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수원] 김정용 기자= 1차전에서 세 골 차로 앞섰으나 2차전에서 따라잡히는 건 세계적으로 봐도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다. 수원삼성은 세 골 차 패배를 당하며 망신 직전까지 몰렸지만, 승부차기에서 신화용 골키퍼가 영웅적인 활약을 하며 수원을 구했다.

19일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2018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8강 2차전을 치른 수원이 0-3 패배 끝에 승부차기 승리를 거뒀다. 지난 1차전은 수원의 3-0 승리였으며, 두 경기 점수를 합산한 결과 무승부를 거둔 두 팀은 연장전까지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 승부차기에서 수원이 4-2 승리를 거뒀다.

 

한 골 실점한 뒤 자기 진영에 틀어박힌 수원

포메이션은 양쪽 모두 4-2-3-1이었으나 선수 구성은 달랐다. 수원은 미드필드에 박종우, 이종성, 사리치를 동시에 기용해 수비력을 신경 썼다. 특이한 건 반드시 다득점이 필요한 전북의 라인업이었다. 센터백 홍정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칙 기용했다. 홍정호가 발이 빠르고 패스도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지나치게 파격적인 카드였다. 윙어 로페즈를 중앙에, 공격형 미드필더 이승기를 왼쪽 측면에 배치한 것도 신선했다. 최전방은 이동국과 김신욱이 아닌 아드리아노가 맡았다.

초반부터 밀어붙인 전북은 전반 11분 일찌감치 선제골을 넣으며 추격을 시작했다. 로페즈가 절묘한 크로스로 수원 문전에서 경합을 붙였다. 한교원이 제대로 발을 대지 못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흘린 공을 아드리아노가 신화용 앞에서 재빨리 낚아챈 뒤 밀어 넣었다.

한 골을 내준 뒤, 수원은 거의 아무것도 안 하고 필드 플레이어 전원이 후퇴해 수비에만 치중했다. 전반전 막판에 전북이 프리킥으로 몇 차례 기회를 잡은 것 외에는 시간이 그냥 흘러가다시피 했다. 하프타임 직전 일어난 중요한 상황은 두 팀의 신경전뿐이었다. 최철순의 거친 태클을 비롯해 두 팀의 감정이 상할 만한 상황이 몇 차례 지나갔고, 전반전이 끝난 뒤 라커룸으로 돌아가던 데얀이 김상식 전북 코치와 설전을 벌이면서 양쪽 벤치가 달려들어 언쟁을 벌였다.

수원은 한 골을 내준 뒤 나머지 전반전을 지루하게 흘려보냈다. 보는 사람들에게는 따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원이 점점 유리해지고 있었다. 전북은 수원의 수비를 깰 만한 지공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상태였다.

 

‘버티기’에 실패한 수원, 전북의 뻔한 공격에 두 골 실점

수원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상대 예상을 깨고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패착에 가까웠다. 수원 수비가 정비되지 못한 가운데 전북은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잡았고, 후반 6분 만에 전북의 두 번째 골이 나왔다. 양발잡이 이승기의 왼발 코너킥이 문전으로 날카롭게 날아들었고, 공의 낙하지점은 신화용 골키퍼의 바로 앞이었지만 한교원이 헤딩슛을 시도하다가 무산됐기 때문에 먼저 뛰쳐나가 잡지 못했다. 신화용 앞으로 달려든 최보경이 바로 앞에서 다이빙 헤딩슛으로 골을 터뜨렸다.

전북은 남은 40여분 동안 한 골만 넣으면 동점을 만들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특유의 공격수 늘리기를 시도했다. 후반 9분 최보경을 빼고 이동국을 투입했다. 수원은 즉시 임상협을 빼고 구자룡을 넣어 파이브백에 가까운 3-4-2-1을 만들었다. 그러자 전북은 후반 21분 세 번째 교체 카드를 쓰며 로페즈를 김신욱으로 교체, 최전방을 아예 세 명으로 늘려 버렸다.

미드필드가 붕괴된 전북은 단순한 롱 패스르 거의 모든 공격을 진행해야 했다. 수원은 전북 공격을 차단한 뒤 오히려 더 많은 속공 기회를 잡아 나갔다. 그러나 수원도 결정적인 기회는 만들지 못했다.

전북은 아주 뻔하고 노골적인 공격으로 결국 세 번째 골을 만들었다. 후반 26분이었다. 스로인에 이어 이용이 크로스할 때, 김신욱은 수비수를 등으로 밀며 헤딩슛 가능한 위치로 대놓고 이동하고 있었다. 문전에 있는 공격수는 김신욱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이용의 크로스가 정확히 김신욱의 머리로 배달되자 수원 수비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용의 헤딩슛이 골망을 흔들었다. 심지어 수비수 김민재가 부상 때문에 잠시 그라운드를 떠난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다. 전북이 한 명 적은 상황이었지만 시간을 끌지 않고 공격을 속행한 것이 골로 이어졌다.

경기는 추가시간에 끝나버릴 뻔했다. 전북이 모처럼 짜임새 있는 속공을 했고, 문전에서 공에 달려드는 아드리아노를 조성진이 잡아채 페널티킥을 내줬다. 그러나 아드리아노의 킥을 완벽하게 읽은 신화용이 공을 쳐내며 수원이 위기를 넘겼다. 추가시간 종료 직전 프리킥에 이은 수원의 득점 기회도 무산됐다.

 

후반 막판부터 영웅이 된 신화용

페널티킥을 막아낸 신화용은 연장전도 무실점으로 보냈고, 승부차기가 시작되자마자 경기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첫 키커 김신욱이 왼쪽 아래를 노렸으나 공이 충분히 구석으로 향하지 않았고, 완벽하게 읽은 신화용이 가볍게 쳐냈다.

신화용은 전북의 3번 키커 이동국 역시 굴복시켰다. 이동국은 김신욱과 마찬가지로 왼쪽을 노렸으나 이번엔 더욱 막기 쉬운 가운데로 공이 향했고, 신화용은 또 완벽한 예측을 통해 쳐냈다.

반면 전북의 송범근 골키퍼는 수원의 3번 키커 조성진의 킥 방향을 읽었으나 공이 손끝에 맞고 골문 안으로 빨려들어가며 불운을 겪었다. 수원의 4번 키커 사리치가 왼쪽 아래로 가볍게 찔러 넣은 슛이 골망을 흔들며 수원의 승리가 확정됐다. 골대 뒤에 있던 수원 서포터 그랑블루가 선수단과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4강에는 올랐으나 졸전

수원은 전북의 홈 경기로 열린 지난 1차전에서 전투적이고 과감한 축구로 대승을 거둔 바 있다. 당시 서정원 감독의 사임 직후로 팀이 어수선한 상태였지만, 수원은 격렬한 몸싸움과 빠른 속공으로 전북 골문을 세 번이나 열었다.

그러나 홈으로 돌아온 수원은 당시의 승리 공식을 신뢰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수비 축구를 시도했다. 앞선 15일 K리그1 인천유나이티드 원정 경기에서도 약체를 상대로 노골적인 수비 축구를 시도해 0-0 무승부를 거뒀던 수원은 당시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90분’을 재현하고 싶었으나 전북 공격은 그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경기 결과와는 별개로, 매우 수비적이었으면서 ‘수비의 미학’을 보여주지 못한 수원의 경기 방식은 아쉬움을 남겼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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