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파울루 벤투가 ‘2022 카타르월드컵’까지 남자 축구대표팀을 이끌 새 감독으로 선임됐다. 벤투 감독의 가장 큰 성공 무대였던 ‘유로 2012’는 기대를 갖게 하는 요소다.
기자는 유로 2012 당시 대회 전체를 현장에서 취재했다. 그중 포르투갈의 조별리그 네덜란드전(2-1 승), 8강 체코전(1-0 승), 4강 스페인전(0-0 후 승부차기패)을 관전하고 기자회견에서 벤투 감독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약해진 선수단으로 4강 갔던 '유로 2012'
유로 2012에서 벤투 감독의 성적은 4강이었다. 바로 다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벤투 감독의 성과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치부되긴 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충분히 준수했다. 첫 번째 근거는 우승팀 스페인을 가장 많이 괴롭힌 팀이 포르투갈이었고,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이유가 승부차기였다는 점이다. 포르투갈의 전적은 유로 2012에서 3승 1무 1패, 우승한 유로 2016에서 3승 4무였다. 승률은 오히려 2012년이 더 높았다.
벤투 감독의 4강이 준수한 성적이었던 두 번째 이유는 포르투갈의 선수 구성이 과거에 못 미치는 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미드필드가 그랬다. 포르투갈은 ‘유로 2004’까지 중원을 이끈 후이 코스타, 브라질에서 귀화해 그 뒤를 책임진 데쿠까지 천재 플레이메이커를 가진 팀이었다. 반면 2012년에는 이들이 모두 대표팀을 떠난 시기였다. 또한 주앙 마리우, 헤나투 산체스 등 ‘유로 2016’ 우승의 주역들이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시기였다. 2012년은 지난 20년을 통틀어 포르투갈 미드필드의 최고 암흑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포르투갈의 고질적인 문제인 최전방 공격수 부족은 2012년에도 여전했다.
호날두 활약 이끌어낸 숨은 힘은 벤투의 전술
창의성이 부족한 포르투갈을 가장 강력한 팀으로 만들기 위한 벤투 감독의 방법은 ‘중앙은 단단하게 수비적으로, 측면은 빠르고 공격적으로’라고 요약할 수 있다. 2012년은 특히 호날두의 전성기였다. 이때 호날두는 골대와 30m 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높은 확률로 득점할 수 있고, 문전 침투 능력도 점점 물오르고 있었다. 개인 기량만 보면 이때가 호날두의 전성기였다.
벤투 감독은 호날두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전술을 만들어냈다. 이때 호날두는 왼쪽 윙어로 경기를 시작하되 수시로 자리를 바꾸는 프리롤로 뛰었다. 호날두의 위치에 따라 동료들의 자리가 유동적으로 움직였다. 호날두가 중앙 공격수 자리에서 한참 머무르면 에우데르 포스티가 또는 우구 알메이다 등 최전방 공격수가 왼쪽으로 빠졌다. 호날두가 섀도 스트라이커 위치로 가면 오른쪽 윙어인 나니가 측면으로 더 이동하며 공격의 폭을 넓혔다. 호날두가 측면을 떠나 발생하는 왼쪽 공백은 풀백인 파비우 코엔트랑이 전진해 지원했다. 전술의 힘을 받은 호날두는 3골로 공동 최다득점자가 됐다.
당시 포르투갈은 창의성이 떨어지는 대신 팀 플레이가 가능한 미겔 벨로수, 하울 메이렐레스, 주앙 무티뉴로 미드필드를 구성했다. 벨로수는 수비진 보호와 첫 패스 배급, 메이렐레스는 중원 압박과 에너지 제공, 무티뉴는 영리한 위치 선정으로 동료가 노출한 빈틈을 메우는 한편 적절한 침투와 패스로 윙어의 전진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았다. 세 명의 유기적인 위치 변화, 호날두의 배후를 커버하는 것도 미드필더들이 전술적으로 잘 조련됐다는 걸 보여줬다.
포르투갈의 단단한 미드필드는 준결승에서 충분히 가치를 드러냈다. 당시 스페인은 너무 느린 축구를 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전을 뺀 5경기에서 12득점(경기당 2.4득점)을 했다. 무득점 경기는 포르투갈전뿐이었다. 포르투갈의 수비 조직력은 스페인을 승부차기까지 몰고 갈 정도로 충분히 탄탄했다.
포르투갈은 조별리그 초반 두 경기에서 3득점 3실점하며 흔들렸다. 이후 벤투 감독은 현실적인 선택을 했다. 공격을 다소 포기하고 수비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가 4강 진출이었다.
감정 숨기고 날카롭게 말하는 화법
벤투 감독은 고집이 강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성향은 히카르두 카르발류(포르투갈) 등 선수들과의 불화설로 이어지기도 했다. 벤투 감독의 날카로운 면모는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호날두에 대한 질문에 쏟아지자, 벤투 감독은 “선수 개인에 대한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매번 단호하게 거부했다. “호날두의 플레이는 우리 전술 시스템에 따른 것”이라며 호날두를 팀의 일원으로 거론할 순 있지만, 호날두에 대한 의존도 등 민감한 이야기가 나오면 호날두가 득점한 경기에서도 물리쳤다. 호날두를 ‘레전드’ 루이스 피구와 비교하는 질문 역시 답변을 거부했다.
벤투 감독은 그라운드에서는 정열적인 태도,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는 피곤한 눈빛과 침착한 태도로 일관했다. 유로와 같은 큰 대회의 기자회견은 말의 내용보다 태도와 단어 선택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벤투 감독은 친절한 말투 대신 날카로운 말투로 자신의 팀이 왜 경쟁력을 갖췄으며, 자신의 선수들이 왜 강한지를 설명하는데 집중했다.
강호 네덜란드와의 벼랑 끝 승부에서 승리해 토너먼트에 진출했을 때도, 8강에서 체코를 간신히 꺾었을 때도 벤투 감독은 기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은 숨기는 대신 선수들에 대한 자부심을 말하는 것이 벤투 감독의 화법이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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