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축구팬들은 대한축구협회에 직접 의견을 전달할 기회를 갖자 열성적으로 의견을 밝혔다. 그 중엔 순수한 의견이 아니라 ‘영업’도 섞여 있었지만, 실제 팬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생생한 목소리도 있었다.

대한축구협회는 20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SETEC에서 한국축구 정책제안 간담회를 가졌다. ‘대한축구협회가 한국축구의 나아갈 길을 듣겠습니다’라는 부제로 진행된 행사다. 9월 15일까지 접수된 제안이 소책자로 만들어졌고, 인터넷을 통해 신청한 인원 중 100여 명이 현장에서 육성으로 의견을 밝혔다. 축구협회에서는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홍명보 전무이사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홍 전무는 인사 겸 모두발언을 통해 “한국 축구가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계기로 인기를 되찾아가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전에도 몇 번 있었다. 당시 축구계에는 모든 걸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다는 자만심이 있었다고 본다. 기회를 놓치고 또 놓친 축구는 초라해졌다. 최고의 인기 스포츠에서 모든 사람에게 비난 받는 종목이 됐다. 물론 축구협회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래서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축구협회는 그동안 신뢰해 줬던 국민 사이로 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결과, 이젠 축구계뿐 아니라 팬 여러분께 나아갈 길을 물어보자는 생각을 해서 이런 간담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개최 취지를 밝혔다. 이번 간담회 주제는 대표팀 경기력 강화였다.

팬들의 의견 중 참신한 아이디어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 대신 축구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축구협회가 직접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볼 수 있다. 팬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주제는 단연 남자 대표팀이었다. A대표팀 관련 의견이 전체의 28%를 차지했다. 유소년 대표팀 관련 의견(18%), 대표팀 철학에 대한 의견(18%), 감독 선임 및 대표팀 구성에 대한 의견(15%), 여자 대표팀에 대한 의견(6%)이 뒤를 이었다.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고 논리정연한 이야기를 풀어나간 사람들은 일반 축구팬이 아닌 축구계 종사자들이었다. 전력분석관, 스포츠 심리학 박사, 축구 지도자 등 다양한 자기 소개에 이어 전문적인 소견이 이어졌다. 그 중에는 “전력분석관을 지원스태프가 아니고 코칭스태프로 구분해야 하며 팀으로서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인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 “선수들의 멘탈 코칭을 위해서는 추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 등이 있었다.

축구인들은 ‘영업’을 하기도 했다. 스포츠 심리학 관련 전문업체에 몸담고 있다는 참가자는 각급 대표팀의 멘탈 코치를 자신의 업체가 맡을 수 있다고 했다. 유소년 축구를 위한 훈련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던 참가자는 “내가 짓고 있는 훈련장에 축구협회가 지원을 해 주셨으면 한다”는 말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이 자리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발언일 수도 있지만 따로 제지당하지 않고 공평한 발언 기회를 가졌다.

팬들만 이야기할 수 있을 만한 생생한 발언들도 있었다. 입시 준비중이라는 고등학생 참가자는 “축구 분석, 행정가 등을 육성할 수 있는 학과가 더 있으면 좋겠다”며 선수 출신이 아닌 사람도 축구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축구선수 아들을 둔 10년차 학부모 참가자는 “이미 한 번 걸러진 선수들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은 있지만 거기 들어가지 못한 선수 중에서도 원석이 많다. 바닥까지 선수를 찾아내 달라는 것이 학부모들의 바람”이라고 했다. 고등학생 팬은 “최근 축구 인기가 높아졌다. 팬 참여 행사 때 질서유지를 잘 해달라”며 선착순보다 티켓팅 시스템을 도입해 달라는 제안을 했다.

모든 순서가 끝난 뒤 홍 전무와 김 위원장은 간단한 답변을 했다. 특히 선수 심리 전문가를 대표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제안이 여러 차례 이어지자, 홍 전무는 “팀의 가장 좋은 멘탈 코치는 감독이다. 이를 통해 선수들이 안정을 찾고 불안감을 잡는다. 그러니 지도자들이 더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필수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월드컵 때 멘탈 코치 도입을 고려했는데, (신태용) 감독님께서 '단기간에 새로운 사람이 팀에 들어와 적응하기 쉽지 않다. 마이너스 요인이 걱정된다'고 했다”는 사연을 공개하며, 지도자들에게 심리 지도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는 홍 전무의 의견에 동의했다.

모든 행사가 끝난 두 만난 김 위원장은 “한 참가자가 ‘연령에 맞는’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표현이 내게 꽂혔다. 요즘 연령에 맞는 정책의 중요성을 내가 잠깐 잊고 있었는데 나를 일깨워줬다”라며 팬의 목소리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홍 전무는 마무리 인사 시간에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다. 우린 보여주는 거 싫어한다. 오늘 몇 가지 좋은 말씀이 있었다. 다음 달, 그 다음 달에도 다른 주제로 간담회를 가질 것이다. 연말에는 (간담회 결과를) 전체적으로 모아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내년부터 의지를 갖고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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