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고양] 김정용 기자= 파울루 벤투 신임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은 고집불통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조심스런 태도로 기자회견에 임했다. 한국의 수준을 평가해 달라는 민감한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대신 ‘2022 카타르월드컵’까지 믿어 달라는 메시지를 여러 번 전했다.

23일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엠블호텔에서 파울루 벤투 신임 감독의 취임 기자회견이 열렸다. 벤투 감독은 지난 20일 코치진 4명과 함께 입국했고, 22일에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포항스틸러스의 K리그1 경기를 관전했다.

벤투 감독의 이야기는 통역을 거쳐가며 1시간 넘게 진행됐다. 이 기자회견에서 미사여구와 이미 알려진 내용을 제외하고 핵심만 정리했다.

 

▲ 기성용 등 러시아월드컵 멤버 선발할 것

벤투 감독은 9월 7일 코스타리카전, 11일 칠레전을 통해 처음 대표팀을 소집한다. 이를 위해 27일 첫 대표 명단을 발표한다. 벤투 감독은 첫 번째 소집 명단에 기성용이 포함될 거라고 밝혔다. 기성용은 이미 대표팀 은퇴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지만, 벤투 감독은 “기성용은 이번에 소집한다. 기성용의 플레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소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성용뿐 아니라 구자철도 대표팀 은퇴를 고려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벤투 감독은 구자철과 통화를 했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이번 대표팀에서는 배제할 거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둘 다 은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벤투 감독의 바람이다. “기성용과 구자철은 대표팀에서 영향력이 크다. 아직 정확하게 결정은 나지 않았지만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선수들과 대화를 해 보겠다.”

두 선수를 비롯해 ‘2018 러시아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들이 첫 소집 명단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 국민들의 높은 기대치 당연해, 내 목표 잘 안다

벤투 감독은 2002년 이후 대표팀 감독의 평균 재임 기간이 1년 반에 불과하다는 점에도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다는 건 안다. 당연하다. 지난 9번의 월드컵에 연속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그 중 조별리그 통과는 두 번뿐이었다. 2002년 한국 대회 4강, 2010년 남아공 대회 16강이었다. 이 점이 내가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 중 하나였다. 모두가 기대를 하고, 믿음이 있고, 수준이 높다. 나는 월드컵에서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벤투 감독은 “오늘날 축구는 결과만을 따지며 감독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매우 강하다”라며 국민적인 비난 여론이 일 수 있다는 점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판곤 감독선임위원장과의 대화를 근거로 들며 자신이 카타르월드컵까지 신임 받을 것이며, 이 기간 동안 대표팀 발전을 책임질 거라고 말했다.

 

▲ 유망주 기용 할 생각이지만 이강인 한 명은 아냐

벤투 감독은 4년 뒤 대회를 준비하는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하는만큼 2022년에 활용할 만한 유망주가 있다면 지금은 어리더라도 선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질문 과정에서 이강인이 거론되자 발탁 가능성에 대한 즉답을 피했다. “더 자랄 수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발전시키는 것도 내 역할이다. 이를 위해 축구협회 유소년 정책도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 최대한 각급 유소년 대표팀 감독들과의 교류를 통해 정보를 많이 얻고, 유능한 선수에 대해 알아보겠다. 이강인은 한 예일 뿐이다. 나는 더 많은 선수들이 연령별 대표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강도’ 중시하는 벤투 “한국, 2002년보다 약해졌어”

벤투 감독은 체력과 투쟁심을 강조해 온 감독답게 한국 축구의 특징으로 ‘강도’와 ‘경쟁심’을 꼽았다. 경기에 님하는 자세가 느슨하지 않고 맹렬하다는 점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 점은 현역 시절 상대했던 ‘2002 한일월드컵’ 당시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이 가진 공통점이다. 다만 강도는 2002년에 비해 약해졌다는 생각을 슬쩍 내비쳤다.

“2002년과 지금의 축구를 비교하는 건 쉽지 않다. 어느 나라든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게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2002년 대표팀은 우리와 경기할 때 조직력이 아주 강했고 압박도 강했고 강도가 굉장히 높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도 성격과 스타일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강도가 조금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건 조직력을 통해 나아질 수 있고 다시 향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아시아 상대팀들의 수비적인 축구 예상

벤투 감독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경기를 시청했다며, A대표팀에서도 상대의 밀집 수비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키르기즈스탄전을 봤다.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는 성과를 냈지만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시안컵에서도 아시안게임처럼 수비적인 상대를 만날 것이다.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첫 소집부터 아시안컵까지 6차례 친선 경기를 통해 우리 팀의 스타일, 정체성을 만들고 그 다음 전술을 선택할 것이다.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전술을 고려할 것이다.”

 

▲ 벤투의 철학을 설명하는 키워드 ‘점유, 지배, 압박의 방법’

벤투 감독은 전술이 아니라 철학에 대해 설명했다.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국 대표팀의 정체성을 설립하면, 전술은 그 다음에 정한다고 했다. 벤투 감독이 말한 철학은 김 위원장이 이야기한 감독 선임의 기준과 여러모로 일치했다. 둘 다 현대 축구의 일반론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감독마다 철학이 있고 스타일이 있다. 그리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정체성을 찾을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볼을 점유하고 경기를 지배하며 기회를 창출하는 경기를 하고 싶다. 수비 면에서는 언제, 어떻게, 어느 강도로 압박하고 수비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다. 공격할 때는 우리 팀이 항상 시발점을 갖고 리스크를 줄이며 공격적으로 하는 팀이 되었으면 한다. 전체적으로 강도가 높고 90분 동안 뛰며 우리의 축구를 하고 싶다.”

 

▲ 벤투의 ‘방어’, 충칭에서 실패하지 않았다

벤투 감독은 가장 최근 역임한 충칭리판 감독직에서 1년을 못 채우고 경질됐다. 경질 이후 무직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 감독으로 부임할 수 있었다. 벤투 감독은 중국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경질되기 직전까지 자신은 그리 부진하지 않았다며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솔직히 말하고 싶은 건, 나는 중국에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이다.”

“중국은 환경이 달랐고 어려웠다. 한국에 오니까 어떻게 달랐는지 많이 깨닫게 됐다. 중국에서는 우리가 한 번도 하지 않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다.”

“우리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구단에서 내게 설정한 목표는 1부 리그 잔류였다. 그리고 해내고 있었다. 시즌 중에도 한 번도 강등권에 내려간 적이 없다. 충칭에서 얼마든지 더 나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본다.”

 

▲ 조심스런 태도로 “한국 축구 수준 평가하지 않겠다”

한국 선수들의 수준이 16강을 노리기에 충분하냐는 질문을 받자, 벤투 감독은 대답을 피했다. “아직 답하기 이르다. 한국 수준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지만 어디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하긴 이르다. 직접 본 경기는 어제 한 경기뿐이었다. 최종 예선이나 본선을 직접 보지 않았다.”

대신 벤투 감독은 일종의 립서비스가 포함된 긍정적인 표현으로 발언을 맺으려 했다. “영상을 볼 때 긍정적인 면을 많이 봤다. 그래서 한국에 오기로 결정했다. 한국은 조직적이고 역습을 잘 활용하는 팀이었다. 어떤 시점에는 좋은 수비 조직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공을 잃었을 때 빠른 반응을 보여주기도 했다. 강한 캐릭터, 투쟁하는 기질을 보여줬다.”

벤투 감독은 “팬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대표팀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나친 비판은 자제하고 응원해달라고 당부하고 싶다”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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