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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용의 러시아 기행] 여기가 러시아인지 멕시코인지
김정용 기자 | 승인 2018.06.24 13:00

[풋볼리스트=로스토프나도누(러시아)] 김정용 기자= 멕시코에 러시아 사람들이 놀러온 것 같네요. 로스토프나도누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진행을 돕고 있는 이승헌 씨의 말이다. 이승헌 씨는 아시아축구연맹(AFC) 미디어담당관이 본업이고, 현재는 월드컵에 파견돼 대회 운영을 맡고 있다.

한국은 24일(한국시간) 러시아의 로스토프나도누에 위치한 로스토프 아레나에서 가진 ‘2018 러시아월드컵’ F조 2차전에서 멕시코에 1-2로 패배했다. 로스토프나도누는 영어식으로 로스토프 온 돈이라고도 표기한다. 돈 강을 끼고 있는 로스토프라는 뜻이다. 모스크바 인근의 유서깊은 도시 로스토프와 구분하기 위해 수식어를 붙였다. 한국은 니즈니노브고로드에 이어 강변에 있는 경기장에서 뛰었다.

로스토프는 경기 전 많은 불안감을 자아낸 곳이었다. 한국의 베이스캠프와 경기 장소 중 가장 작은 도시다. 인구가 100만 명이 넘으니 소도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 중심부와는 떨어져 있다. 차라리 우크라이나에 가깝다. 그래서 항공편을 구하기도, 숙소를 구하기도 힘들었다. 호텔이든 아파트든 시설에 비해 터무니없이 가격이 비쌌다.

막상 와서 접한 로스토프는 뜻밖의 활기가 있는 도시였다. 유독 날씬한 로스토프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남자들은 러닝셔츠나 민소매 옷을, 여자들은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거나 등 혹은 배 부분이 크게 파인 옷을 입고 다닌다. 숙소 근처 아무 국수 가게에나 들어갔는데 한국이라면 ‘힙하다’고 말할 만한 세련된 인테리어를 만났다. 러시아에서 가장 인테리어가 뛰어난 10대 가게로 꼽혔다고 했다.

분위기가 좋은 술집이 도시 규모에 비해 많고, 한밤중에는 돈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로 연인들이 거닐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승헌 씨는 “현지인들이 휴양지로 오는 곳이다. 사람들이 친절하다. 주중에는 차분하고, 주말엔 강 주변 레스토랑이 북적인다. 대회 관계자들끼리는 로스토프가 개최지 중 최고라고 꼽는다”라고 말했다.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구식 철도 박물관, 우주비행사 박물관 등 덕후들이 침을 흘릴만한 시설이 잔뜩 있다.

그러나 23일부터 24일까지 로스토프는 거의 멕시코 땅이나 다름없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어딜 봐도 눈에 띄었다. 특히 경기 당일에는 경기 전부터 그들이 한국에 승리한 뒤까지 온통 멕시코 사람 투성이였다. 경기장으로 가는 팬 셔틀 버스를 탔다. 실수였다. 낮 2시, 땀으로 흠뻑 젖은 멕시코 아저씨는 양손에 맥주(왜 한 손에는 1.5리터, 다른 손에는 0.5리터 짜리 맥주를 들고 번갈아 마시는지 모르겠다)를 들고 벌컥벌컥 마시며 맥아 냄새가 섞인 날숨으로 응원가를 불러댔다. 새벽 길거리에서나 날 법한 퀴퀴한 냄새가 버스를 채웠다.

경기 중에도 멕시코 인들의 엄청난 응원 소리는 경기 분위기를 압도했다. 비록 한국인들이 숫자가 부족해도 특유의 단결력 높은 응원 구호로 응수하긴 했지만, 어딜 봐도 녹색뿐인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킥오프 전 멕시코 국가가 연주될 때는 타국 사람인 나도 전율이 올 정도로 엄청난 노랫소리가 들렸다. 이번 대회는 득점 상황마다 각 팀에 맞는 응원가가 나오게 되어 있다. 영화 ‘코코’를 연상시키는 멕시코풍 노래가 두 번 먼저 울렸다. 한국의 응원가는 추가시간에야 겨우 들을 수 있었다. 그거라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경기 후 번화가인 볼샤야 사도바야 거리 주위에는 흥분한 멕시코 팬들의 노랫소리, 잠에 들려는 사람들을 깨우는 경적과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렸다. 2승을 거둔 나라의 팬은 어떤 기분인지 나도 좀 느껴보고 싶다 이것들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이 승리했다면 얼마든지 ‘러시아 속의 한국’이 될 수도 있는 땅이었다. 로스토프 밤거리를 딱 두 블록 걷는 동안 러시아 젊은이 두 명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걸어 왔다. 고려인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고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도 많다는 로스토프는 친한국적인 면이 있는 도시였다. 러시아 사람으로서 한국적인 테마를 다뤄 서울에서 개인전도 열었던 젊은 작가 알료나 코발추크 씨도 로스토프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시내에서 한국어로 된 설치 미술도 만날 수 있었다. 이젠 모두 패자를 위한 위로에 불과한 작품이 되었다.

한국 선수단은 현지시간 23일 밤 11시 비행기를 타고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갔다. 황급히 한국 선수들이 떠났고, 돈 강 유역의 로스토프는 멕시코인들의 파티를 위한 도시가 되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김정용 기자  cohenwise@firstdivi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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