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 축구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합류한 세리에A, 이승우가 현재 소속된 세리에B 등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비록 세리에B(2부)로 떨어졌지만, 이승우는 프로 2년차로서 희망찬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엘라스베로나는 ‘2018/2019 이탈리아세리에B’에서 이승우를 주전으로 대우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즌 첫 공식 경기부터 이승우가 선발 출장해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베로나는 6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베로나에 위치한 홈 구장 스타디오 마르크안토니오 벤테고디에서 ‘2018/2019 코파이탈리아(이탈리아컵)’ 2라운드를 갖고 3부 리그 구단 유베스타비아를 4-1로 대파했다. 3라운드로 진출한 베로나는 역시 3부 구단 카타니아를 상대하게 된다. 3라운드부터는 세리에A 팀도 가세하기 때문에 베로나는 대진 운이 좋은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승우는 베로나의 시즌 첫 공식 경기에 선발 출장해 후반 37분 루카 마로네로 교체될 때까지 그라운드를 누볐다. 베로나는 4-2-3-1과 4-1-4-1 포메이션을 오갔고, 이승우는 왼쪽 윙어로 뛰다가 후반전에 잠깐 오른쪽 윙어로 포지션을 바꿔 활약했다. 골이나 도움은 기록하지 못했지만 경기력이 준수했다.

 

2골에 관여한 이승우

이승우는 베로나의 네 골 중 두 골에 기여했다. 전반 33분, 이승우가 프리킥을 얻어냈다. 왼쪽 전방으로 올라가 있다가 롱 패스를 받으며 베로나의 속공을 이끌었다. 이승우의 돌파에서 반칙이 나왔다. 카림 라리비의 프리킥을 안토니오 카라촐로가 마무리하며 베로나의 경기 두 번째 골이 터졌다.

후반 16분에는 이승우의 비중이 더 큰 골이 터졌다. 이승우는 사무엘 구스타프손에게 패스를 건네받아 돌아서자마자 한 명 제치고 바로 돌진하는 특유의 드리블로 유베스타비아 수비를 흔들었다. 이승우가 수비 2명을 유이한 뒤 옆에 있던 리암 헨더슨에게 패스했고, 헨더슨의 어시스트를 잠파올로 파치니가 마무리했다. 파치니는 골을 넣자마자 옆에 있던 이승우와 얼싸안고 환호했다.

결정적인 플레이는 아니지만 선제골 상황 역시 이승우의 플레이가 도움을 줬다. 이승우가 중앙에서 드리블로 공을 몰고간 데서 공격이 시작됐다. 이후 오른쪽 측면으로 이동했던 공이 크로스로 이어졌고, 알레산드로 크레센치의 크로스와 리데르 마토스의 마무리로 연결됐다.

이승우는 네 번째 골 상황에서도 계속 득점 가능 지역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 골 냄새를 잘 맡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골의 경우, 헨더슨이 스루패스를 할 때 동료 공격수 사무엘 디카르미네와 이승우가 나란히 전방 침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승우의 움직임은 유베스타비아 수비수들을 혼란시켰고, 디카르미네가 노마크 상태에서 슛을 날릴 수 있게 도왔다.

 

빈틈 찾아다니는 스타일 여전

이승우는 왼쪽 윙어로서 경기를 시작했다. 왼쪽 측면으로 최대한 넓게 서서 동료의 쉬운 패스를 이끌어낸 뒤 중앙으로 드리블해가기도 했고, 측면도 중앙도 아닌 ‘하프 스페이스’에서 동료들과 공을 주고받으며 수비수들이 곤혹스러워 할 만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모두 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출신답게 공간 이해도가 높은 플레이였다.

전반 막판 유베스타비아 페널티 지역 안을 드리블로 마구 헤집은 뒤 힐 패스로 완벽한 득점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 이승우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다만 라리비의 슛은 골대를 벗어났다. 후반 15분에는 상대 수비가 잘못 걷어낸 공을 주워 바로 슛을 날렸으나 다른 수비수의 몸에 맞고 무산됐다.

수비할 때 위치 선정도 좋았다. 이승우는 풀백 앞의 공간을 잘 커버했다. 수비 가담, 팀 수비가 성공했을 때의 공격권 유지, 속공이 가능할 경우 전방으로 질주하는 플레이가 모두 가능한 위치를 잘 찾아다녔다.

 

호흡 잘 맞는 동료 헨더슨, 아직 애매한 크레센치

이날 경기에 나선 멤버 중 가장 중요한 미드필더는 스코틀랜드 출신 미드필더 리암 헨더슨이다. 셀틱의 유망주였으나 올해부터 이탈리아로 건너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헨더슨은 이날 출장한 베로나 미드필더 중 가장 기술과 지능이 뛰어난 선수였다. 전반에는 헨더슨이 레지스타(이탈리아식 포지션 용어로, 주로 플레이메이커의 기질이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가리키는 말)로서 수비 앞을 보호하고 구스타프손이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활동했다. 그러나 구스타프손의 공격 가담,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 라리비의 창의성 모두 신통치 않았다.

파비오 그로소 감독은 후반전에 전술을 바꿨다. 구스타프손은 유일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남겨두고 헨더슨을 자주 공격에 가담하도록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메이션은 라리비, 헨더슨이 모두 공수를 오가는 4-1-4-1에 가까워졌다.

두 포메이션 모두 이승우와 헨더슨의 호흡이 좋았다. 헨더슨이 왼쪽 후방에 치우쳐 있던 전반전에는 이승우와 함께 빌드업을 해 나갔다. 헨더슨이 전방으로 자주 올라간 후반전에는 이승우의 돌파와 헨더슨의 패스가 잘 조화를 이뤘다. 특히 세 번째 골 상황에서 이승우의 돌파에 이은 패스를 받아 헨더슨이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헨더슨은 이날 2도움을 올리며 베로나 중원의 새 핵심이 될 것을 예고했다.

이승우와 호흡이 맞아야 하는 두 번째 포지션은 왼쪽 풀백이다. 이날 출장한 AS로마 출신 크레센치는 아직 이승우와 많은 호흡을 맞춰보지 못했다. 이승우가 중앙으로 이동할 때 크레센치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모습은 좋았다. 그러나 저돌적이라는 장점과 함께 다소 투박하다는 단점도 있었다. 이승우가 중앙으로 가자 크레센치가 상대 문전까지 침투해 어시스트할 정도로 과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베로나가 앞서가기 시작한 뒤에는 수비에 치중했기 때문에 이승우와 호흡을 맞출 일이 더 없었다.

 

아시안게임 호재 둘, 3-5-2 포메이션과 경기 감각

이승우는 이 경기만 뛰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한다. 이미 소집돼 있는 국내파 동료들에 비해 합류 시점이 늦기 때문에 체력과 조직력 모두 우려를 받고 있다.

한국은 3-5-2 포메이션을 준비 중이다. 이날 베로나는 후반전에 이승우를 빼고 수비수 마로네를 투입하며 3-5-2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줬다. 팀 훈련에서도 3-5-2를 경험해 왔다는 건 한국 전술에 대한 적응 시간을 그나마 줄여 줄 것으로 보인다.

단순한 평가전이 아닌 실전 경기를 통해 감각을 끌어올리고 온다는 점도 불행 중 다행이다. 유베스타비아는 3부 구단이긴 하지만 지난해 이탈리아 3부에서 4위를 기록하며 승격권까지 들었던 팀이다. 이승우는 아시안게임보다 수준이 높은 프로 수준 경기로 워밍업을 한 뒤 한국으로 온다.

김학범 아시안게임 남자 감독은 이승우를 최전방이 아닌 2선에 배치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투톱 자원이 황의조, 손흥민, 황희찬, 나상호까지 충분하기 때문에 이승우는 좀 더 후방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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