인시녜의 동선이었다. 인시녜는 투톱이 된 뒤에도 윙어 시절 버릇처럼 왼쪽 측면으로 빠지며 공격을 풀어가는 선수였다. 이날도 왼쪽 플레이의 비중이 조금 높았지만, 오른쪽으로도 많이 움직이며 경기장을 폭넓게 썼다는 점이 신선했다. 인시녜는 두 팀 공격수를 통틀어 가장 공을 많이 잡은 선수(개인 점유율 4.2%)였다. 기민한 인시녜는 이날 슈팅 5회(최다), 동료의 슛을 이끌어 낸 패스 2회(2위), 패스 성공률 90%(팀 내 1위) 등 여러모로 좋은 기록을 남겼다. 인시녜는 전방위 플레이메이커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폴리는 공을 잡았을 때 철저하게 ‘패스 앤드 무브’로 리버풀 수비를 공략했다. 사리 감독 시절부터 선수들 몸에 배 있는 조직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특히 왼쪽 측면에서는 레프트백 마리우 후이, 왼쪽 미드필더 루이스를 중심으로 공을 순환시키며 여러 번 효과적인 공격 전개를 해냈다. 그동안 공격력이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 온 후이는 동료들과 좋은 호흡을 보이며 빌드업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왼쪽에서 차근차근 공격을 만들고, 오른쪽의 카예혼이 좋은 타이밍에 전방으로 침투하면 대각선 중장거리 패스로 공격 방향을 전환하며 리버풀을 흔들었다.

후반전 전술 변화도 나폴리가 더 효과적이었고, 여기서 골이 터졌다. 나폴리는 인시녜의 투톱 파트너를 장신 공격수 아르카디우스 밀리크에서 단신인 드리스 메르텐스로 바꿨다. ‘가짜 9번’만 두 명인 것 같은 상황이 되면서 나폴리 공격이 더 유연해졌다. 초반에도 유리했던 나폴리는 후반 25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슈팅 6회 대 0회, 점유율 66.2%, 패스 성공률 84% 대 64% 등 완전히 리버풀을 압도했다.

후반 45분, 메르텐스는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해 공격 전개를 지원했다. 막시모비치가 시작한 빌드업이 카예혼과 메르텐스의 빠른 패스워크를 통해 리버풀 수비를 순간적으로 붕괴시켰다. 카예혼의 낮은 크로스를 인시녜가 마무리했다. 카예혼의 어시스트와 인시녜의 골은 수 년 동안 나폴리가 구사해 온 확실한 공격 루트지만 그 과정은 예전과 달랐다. 리버풀이 예상하지 못한 경기 전개였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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