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 축구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합류한 세리에A, 이승우가 현재 소속된 세리에B 등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좋게 떠난 선수가 돌아오는 법은 있어도 싸우고 떠난 선수가 돌아오는 건 어렵다. 싸우고 떠난 선수가 수 년 뒤 돌아오는 경우는 가끔 있어도 1년 만에 돌아오는 건 더 어렵다. 레오나르도 보누치는 그걸 해냈다.

유벤투스와 AC밀란은 3일(한국시간) 대형 이적 세 건을 발표했다. 수비수 레오나르도 보누치가 AC밀란에서 유벤투스로, 마티아 칼다라가 유벤투스에서 밀란으로 맞트레이드됐다. 공격수 곤살로 이과인은 임대료 1,800만 유로(약 236억 원), 완전 이적시 이적료 3,600만 유로(약 471억 원) 조건으로 유벤투스를 떠나 밀란으로 갔다. 유벤투스 측의 발표에 따르면 두 가지 거래는 동시에 진행됐다. 사실상 유벤투스는 보누치와 5,400만 유로를 얻고, 밀란은 칼다라와 이과인을 얻는 ‘세트’ 이적이다.

이 이적은 두 가지 큰 의미를 가진다. 첫 번째는 밀란의 전력 보강이다. 지난 시즌 밀란 선수단 중 가장 약한 곳이 최전방이었다. 밀란은 지난 시즌 다양한 포지션에 선수를 영입했지만 유독 최전방 공격수만 안드레 실바, 니콜라 칼리니치라는 최고가 못 되는 선수만 두 명 영입했고 모두 경쟁력을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최상급 스트라이커 이과인이 밀란에 합류하면서 단숨에 전력이 상승했다.

두 번째 의미는 리그 판도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대신 더 흥미롭다. 보누치의 유벤투스 복귀다. 보누치는 1년 전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유벤투스 감독과의 불화 끝에 밀란으로 이적했다. 보누치는 2010년 유벤투스로 영입돼 전성기를 모두 함께 한 ‘충신’이었으나 지난해 불화설이 이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여전히 알레그리 감독이 지도하고 있는 유벤투스로 돌아왔다. 축구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 정도로 괴상한 상황이다.

 

유벤투스의 호날두 영입이 이과인 방출로 이어졌다

이번 이적을 촉발시킨 첫 번째 요인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유벤투스 이적이다. 유벤투스는 올여름 1억 유로(약 1,308억 원)를 레알마드리드에 지불하고 호날두를 영입했다. 역대 30대 선수 최고 이적료다. 지난 2016년 나폴리에서 이과인을 영입하며 세웠던 이탈리아 구단 최고 이적료 기록 9,130만 유로(약 1,194억 원)를 스스로 경신했다.

이탈리아의 ‘칼초메르카토닷컴’을 비롯한 여러 매체는 호날두 영입 이후 유벤투스 측이 먼저 이과인의 매각을 추진했다고 보도했다. 호날두와 이과인은 공존했을 때 효율이 떨어지며, 호날두 중심 체제를 세웠다면 이과인의 몸값을 최대한 후하게 받으며 다른 팀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 유벤투스의 분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선수는 레알 시절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과인은 2007년부터 2013년까지 레알에서 뛰었다. 호날두가 2008년 레알로 영입되자 이과인은 공존에서 문제를 겪었다. 레알의 1987년생 동갑내기 공격수 중 카림 벤제마는 2선의 동료들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플레이가 특기였고, 이과인은 날카로운 결정력을 살리기 위해 최전방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은 ‘득점 전문가’로 성장 중이었다. 스스로 주인공이 되기보다 호날두의 조력자가 되기에 적합한 선수는 벤제마였다. 이과인은 나폴리로 팀을 옮겨야 했다.

슈퍼스타의 영입에 따라 기존 스타가 팀을 떠나는 건 주로 축구보다 농구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농구는 인원이 더 적기 때문에 선수 사이의 역할이 겹치거나 조합이 맞지 않으면 공격 효율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이과인은 호날두와 같은 공격진의 일원이기 때문에 두 선수의 조합이 잘 맞아야 했고, 유벤투스 경영진은 회의적인 평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과인이 떠난 두 번째 이유는 재정적 문제다. 스타가 영입됐다고 해서 다른 스타를 보내는 것 역시 샐러리캡이 존재하는 농구 등 다른 스포츠에서 주로 보이는 경영 방식이다. 그러나 유럽축구는 유럽축구연맹(UEFA)이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제도를 도입한 뒤 매우 느슨한 샐러리캡이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운영돼 왔다. 유벤투스가 이과인을 내보내려면 가장 큰 목표는 최대한 이적료를 받아내는 것이지만, 만약 거액을 받기 힘들다면 최소한의 목표는 FFP 장부에서 이과인이 잡아먹는 분량을 모두 털어내는 것이다.

유벤투스가 밀란으로부터 받을 이적료 총액 5,400만 유로(완전이적시)는 FFP 제도에서 유벤투스가 벌어야 했던 금액과 거의 일치한다. 이과인은 2년 전 9,130만 유로에 영입돼 5년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감가상각이 적용되는 FFP의 회계 계산에 따르면 매년 1,826만 유로(약 239억 원)의 지출이 5년에 걸쳐 장부에 기재되는 상태였다. 그중 3년이 남았기 때문에 이과인의 잔여 몸값은 5,478만 유로(약 716억 원)가 됐다. 유벤투스는 거의 정확하게 이 액수를 밀란으로부터 받아내며 장부상 이과인이 잡아먹던 FFP 영입 한도를 모두 털어냈다.

다만 이과인이 요구한 거액의 연봉을 밀란이 모두 책임지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번 이적에서 불리한 입장이었던 유벤투스는 연봉 보조를 감수했다. 이과인은 밀란과 연봉 900만 유로(약 118억 원)에 3년 계약을 맺었다. 유벤투스는 3년 동안 연봉 중 150만 유로(약 20억 원)를 밀란 대신 지불하게 된다. ‘악성 계약’을 처리하고 싶을 때 다른 구단의 연봉을 보조해주는 것 역시 축구보다는 야구 등 다른 종목에서 흔히 보이는 트레이드 방식이다.

 

보누치는 왜?

보누치가 밀란을 떠날 마음을 먹은 건 2017/2018시즌 막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애초 보누치는 유벤투스를 떠나며 타국 구단으로는 가기 싫다는 입장이었고, 세리에A 구단 중 가장 성장세가 눈에 띄었던 밀란에 합류하기로 했다. 당시 몰락한 명문 밀란은 중국계 자본을 받아들여 이탈리아 정상으로 복귀하려 노력 중이었다. 보누치가 부활 프로젝트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중국계 자본은 인수 과정에서의 사기 의혹 등이 불거지며 한 시즌 만에 물러났고, 미국계 엘리어트 매니지먼트가 새 소유주가 됐다.

밀란은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진출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재정 문제 때문에 UEFA 유로파리그 진출권까지 박탈당할 뻔했다. 보누치는 이때부터 밀란을 떠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누치에게 관심을 가졌다고 알려진 팀은 잉글랜드의 맨체스터유나이티드, 프랑스의 파리생제르맹(PSG) 등 여럿이었지만 보누치는 이번에도 이탈리아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특히 보누치의 가족은 여전히 유벤투스의 연고지인 토리노에 집을 가지고 있으며, 보누치의 친한 친구들 역시 오랫동안 산 토리노에 남아 있다. 기차로 1시간 10분 거리에 불과한 도시지만 보누치 가족은 토리노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밀란과 달리 유벤투스는 호날두를 영입하며 다시 한 번 UCL 결승에 오를 만한 전력으로 성장했다. 보누치는 유벤투스에서 두 차례 UCL 결승 무대를 밟았으나 모두 준우승에 그친 바 있다. 보누치는 유벤투스로 가고 싶다는 의사를 두 구단에 모두 전달했다.

밀란은 급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받아냈다. 애초에 유벤투스는 보누치와 이과인이 맞교환되면서 약간의 현금이 함께 오가는 거래를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보누치 역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선수지만 유벤투스는 이과인의 처분이 더 급했고, 만약 보누치가 영입된다면 칼다라나 다니엘레 루가니 중 한 명을 다른 팀으로 이적시키면 그만이었다. 둘 다 젊은 이탈리아 대표 수비수로서 이적 시장에서 인기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밀란이 칼다라를 원하면서 거래 규모가 더 커졌다. 칼다라는 2017년 1월 유벤투스에 영입됐지만 당시 소속팀 아탈란타에 임대 형식으로 남아 활약해 왔다. 올여름 마침내 유벤투스 선수단에 합류했고, 수비력과 공격력을 겸비한 독특한 센터백으로서 맹활약할 것이 기대되는 선수였다. 밀란이 보누치와 칼다라의 일대일 교환을 요구했고, 유벤투스가 이에 응했다. 유벤투스는 칼다라를 한 번도 활용하지 못하고 밀란에 넘기게 됐다.

이적 결과 두 구단의 전력은?

유벤투스는 이과인이 없어도 호날두, 파울로 디발라, 마리오 만주키치,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 더글라스 코스타, 후안 콰드라도 등 다양한 공격 재능을 보유한 팀이다. 유일하게 전형적인 골잡이었던 이과인을 내보냈다는 점에서, 득점에만 주력하는 역할은 호날두에게 맡기겠다는 계획을 읽을 수 있다.

칼다라는 유벤투스가 한 번도 활용하지 못한 전도유망한 선수라는 점에서 아깝지만, 여전히 세계적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보누치가 다시 합류했다는 건 지난 시즌보다 전력이 향상됐다고 볼 수 있는 요인이다.

밀란의 경우 위에서 본 것처럼 전력이 분명 상승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시즌 주전이었던 보누치의 이탈은 아쉽지만, 칼다라는 더 오래 밀란의 재건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 있는 선수다. 밀란에는 칼다라보다 한 살 더 어린 23세 유망주이자 역시 이탈리아 대표인 알레시오 로마뇰리도 뛰고 있다. 두 선수의 조합은 밀란을 10년 넘게 책임질 수 있는 차세대 이탈리아 주전 수비진이다. 이미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전으로 올라선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도 있다. 이탈리아 수비의 현재가 유벤투스라면, 미래는 밀란이다.

유벤투스는 현재를 샀고, 밀란은 이과인으로 현재 공격을 강화함과 더불어 미래를 샀다. 복잡하고 특이한 이적의 결과 두 팀이 얻은 성과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유벤투스 공식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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