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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용의 러시아 기행] 아름다운 니즈니를 떠나며
김정용 기자 | 승인 2018.06.19 11:13

[풋볼리스트=니즈니노브고로드(러시아)] 김정용 기자= 한국의 ‘2018 러시아월드컵’ 베이스캠프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첫 경기 장소가 니즈니노브고로드라는 건 꽤 절묘한 면이 있었다. 두 도시 모두 큰 강이나 운하를 끼고 있는 ‘물의 도시’다. 대한제국 시절 고종의 명을 받고 러시아로 파견됐던 충정공 민영환이 밟았던 루트이기도 하다. 한국이 이기면 이런 점을 기사에 거론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스웨덴에 지면서 거창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민망해졌다.

한국은 18일(한국시간) 니즈니노브로도스 스타디움에서 스웨덴에 0-1로 졌다. 경기 전날 스웨덴 팬이 한국 팬보다 1천 배 정도 많아 보였던 것과 달리, 다행히 경기 당일에는 빨간 옷을 입은 한국인이 퍽 많이 보였다.

1년에 두 달 정도 넉넉한 휴가 기간을 갖는 스웨덴인들은 여유로운 일정으로 러시아를 찾아 술도 마시고, 휴가다운 휴가를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경기 당일 도착해서 경기가 끝나자마자 떠나는 일정으로 이 도시에 왔다. 애초에 월드컵을 즐기러 온 한국인이 부족한 것 역시 일과 학업에 치여 살아야 하는 한국 문화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경기를 3시간 앞두고 인근 식당에 모여들어 끼니를 때우고 있었다. 일단 한국인이 많이 모이자 서로 아는 사이인 경우도 많았다. 기자도 슛포러브의 ‘씨잼철’ 김동준 씨를 비롯해 아는 얼굴을 여럿 만나 인사를 나눴다.

여전히 한국 응원단의 숫자는 스웨덴에 비해 절대 열세였지만 응원 소리는 크게 밀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나라가 산발적인 응원을 하며 경기를 즐기는 것과 달리, 한국 관중은 조직적인 구호를 외치며 선수들에게 직접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특징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대등한 응원전을 할 수 있는 힘이다. 붉은악마는 경기 중 “함께 해요”라는 구호를 외치곤 했다. 그러면 경기장 곳곳에 흩어져 있는 한국 관중들이 실제로 호응해 더 큰 응원을 만들어냈다.

경기와 취재가 끝난 뒤 서둘러 니즈니를 떠났다. 기자처럼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 역시 스웨덴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아 보였다. 공항도 아는 얼굴로 가득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들, 각 방송사의 중계진, 동료 기자 등 한국 축구인들의 거대한 정모가 니즈니 공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2002년에 대표팀 동료였던 해설위원과 협회 관계자들이 만나 인사를 나누는 모습,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다가가는 축구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국인들이 서둘러 떠나가는 도시를 크로아티아인과 아르헨티나인들이 대신 채웠다. 니즈니에서 열릴 다음 경기의 주인공들이다.

니즈니를 떠나는 비행기에 한 대표 선수의 가족이 탔다. 어쩌다보니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어른 한 명이었다. 기자도 네 살 난 딸이 있기 때문에, 그 나이의 어린이를 혼자 데리고 돌아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밤 열두시에 비행기 환승을 해야 하는 아이는 잠에 취한 채 아무데로나 무턱대고 달려갔다. 보호자 입장에서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정신 상태다. 힘드시겠어요, 라고 했더니 “선수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실어줘야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짧은 대화 끝에 당부 한 마디를 보탰다. “선수들에게 관대한 기사를 써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정말 노력하고 있거든요.”

한국이 패배한 기억을 남겼지만, 니즈니는 재방문 의사가 충분한 도시였다. 니즈니, 노브, 고로드는 차례로 저지대의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다. 드넓은 볼가 강과 오카 강이 도시 한가운데서 만난다. 두 강이 합쳐지는 아름다운 위치에 경기장이 들어서 있다. 한국으로 치면 도시 한가운데에 두물머리가 있는 셈이다. 강변을 거닐며 아름다운 하늘빛을 실컷 즐길 수 있는 위치다. 소련 시절에는 대문호의 이름을 따 고리키라는 이름으로 불린 도시였지만 나는 막심 고리키 박물관을 들르지 못했다. 밤에 술을 진탕 마시고 춤을 추기도 좋은 도시였지만 기자는 제대로 흥을 내지 못했다.

니즈니는 지방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활기 넘치는 번화가를 가진 곳이었다. 충분한 편의시설과 깔끔한 길거리는 러시아가 음험할 거라는 편견을 날렸다. 동시에 고샤 루브친스키 같은 의류 브랜드들이 영감을 받는 ‘러시아 특유의 빈티지한 분위기’도 살아 있었다. 언젠가 여행자로서 이 도시를 다시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을 품은 채 대표팀을 따라 또다른 물의 도시로 돌아갔다. 대표팀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바닷가에 위치한 호텔에서 멕시코와의 경기를 준비하게 된다.

사진=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cohenwise@firstdivi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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