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김정용 기자= 어쩌면 월드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력도 전술도 아닌 컨디션이다. 한국이 멕시코를 잡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도 컨디션 회복이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을 잡은 멕시코, 현재까지 경기당 4골로 조별리그 최강 공격력을 보여주는 러시아 등 화제의 팀들은 공통점이 있다. 몸놀림이 가볍고 망설임이 없다는 것이다. 멕시코는 독일 선수들이 따라가지 못한 고속 역습으로 승리했다. 러시아는 경기 내내 엄청난 체력과 스피드를 발휘해 도핑 논란까지 나온 팀이다. 인상적인 경기를 한 세네갈, 이란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지난 18일(한국시간) 스웨덴을 잡아내지 못한 원인 중 하나도 체력에서 장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속공으로 득점하려는 계획을 들고 나왔으나 역습 기회 때 스웨덴 진영으로 쇄도하는 선수의 숫자와 속도가 모두 부족했다. 스웨덴 수비의 복귀 속도보다 한국 공격의 침투 속도가 빨라야만 효과를 낼 수 있는 공격이지만 여기서 실패했다.

일부 불운한 부분도 있었다. 이용은 경기 초반 상대 선수와 충돌해 근육에 약간 타격을 받았다. 부상은 아니지만 운동능력이 약간 저하된 상태에서 경기를 소화했다. 교체카드가 충분했다면 이용을 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박주호가 부상을 당한 뒤 이용은 풀타임을 소화해야 했다. 이용은 24일 멕시코전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오히려 자기 진영에만 웅크린다고 알려져 있던 스웨덴이 역습을 해야 할 때는 더 빠르게 공격으로 올라갔다. 후반 20분 한국의 빌드업 실수에서 비롯된 스웨덴의 득점 기회가 빠르고 위협적인 공격 전개로 이어졌고, 결국 페널티킥 골로 승부가 갈렸다.

경기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체력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스웨덴전 후반으로 갈수록 지쳐 보였다는 질문에 구자철은 즉답을 피했다. 대신 “굉장히 힘들었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해 파워 프로그램(대회 전 특별 체력 훈련)을 소화했다. 결과론 같다. 어제 승리했다면 그런 부분이 거론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만 대답했다.

멕시코를 상대로 최소한 에너지에서 눌리지 않아야 승산이 있다. 그러려면 체력 회복이 선결 조건이다. 스페인에서 다양한 대륙의 선수들과 어울리며 성장해 온 이승우는 “멕시코 선수들이 투지도 많고 파워풀하다. 중남미 선수들에게는 강하게, 투지에서 지면 안 된다. 기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기 싸움에서 이기려면 한 박자 빠르게 뛰면서 부딪치는 플레이가 필요하고, 결국 체력이 있어야 기 싸움도 할 수 있다.

정신적 회복 역시 관건이다. 경기 직후 장현수 한 명을 꼬집어서 거론하는 기사가 나온 이후 여러 선수들 사이에서 문제의식이 생겼다. 구자철은 보도에 대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장현수 기사를 “선수들도 다 본다”라고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선수들이 비난 여론을 의식하고 움츠러들 위험성을 보여준다.

한국은 스웨덴전에서 월드컵 첫 경기라는 중압감에 밀려 시야가 좁아진 모습을 많이 보였다. 황희찬은 측면에서 폭발적인 플레이를 몇 번 해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끝난 뒤 “개인적으로 정말 긴장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경기장 와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더라. 월드컵이란 세 글자에 떨리고 압박감이 굉장하다는 것을 느꼈다. 경기 뛰면서 많이 놀랐다”라고 말한 바 있다.

긴장으로 인해 시야가 좁아진 상태에서는 일반적으로 패스 타이밍이 늦어지고, 역습 속도 역시 그만큼 늦어진다. 역습과 역습의 대결로 벌어지는 이번 월드컵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속공 상황에서 첫 번째 패스를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하는 것이다. 역시 멕시코, 러시아가 잘 해내는 플레이다.

한국은 월드컵에서 가장 응원단 숫자가 적은 나라에 속한다. 남은 상대 중 멕시코는 열정적으로 응원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고, 독일은 인접한 유럽 국가라 찾아온 팬의 숫자가 많다. 한국 선수들은 매 경기 원정 같은 분위기에서 경기해야 한다. 감정 조절 문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스웨덴을 상대로 황희찬, 장현수는 울컥 화를 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회복은 어느 대회, 어느 경기에서든 가장 중요하다. 이번 월드컵은 대회 양상과 흐름상 특히 회복이 중요한 대회가 됐다. 템포가 느린 팀을 상대로 빠른 팀이 선전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한국 역시 일시적으로라도 템포를 끌어올려 승리하려면 상쾌한 상태로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게 먼저다.

한국은 21일 초반 공개와 인터뷰조차 없이 언론과 완전히 차단된 채 전면 비공개 훈련을 한다. 비밀 전술 훈련보다 중요한 건 컨디션이다. 선수들이 중압감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을 회복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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