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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페스트 라이브] ‘이란 월드컵인가요?’ 러시아 압도한 전세계 팬들
김정용 기자 | 승인 2018.06.15 15:51

[풋볼리스트=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김정용 기자= 러시아 사람들은 다섯 번이나 환호했다. 그러나 이란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환호하는 소리가 더 컸고, 더 오래 갔다.

15일(한국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팬페스트, 즉 거리응원 장소를 방문했다. 이날은 ‘2018 러시아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는 날이다. 개막전 장소는 수도 모스크바였지만 두 번째로 큰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시 대대적인 거리 행사로 개막을 자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팬페스트 장소로 가는 길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보통 거리 행사는 각 도시의 대표적인 광장에서 벌어진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인 피의 사원 바로 앞 광장이 팬페스트에 쓰였다. 피의 사원이 보이는 골목으로 꺾자마자 보인 건 러시아가 아니라 모로코와 이란의 응원 대결이었다. 두 나라는 이튿날인 16일 상트페테르부르크 스타디움에서 대회 첫 경기를 갖게 된다.

모로코 청년들이 먼저 난간 위로 올라가 응원을 시작했다. 모로코 국기를 흔들며 응원가를 불러댔다. 곧 어디 숨어있었는지 모를 이란 청년들이 순식간에 모로코보다 두 배 정도 되는 숫자를 형성하더니 더 큰 함성으로 모로코의 기를 죽였다. 이란은 아이슬란드의 응원법으로 유명한 박수와 기합 소리로 모로코 응원을 제압했다. 정면에서 두 서포터가 부딪쳤지만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고, 양쪽 서포터들은 기분 좋게 응원전을 하다가 다시 갈라졌다.

팬페스트는 온갖 나라의 국기와 유니폼으로 뒤섞여 축구팬의 용광로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중엔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칠레 유니폼까지 있었다. 칠레 유니폼을 입고 팬페스트를 즐기러 온 세 명을 보자 다른 나라의 팬들이 격려와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한국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도 보였다.

그중에서도 이란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유독 많고, 눈에 띈다는 건 분명했다. 미국에 거주한다는 이란인 세마크 씨는 한국에서 온 기자를 만나자마자 “우리 라이벌 한국이잖아”라며 반가워했다. 세마크 씨는 “나처럼 타국에서 온 사람도 있지만 이란인 대부분은 이란에서 온 거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이란에서 멀지 않다. 지난 대회가 열린 브라질은 너무 멀었다. 이번엔 충분히 올 만한 거리다. 물론 우린 축구에 미친 나라고. 그래서 많은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밖에 북유럽 국가로 이민을 간 이란계 유럽인들도 가까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많이 찾아온 것으로 보인다. 

이란과 모로코에 비하면 러시아 팬들은 열기라고 할 만한 걸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인원은 러시아 사람들이 가장 많았지만 유니폼도, 붉은색 티셔츠도 챙겨 입지 않고 동네 마실 나오듯이 구경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경기 내내 응원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아빠 어깨 위에 올라탄 어린이 한 명뿐이었다.

심지어 경기 전 승자 예측 이벤트를 위해 무대에 등장한 강아지는 러시아와 사우디의 깃발 중 사우디 쪽에 있는 사료를 골라 냠냠 먹었다. 사우디 깃발을 들고 있던 소녀가 ‘저리 가! 쉿쉿!’이라는 듯 강아지를 쫓아보려 했지만 실패였다.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탄식이 나왔고, 디제이는 재빨리 ‘메이크 섬 노이즈’라며 음악을 크게 틀었다.

무덤덤한 러시아인들을 깨운 건 골이었다. 러시아는 개막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다섯 골을 퍼부었다. 러시아가 다섯 골 이상 넣은 건 거의 3년만의 일이다. 최근 7차례 평가전에서 3무 4패를 당하며 러시아는 어렵게 본선을 준비해 왔다. 첫 골만해도 세리머니가 어색한 듯 어버버거리던 러시아인들은 후반 막판으로 갈수록 점점 더 축제를 벌이기 시작했다. 후반 추가시간에 두 골이 연달아 터지자 뒤늦게 흥이 폭발했다.

러시아인들은 마지막 골에 환호하는 와중에 경기가 끝나자 대충 아무렇게나 춤을 추면서 본격적으로 춤판을 벌였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가장 요란했던 브라질 사람들, 어디서나 큰 모자로 눈에 띄는 멕시코 사람들, 하나같이 덩치가 큰 호주 사람들, 흥이 넘치는 콜롬비아 사람들까지 모두 뒤섞여 막춤 대결을 했다. 무대에는 록 밴드가 나와 축하 공연을 했다.

팬페스트는 한국의 거리 응원과 전혀 달랐다. 참가자들이 하나 되어 응원하는 모습은 없었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 흩어져 월드컵 기분을 내다가, 때로는 뒤섞여 춤을 췄다. 경기 전에는 EDM 페스티벌, 경기 후에는 록 페스티벌에 가까웠다. 경기가 열리는 동안 러시아 팬과 호주 팬들은 처음 만나 반갑다며 인사를 나누고 맥주를 들이켰다. 

러시아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또 광장을 점거한 건 이란과 모로코 팬들이었다. 그들은 한 번 더 응원전을 벌였다. 갑자기 나라 이름 크게 외치기 시합이 벌어졌다. 이번에도 이긴 건 숫자에서 압도한 이란이었다. 이란 팬들은 팬페스트가 모두 끝난 지 한 시간이 넘게 지나도록 광장 근처 번화가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국기를 흔들어댔다. 러시아 팬 몇 명이 대응해보려 했지만 숫자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를 나눈 택시 기사는 월드컵 조편성과 일정을 다 꿰고 있었다. 그러더니 서툰 영어로 “우루과이 이집트 이겨! 일대 영”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우루과이 승에 돈을 걸었다고 했다. 방금 열린 러시아 경기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러시아 사람이 아닌가보다 싶어 물어보자 “나 아제르바이잔 사람. 러시아 우리 친구 아냐. 러시아 약해. 홈팀이라 강해. 안 좋아”라는 답이 돌아왔다. 끝까지 러시아 승리에 취한 분위기는 보지 못했다.

사진=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cohenwise@firstdivi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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