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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용의 러시아 기행] 케이로스를 숭배하는 도시에서
김정용 기자 | 승인 2018.06.16 08:43

[풋볼리스트=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김정용 기자= 한국인들은 이란의 홈 경기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다. 한국이 이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건 유명한 사실이다. 16일(한국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도 비슷했다. 마치 이란의 홈 구장 같았다. 이 정도 분위기에서 이란이 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 같았다.

이란은 16일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B조 첫 경기에서 모로코를 1-0으로 꺾었다. 이란은 모로코의 공격을 어떻게든 막아내다가 후반 추가시간 아지즈 부하두즈의 자채골로 거짓말 같은 승리를 거뒀다. 이란은 꼭 홈 구장처럼 오랫동안 승리를 축하했다. 이란 선수들과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경기 종료 후 10분 넘게 그라운드에 머물렀다. 선수들은 심지어 케이로스 감독을 들어 헹가래를 쳤다. 그때까지도 이란 팬들은 거의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인원은 어림잡아도 2만 명 정도는 되어 보였다.

하루 전 15일 팬페스트에 이란 유니폼이 득실거릴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이 정도로 많은 인원이 경기장에 올 줄은 몰랐다. 64,468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 이날 62,548명 입장했다. 그중 3분의 1 정도는 이란 사람이었다는 뜻이 된다. 월드컵에 참가하는 원정 국가의 관중이라기엔 대단한 숫자다. 이란 측 관중들은 본부석 쪽 1층, 맞은편 2층, 본부석 오른쪽 스탠드를 주로 점령하고 있었다. 모로코 팬들은 본부석 왼쪽 스탠드에 주로 모였다.

이란과 모로코의 경기는 월드컵에서 비인기 경기에 속한다. 월드컵을 위해 가변석까지 설치해 수용 인원을 약 8천 명 늘린 건 이란 팬들을 위한 조치나 다름없었다. 아자디 스타디움이 그렇듯, 경기장은 소음이 엄청났다. 이란 팬들은 일사불란한 응원 구호를 외칠 줄 모른다. 여기저기서 부부젤라를 비롯한 나팔을 시끄럽게 굴며 스타디움의 소음공해를 키웠을 뿐이었다. 경기장은 어수선한만큼 뜨거워졌다.

분위기만 보면 이란은 1승이 아니라 월드컵에서 우승한 나라 같았다. 1998년 이후 처음, 20년 만에 거둔 이란의 월드컵 사상 두 번째 승리다.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 성적은 1무 2패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란 사람들의 호들갑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이란 기자들은 케이로스 감독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자 무려 기립박수를 쳤다. 일어난 기자는 일부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민망하지도 않은지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의 거장을 맞이했다. 한 기자는 질문하겠다고 마이크를 받더니 의문형이 아니라 평서형으로 케이로스 감독에 대한 감사와 숭배의 말을 줄줄 늘어놓았다. 보다못한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가 제지하려 하자 케이로스 감독이 싱긋 웃었다.

경기력은 모로코가 앞섰다고 볼 수 있지만 이란은 잘 방어했고, 행운은 이란 편이었다. 이란은 아시아에서 하던 그대로 얄밉고,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승리를 거뒀다. 많은 숫자의 관중 역시 이란이 승리할 자격을 의미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경기장을 나서면 곧바로 공원과 놀이공원이 이어진다. 이란 팬들은 공원 곳곳에 자리를 잡고 경기에 대한 감격을 나누거나, 혹은 고래고래 응원가를 불러댔다. 인류 최악의 발명품 부부젤라의 소음은 경기장 저 멀리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공기를 진동시켰다. 시내에서는 경적을 울리며 이란을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의 이란의 안방 분위기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개막전에서 창피한 패배를 당한 직후, 이란은 아시아 국가의 첫 승을 거두며 대륙 전체가 평가절하당할 위기에서 벗어났다. 약간 얄미운 경기방식이긴 했지만 이날은 괜찮았다. 이란은 관중과 축구열기 측면에서도 본선에 진출할 자격이 있는 팀이었다.

이란은 승리에 대한 엄청난 갈망으로 뭉친 팀이다. 기술적인 경기 스타일을 도입할 필요 없이, 매 경기 가장 승률이 높은 수비적인 전술을 택한다. 케이로스 감독은 기자회견 중 왜 승리가 중요한지 한 마디로 정리했다.

“승리는 축구에서 가장 좋은 약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김정용 기자  cohenwise@firstdivi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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