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고 돌아 온 김학범 감독이 대회 준비 과정부터 있었던 여러 사연을 공개했다.

김 감독은 이민성, 김은중, 차상광 코치와 함께 6일 서울 신문로에 위치한 축구회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가졌다. 귀국 후 나흘 동안 아무것도 못하고 쉬었다는 김 감독은 한결 기운을 차린 모습으로 한 시간 넘게 진행된 대화를 통해 아시안게임에 대한 여러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중 대회 뒷이야기에 해당되는 것들을 모아 정리했다.

 

- 전술이 3-5-2라고 공언했다가 대회 초반 포백 기반 포메이션으로 변화한 계기

스리백을 쓴 이유 중 하나는 사이드백이었다. 수비 성향을 가진 사이드백을 찾기 굉장히 힘들었다. 그래서 공격 쪽에서 김문환, 김진야가 포지션을 바꿔야 했다. 그런데 현지에서 선수들이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더라. 그래서 코칭스태프 회의를 했다. 코치들이 포백으로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는 의견을 내서 그러기로 했다. 어차피 포백은 선수들이 많이 써 온 거고 투 볼란치(4-2-3-1의 두 수비형 미드필더)는 내가 10년 넘게 많이 썼기 때문에 어떻게 운용할지 알았다. 그런데 거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문제가 수비 전용 볼란치가 없었다는 거다. 김정민, 이승모, 이진현을 가동했는데 그게 고민이었다. 우즈벡전 끝나고 나서는 우리가 공격적으로 지배하면 (미드필드 문제가) 가려질 수 있다고 생각했고, 좀 더 좋은 경기력을 내게 됐다. (김학범)

예전과 달리 요즘 스리백은 맨투맨이 아닌 지역마크다. 선수들이 공간을 커버하는 데 버거워 했다. 체력 소비도 컸다. 조직적으로 잘 갖출 시간이 부족했다. 스리백에 대해 이탈리아 축구를 좀 봤는데 상당 기간 연습을 해 왔기 때문에 좋은 경기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계속 전술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이민성)

 

- 조현우가 8강 우즈벡전을 앞두고 부상당했을 때

(송)범근이가 말레이시아전 패배 이후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현우가 이야기를 잘 해 줬다. 그 다음날부터 훈련이 더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그리고 현우가 다쳤다. 범근이에게 '네가 위로받은 걸 경기에서 만회해라'라고 했고 현우도 자기가 준비해온 걸 범근이에게 이야기해줬다.

현우가 우즈벡전을 함께 하지 못했으니까 책임감을 가졌다. 테스트 결과가 괜찮아도 무리해서 다음 경기를 뛸 상황은 아니었따. 그래서 자제시키려고 했는데 본인은 책임감을 갖고 하려고 하더라. 그래서 베트남전을 준비하게 됐다.

조현우가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다면 후보 골키퍼로는 수비수 정태욱과 김건웅을 고려했다. 김건웅은 자기 입으로 골키퍼를 잘 한다고 해서 테스트를 해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차상광)

 

- 최대 고비는 8강 우즈벡전

여러분도 우즈벡전이 사실상 결승전이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우리도 코칭스태프 회의에서 차라리 8강에서 붙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경기를 하면서 우즈벡이 좋은 팀이라는 걸 점점 더 느꼈다. 사실 버거운 경기였다. 이기고 있다가 다시 뒤집었다가 또 동점이 되고 또 역전하는 과정이 아주 힘들었다. 중간 중간에 선수 독려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나도 힘에 부쳤다.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되는데, 우리가 여기서 끝을 내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경기 중에도 굉장히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연장 후반전을 앞두고 선수들이 워낙 힘든 상황이었다. 지치고, 눈빛도 흐려져 있었다. (김학범)

 

- 우즈벡전 ‘동기부여 명장면’의 배경

연장전 들어갈 때 내 기를 다 선수들에게 주고 싶었다. 그래서 목소리도 크게 냈다. 프로와 달리 어린 선수들이 많았다는 점도 작용했다. 그래서 라커룸에서 나갈 때는 꼭 소리치고 나가는 분위기를 주도했다. 힘들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리도록 기를 모아주는 소리를 질렀다.

경기 끝나고 나니까 이겨서 좋긴 한데 내가 부족하고 한계가 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자신이 있었거든.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끝나고 벤치에 그냥 주저앉았다. 그 정도로 온 몸, 정신적, 육체적으로 다 쏟아 붓지 않았나 싶다. (김학범)

 

- 우즈벡전 승리에도 불구하고 선수들 질타한 이유

우리가 실수에 의해서 3골을 다 내줬는데 그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했다. 대신, 우리가 연장전 들어가서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화면을 띄워주면서 계속 이야기한 것이 '너희들 테니스나 쳐라. 저기서 테니스 치면 딱 맞겠다. 우리가 한 명이 더 많은데 공격수 다 올라가 있고 수비 다 내려가 있고. 저기서 테니스 치면 딱 맞겠네?‘ 였다. 그 말은 우리가 간절한데 그 경기력이 겨우 이거냐, 그걸로 우승할 수 있겠냐는 말이었다. 힘들지만 그 때가 4강과 결승을 앞두고 선수들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래서 선수들은 칭찬은 못 듣고 내게 많이 혼났다. 그게 4강과 결승에서 승리한 계기였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학범)

 

- ‘한일전 영웅’ 출신인 이민성 코치의 결승전 동기부여

선수들이 그 이야기로 날 놀리기도 했다. 내가 워낙 그 이야기를 싫어하는 걸 알아서. 예전에는 한일전 하면 전투적인 자세로 나가곤 했는데 요즘 선수들과 대화를 해 보면 이제는 다른 나라와의 경기와 큰 차이가 없다. 시대가 흘렀기 때문에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전에는 한일전을 하면 감독과 코치가 전혀 이야기를 안 하고 개인적으로 준비했다. 그런데 이젠 그렇지 않으니 네가 선수들 모아서 이야기를 해 주면 좋을 것 같아'라고 내가 조언해서 손흥민, 조현우 등 고참 들이 모아서 미팅을 하며 준비했다. (이민성)

 

- 결승에서 황희찬이 일본 선수를 걷어찼을 때

한국이었으면 퇴장 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주심들이 이번 대회에서 좀 관대했다. 다른 경기에서도 퇴장성 태클이 많았는데 다이렉트 태클은 한 번이었다. 그래서 해설자들과 달리 나는 '이 정도로는 퇴장 안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동작은 좀 오버였는데 일본전에서는 사실 필요했다. 선수들에게 ‘강하게 부딪치되 파울하지 말라’고 하긴 했다. 퇴장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김학범)

 

- 결승전 일화 ‘주먹밥의 마법’

지원스태프들이 고생 많이 했다고 말하고 싶다. 선수들 불편 없게 만들어주는 게 가장 고마웠다. 결승전에서 연장까지 갔을 때 '주먹밥의 마법'이란 게 있다. 선발대는 식사를 못 하니까 주먹밥을 싸 가는데 김세인 대한축구협회 과장이 배탈이 나서 못 먹고 있다가 연장 시작하고 그걸 먹었는데 그때 골이 또 났다. (이민성)

 

- 코치 역할까지 해 준 손흥민

손흥민은 코치들이 해야 할 일 중 일부분을 솔선수범해 이끌어 줬다. 미팅을 자주 하면서.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선수가 직접 이야기하는 게 더 와 닿을 때가 있는데 그런 면에서 손흥민이 많은 역할을 해 줬고 주장으로서 역할을 해 줬다. 이 자리를 빌어서 중심을 잘 잡아줬다고 말하고 싶다. (김은중)

 

- 김학범 감독과 황의조의 인연

코칭 스태프와 회의 많이 했다. 나라고 그런 부분(논란에 대한 의식) 없었겠나. 내가 일본 직접 갔다. 코치들도 영상 5개 정도 보고 함께 날아갔다. 몸 상태가 괜찮더라. 그런데 일본 구단은 반대였다. 그 팀 강화부장을 예전부터 알았고, 사장도 만났다. 팀에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 나도 그렇다고 물러설 사람이 아니잖나.'지금 뽑으려는 건 아니고 허락해 주면 다른 선수들과 비교를 하겠다'라고 했다. 사실 공갈을 좀 친 거다.

예전보다 한 단계 올라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론의 반대가 많았지만 나는 밀고 나갔다. 뭔가 보지 않고는 밀고 나가질 않는다. 실패는 할 수 있었다. 확신이 없을 때는 밀고 나가지 않는다. 성남에 있을 때보다 업그레이드됐고 준비돼 있더라. 일본에서도 고생을 많이 하면서 성숙해진 것 같다. 대표팀에서도 활약을 많이 할 것으로 본다. (김학범)

- 측면 수비수로 포지션을 바꾼 김진야, 김문환

사실 보직 변경 성공이다. 김문환은 A대표가 됐고 김진야는 폭스가 선정한 베스트 일레븐에 들어갔다. 선수들에게 말해준 건 '보직을 변경해야 너희가 살아날 수 있다'였다. 공격수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보직을 바꿔야 선수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김진야는 오른발잡이라서 오른쪽에서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선수다. 이를 감안하면 앞으로 굉장히 좋은 쪽으로 갈 것 같다.

우리나라 대표팀 역대 사이드백은 다 보직 변경한 선수들이다. 소속팀에서 보직 변경을 하면 대표팀까지 이어질 수 있을 거다. 대표 선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보직 변경시켜서 활용성을 극대화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김학범)

 

- 대회 중 병역 이야기

한 마디도 안 했다. 그건 대두되면 안 되는 부분이다. 이기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김학범)

 

- 악성댓글과 비난여론에 대한 대처

못 보게 했다. 나도 안 봤다. 선수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중 그거 보고 이겨낼 놈 있으면 봐라.' 나는 핸드폰 옆에 챙겨놓고 기사도 안 봤다. 송범근, 황희찬이 SNS 계정을 폐쇄했다. 내가 ‘너희들 그거 왜 하냐’고 물어보니 ‘안 하는데 들어온다’고 하더라. 그럼 아예 끄라고 했다. 이젠 선수들이 이겨내는 방법을 아는 것 같다. (김학범)

 

- 귀국 후 가장 먼저 한 일

잠만 잤다. 사실 짐도 어제 풀었다. 코치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사실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다. 중압감이 날 짓눌렀다. 다녀오니까 손끝 하나 움직이기 싫었다. 가방도 빨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풀었다. 거기 있을 때 설사를 안 했는데 여기 오니까 설사를 하더라. 코치들도 물어보면 집에서 잤다고들 했다. (김학범)

 

- 함께 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못 간 선수들에 대한 미안함이 많이 있다. 와일드카드 중에도 한 명 있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놓고 코칭스태프를 머리 아프게 만든 선수들이 있다. 어느 놈이 좋을까? 선발할 때 굉장히 고심을 많이 했다. 떨어진 선수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고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좌절하지 않고 대회 다녀온 선수들보다 더 성장해주길 바란다. (김학범)

 

- 프로 감독과 대표 감독의 차이

프로 감독은 문제가 생기면 팀 안에서 계속 해결할 수 있다. 훈련하고 바꿀 수 있다. 그런데 대표팀은 그게 안 되더라. 순간적으로 재치 있게 해결해야 한다. 프로보다 시간이 더 없다. 다만 단시간에 승부를 낸다는 건 편하다. 난 대표팀도 괜찮다. 체질에 맞는다. 새로운 선수 찾아내는 묘미가 있다.

한번 해 보니까 프로 감독님들과 유대관계가 좋아야 한다. 다녀온 뒤에 고맙다고 전화를 다 돌렸다. (김학범)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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