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파울루 벤투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은 멀티 플레이어들을 잘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포르투갈 대표팀을 지휘할 때도 이런 성향은 똑같았다.

벤투 감독은 선수단 24명과 함께 7일 코스타리카, 11일 칠레를 상대로 열릴 한국 감독 데뷔 일정을 준비 중이다. 벤투 감독은 선수단 소집을 맞아 지난 3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멀티 플레이어는 상당한 장점이다. 여러 포지션에서 뛸 수 있다는 건 향후 대표팀 선발에서 기준이 될 수 있다”라고 공언했다.

당시 벤투 감독은 두 가지 측면에서 멀티 플레이어의 가치를 거론했다. 일단 장현수가 수비수와 미드필더로 모두 뛸 수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또한 “향후 중앙 공격수인데 윙포워드도 뛸 수 있다거나 그런 선수가 있다면 대표팀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거다. 멀티 플레이어가 있는지 확인할 것”이라며 공격수 중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우대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수비수 적게 뽑고, 공격수 많이 뽑는 성향

포르투갈 시절에도 벤투 감독은 멀티 플레이어를 활용해 대회 참가 명단을 구성하곤 했다. 멀티 플레이어가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포지션별 2배수를 선발하지 않고, 힘을 주고 싶거나 불안한 포지션에 선수를 추가 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은 ‘유로 2012’와 ‘2014 브라질월드컵’ 선발 명단을 짤 때 두 가지 공통점을 보였다. 두 대회 모두 포백을 썼지만, 수비수는 8명이 아니라 7명만 선발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대회 멤버는 포지션별 2배수에 골키퍼를 한 명 추가해 23명으로 이뤄진다. 벤투 감독은 공격수를 추가 선발하는 성향이 있었고, 그럴 때 윙어나 중앙 미드필더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수비수를 한 명 줄였다.

벤투 감독은 레프트백 파비우 코엔트랑의 후보 선수가 없는 가운데 두 개 대회를 운영했다. 코엔트랑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필요해지는 선수가 멀티 플레이어였다. 수비형 미드필더 미겔 벨로수, 좌우 수비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안드레 알메이다가 코엔트랑의 대체자 역할을 맡았다.

대신 공격수를 한 명 늘렸다. 4-3-3 포메이션에서 원톱을 2명이 아니라 3명을 선발할 수 있었다. 우구 알메이다, 에우데르 포스티가가 두 대회 모두 선발됐다. 2012년에는 넬손 올리베이라, 2014년에는 에데르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수비수를 한 명 적게 데려가도 유로 2012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코엔트랑은 2012년 모든 경기에서 풀타임 활약했다. 이때는 공격수를 많이 데려간 장점만 부각됐다. 원톱 자원 세 명은 번갈아 경기에 투입됐다.

반면 브라질월드컵은 벤투 감독의 선수 선발 방식이 위험하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 대회였다. 조별리그 첫 경기인 독일전에서 하필 유일하게 후보 선수가 없는 코엔트랑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포르투갈은 알메이다와 벨로수를 번갈아 레프트백 후보 멤버로 투입해야 했다. 이때 포르투갈은 조별리그 탈락을 당했다.

잦은 포지션 체인지 소화하기 위해 필요한 멀티 플레이어

다양한 포지션 소화 능력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경기 중 포지션 체인지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이 콕 집어 말한 “중앙 공격수인데 윙어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는 포르투갈에서 많이 썼던 공격 전술에 필요한 자원이었다.

포르투갈에서 벤투 감독은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 없이 공격을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이 분주하게 자리를 바꿔가며 공을 순환시키고 상대를 교란하는 축구를 구사했다. 그래서 미드필더인 하울 메이렐레스, 주앙 무티뉴, 미겔 벨로수, 카를로스 마르틴스 등은 역동적으로 상대 빈틈을 찾아다녔다. 공격수들의 포지션 이동에 따라 빈 공간을 메우는 역할도 이들이 했다.

공격진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왼쪽 측면에 머물러 있지 않고 최전방, 중앙 2선, 때로는 오른쪽까지 폭넓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자유를 부여했다. 이때 호날두가 중앙으로 가면, 대신 왼쪽으로 빠지는 선수들이 ‘중앙 공격수인데 윙어도 소화할 수 있는 선수’였다. 벤투 감독은 날렵한 포스티가뿐 아니라 장신 공격수인 알메이다에게도 왼쪽 측면 공격을 요구했다.

포르투갈 시절 벤투 감독의 특징은, 선수들이 경기 중 위치를 바꾼다고 해서 대형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늘 일정한 대형을 유지한 채 조직적으로 경기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부 선수에게 ‘프리롤’을 주는 것이 아니라 ‘포지션 체인지’를 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런 플레이는 포르투갈과 공격진 구성이 비슷한 한국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한국 역시 왼쪽 윙어인 손흥민이 가장 중요한 공격 루트다. 이번에 원톱으로 선발된 지동원, 황의조 모두 왼쪽 윙어를 겸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경기 중 포지션 체인지를 통해 손흥민이 중앙으로 가는 모습을 자주 연출할 수 있는 구성이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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