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파울루 벤투 남자 축구 대표팀 신임 감독은 앞선 소속팀처럼 한국에서의 첫 기자회견도 딱딱하고 재미 없는 표현으로 시작했다. 벤투 감독에게 기대할 만한 건 재미있는 말이 아니라 재미있는 축구다.

벤투 감독은 23일 첫 기자회견을 가졌다. 통역을 거치고 신중하게 말하느라 한 시간 넘게 걸린 기자회견이었다. TV 생중계를 통해 축구팬들도 벤투 감독의 이야기를 직접 접할 수 있었다. 27일 열릴 벤투 감독의 첫 대표팀 소집 때는 기자회견 없이 보도자료 형태로 명단만 배포될 예정이다.

첫 인터뷰에서 벤투 감독의 화법이 잘 드러났다. 딱딱하고 정석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인터뷰였다. 벤투 감독의 말 중에는 화제를 모을 만한 표현이나 핵심을 찾기 힘들었다. 기성용, 구자철의 발탁 여부처럼 흥미로운 세부 사항에 대해 대답하긴 했지만 민감한 질문에는 대부분 정중한 표현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유일하게 벤투 감독이 말투를 바꿔 조목조목 자기 주장을 늘어놓은 건 충칭리판에서 실패하지 않았다고 항변할 때 정도였다. 벤투 감독은 2018시즌 시작부터 중국 구단 충칭의 감독을 맡았으나 지난 7월 사실상 경질에 가까운 사임을 했다. 취재진이 “충칭에서 실패했다고 본다면 그 실패에서 배운 건 무엇이었나”라고 묻자, 벤투 감독은 “실패가 아니었다. 정말이다”라며 충칭 시절의 목표, 사임 당시의 성적, 중국의 환경 등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근거를 여러 개 늘어놓았다.

이처럼 방어적인 태도는 벤투 감독이 앞서 지휘하던 팀에서도 이미 보여 준 것이다. 벤투 감독은 포르투갈 감독 시절 승리한 뒤 인터뷰에서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선수를 추켜세우며 화제가 될 만한 말을 하지 않았다. 보통은 “호날두도 우리 팀의 일원일 뿐”이라는 말로 다른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러다가 선수와의 불화설 등 논란이 될 만한 이야기가 나오면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종종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벤투 감독에게 ‘이미지메이킹’을 예상하긴 힘들다. 외국인 감독들은 때로 능숙한 언론 대응, 보기 좋은 활동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곤 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등 재치 있는 표현으로 인기에 불을 붙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각종 축구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 한때 ‘갓틸리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말까지 잘하면 금상첨화지만, 축구 감독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훈련과 전술 등 팀을 잘 이끄는 것이다. 벤투 감독이 앞으로 인터뷰에서 예민하고 날카로운 태도를 보이더라도 화법을 빌미로 공격할 필요는 없다. 감독들은 흔히 재미있는 표현을 하고 싶어 하며,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자신만의 화법을 개발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다. 벤투 감독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말투는 재미없어도 상관없다. 축구는 재미있을수록 좋다. 벤투 감독은 “친선경기와 공식경기를 가리지 않고,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보는 사람들이 자랑스러워 할 만한 경기를 하겠다”라고 선언했다. 벤투 감독은 명언 대신 명경기를 원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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