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파울루 벤투 신임 감독을 소개하며 쓴 표현 중 영어로 빠르게 스쳐지나가 그리 주목 받지 못한 말이 있다. “택틱컬 피리어디제이션(tactical periodization)"이다. 아직 국내에 정확한 번역 표현이 없을 정도로 생소한 말이다. 최대한 직역하면 '전술 주기화’가 된다.

전술 주기화는 김 위원장이 밝힌 것처럼 주제 무리뉴 감독으로부터 시작된 포르투갈 지도자 전성시대의 핵심 원리이자 방법론이다. 3일 시작되는 벤투 감독의 첫 대표팀 훈련을 통해 한국에도 전술 주기화 이론이 전파될 것으로 기대된다.

 

모든 훈련을 하나로 통합한 '포르투갈식 방법론'

김 위원장은 지난달 17일 감독 발표 기자회견 중 ‘벤투 감독이 국내 감독에 비해 어떤 우위가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벤투 감독은 단순히 능력이 뛰어나서 뽑힌 것이 아니었다. 포르투갈 지도자들은 국내 지도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코칭 이론을 갖고 있다. 그게 전술 주기화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코칭 방법은 훈련에 접근할 때 반드시 경기에서 할 수 있는 걸 진행한다. 분석, 데이터 등 여러가지를 통해 훈련에 적용한다. 그걸 택틱컬 피리어드제이션이라고 하는데, 전술 체력 심리가 모두 복합된 훈련을 날짜에 맞춰 하는 것이다.”

영국 ‘스카이스포츠’는 전술 주기화를 “포르투갈에서 유래한 훈련 방법론으로, 공격과 수비에서 모든 종류의 경기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려는 방식”이라고 정리한 바 있다. 이 훈련법이 큰 화제를 모았던 건 주제 무리뉴 맨체스터유나이티드 감독이 포르투(2002~2004)와 첼시(2004~2007)에서 선수들의 잠재력을 만개시켜 세계 최고 감독으로 거듭났던 시절부터다. 즉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지 이미 10년 넘게 지난 훈련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전술 주기화는 모든 훈련 목적을 복합적으로 반영한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능력과 조직력을 자연스럽게 향상시키려는 방식이다. 상대 팀과 우리 팀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다각도로 파악한 다음, 다양한 측면을 모두 조합해 훈련에 반영한다.

예를 들어 우리 팀 선수들이 짧은 패스를 돌리는 조직력, 순발력이 모두 필요하다면 단거리 달리기와 복잡한 상황에서의 패스가 모두 포함된 훈련을 짠다. 복잡한 상황에서 동료를 찾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면 어느 선수에게 패스해야 하는지 빠르게 판단해야 하는 내용도 훈련에 포함시킨다. 이처럼 선수의 정신적, 신체적, 기술적 능력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는 훈련이다. 공을 다루고 빼앗는 동작, 패스를 돌리기 좋은 대형과 수비 조직력을 유지할 때 필요한 대형을 번갈아가며 훈련하게 만들면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강화할 수도 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의 말처럼 ‘전술, 체력, 심리가 모두 복합된 훈련’이 진행된다.

지도 방식이 스페인 등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져 있던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는 무리뉴의 훈련법이 꽤 화제를 모았다. 오래달리기를 통한 지구력 향상, 근력 운동을 통한 몸싸움 능력 향상 등 전통적인 훈련을 확 줄이고 계속 공을 다루면서 훈련하는 것이 첼시의 특징이었다. 그런데도 첼시는 다른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팀들보다 신체적으로 강했다. 당시 첼시의 장점은 모든 선수들이 플레이에 군더더기가 없고, 판단의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속공으로 나가는 속도가 빨랐다. 선수들의 몸에 플레이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 교육심리학 용어로 '자동화'가 잘 되어 있는 상태다.

여기에 상대에 대한 분석까지도 훈련에 포함시킨다. 즉 일주일 뒤 만날 상대팀을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면, 선수들에게 ‘압박에 신경 써라’라고 주문하는 것뿐 아니라 며칠 전 훈련부터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압박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관련 훈련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이 모든 내용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진행될 훈련에 다양하게 녹여 넣으면, 선수들은 어느새 사이에 일요일에 열릴 경기 준비를 마친 상태가 된다. 이처럼 일정을 고려해 훈련을 구성하는 방식 때문에 '주기화'라는 이름이 붙었다.

분석 능력 발달한 현대 축구의 훈련법

이런 훈련법을 처음 고안한 인물은 포르투 대학의 비토르 프라데였다. 30년 넘게 축구를 연구하다 공식적으로는 은퇴했지만, 여전히 전세계 수많은 축구 지도자 542명의 조언자로 활약 중이다. 축구를 공격, 수비, 신체, 정신 등 다양한 분야로 나눠 훈련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모든 훈련을 진행하면 된다는 프라데의 방법론은 인공두뇌학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프라데는 "공격적인 축구, 수비적인 축구 따위는 없다"며 축구는 하나의 유기적인 활동이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전술 주기화 방법론에 따라 훈련 프로그램을 짜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분석 능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우리 선수들의 특성을 분석해 어떤 분야를 발전시킬지 결정해야 한다. 또한 우리 팀의 지난 경기들에서 개선점을 찾고, 다음 상대팀을 분석해 훈련 프로그램을 계속 조정해 나간다. 벤투 감독이 국내에 들어와서 가장 많이 한 일 중 하나도 대표팀 선발 멤버들의 영상 분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분야별 코치들과 분석가들의 역량이 중요하며, 각 전문가들의 분석 내용을 통합해 훈련을 구성하게 된다. 벤투 감독이 각 분야별 전문 코치 4명과 함께 한국에 온 것, 김 위원장을 처음 만날 때부터 코치들이 모두 합석해 자기 전문 분야에 대해 설명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처럼 코칭 스태프에 분석 인원을 많이 투입할 수 있고, 컴퓨터로 분석할 수 있어야만 전술 주기화가 가능하다.

전술 주기화가 잘 적용될 경우 그 효과는 공격적인 전술이든 수비적인 전술이든 가리지 않고 팀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한국처럼 월드컵 예선에서는 공격적인 축구를, 본선에서는 수비적인 축구를 해야 하는 팀에 잘 맞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 벤투 감독을 포르투갈 대표팀(2010~2014)을 지도하던 시절에도 유로 2012 조별리그는 공격적으로 치르다가 대회 도중 수비적인 전술로 돌아선 경험이 있다.

다만 전술 주기화 방법론은 프로팀에 어울리지 대표팀과는 맞지 않는다는 회의론이 제기될 수도 있다. 전술 주기화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팀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방법이기 때문에 매 소집 기간이 3, 4일에 불과한 대표팀에서 얼마나 잘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멕시코도 포르투갈 감독 선임 고려하며 ‘주기화 이론’ 주목

포르투갈 감독 선임에 주목하는 건 한국만이 아니다. 한국과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상대했던 멕시코 역시 차기 감독으로 포르투갈 출신인 페드루 카이시냐 크루즈아술 감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 카이시냐 감독 역시 전술 주기화에 바탕을 두고 팀 훈련을 짜는 성향의 감독이다.

카시시냐 감독은 크루스아술의 비시즌 전지훈련을 4개의 시기로 구분하고 총 40여 개의 훈련 프로그램으로 세분화했다. 단 한 번의 훈련도 반복되지 않았다는 점이 화제를 모았다. 또한 상대에 대한 분석을 철저히 하는 것 역시 포르투갈 감독다웠다. 크루스아술은 최근 리그 라이벌 티그레스와 가진 경기에서 1-0 승리를 거뒀는데, 평소와 다른 포메이션을 통해 점유율은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상대에게 유효슛을 하나도 내주지 않아 ‘전술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과르디올라부터 세계 최약체까지, 이미 널리 퍼진 훈련법

유럽 축구 기준으로 보면, 전술 주기화는 이미 새로울 것 없는 이론이다. 전술 주기화를 통해 주목 받았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무리뉴 감독의 ‘아랫사람’이었다가 독립한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전 상하이상강 감독, 영국인이지만 전술 주기화 이론을 일찍 받아들인 브렌던 로저스 셀틱 감독 등이 있다. 이들이 ‘신세대’로 떠오르던 약 5년 전이 전술 주기화가 널리 전파되던 시기였다.

이제 전술 주기화는 수맣은 감독들이 기본적으로 습득하고 적용하는 훈련법이 됐다. AS모나코의 UEFA 챔피언스리그 돌풍을 이끈 레오나르두 자르딤, 왓퍼드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인 뒤 에버턴 감독으로 직장을 옮긴 마르코 실바 등 포르투갈 감독들은 기본적으로 전술 주기화 훈련법을 쓰고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도 전술 주기화의 방식을 받아들여 자기 훈련에 녹여낸 대표적인 인물이다. 심지어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이 192위인 쿡제도 대표팀조차 언젠가 월드컵 본선에 나가기 위해 전술 주기화를 도입했다고 말할 정도다. 국내에서도 부분적으로는 이미 도입돼 있는 훈련 방법론이다.

최근 전술 주기화는 축구를 넘어 럭비로 전파됐다. 호주 출신으로 잉글랜드 럭비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에디 존스 감독이 '축구에서 영향을 받았다'라고 밝히며 전술 주기화 방식을 럭비에 도입해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다.

“포르투갈 훈련법이 세계적으로 대세다. 아직 아시아까지 퍼지지 않았다. 내가 아시아축구연맹(AFC)과 FIFA에서 배워왔던 것과는 다른 수준의 경기 적용을 한다. 스페인 감독들이 포르투갈에서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이 분들의 훈련 계획 수립과 접근법은 분명 우리 대표 선수들을 만족시켜줄 거라 자신한다. 유럽에서 좋은 훈련을 받아 온 대표 선수들은 그동안 대표팀 훈련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이 갈증을 해결해 줄 것이다.” (김판곤 위원장)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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