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전주] 김완주 기자= 멕시코 축구팬 눈에 비친 한국 축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멕시코와 만날 한국의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본 이사벨 에스테파니아는 “한국 선수들은 너무 생각이 많은 것 같다”라는 감상을 밝혔다.

8년 전 낯선 도시에서 살아보겠다며 홀로 멕시코로 떠난 이민구 씨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한 달 전 한국에 들어왔다. 단순히 여행을 목적으로 멕시코행 비행기에 탑승했던 이 씨는 그곳에 눌러앉게 됐고 현지에서 유명한 식당을 운영했다. 멕시코인 이사벨과 결혼을 해 올해 5살이 된 아들도 생겼다.

이사벨은 중, 고등학교에 다니며 축구부 활동을 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이사벨의 아버지는 유럽축구를 좋아하고, 이사벨은 멕시코 축구대표팀의 광팬이다. 이사벨은 멕시코 사람들은 모두가 축구를 사랑한다고 설명했다. 이 씨도 “멕시코에 있는 피자집에서 일했던 적이 있다. 그곳 사장님은 항상 베팅을 하며 축구를 봤다. 멕시코 사람들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맥주 한잔하며 축구 보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조추첨 결과가 나왔을 때 두 사람은 멕시코에 있었다. 이 씨는 “멕시코 사람들은 같은 조 팀 중 한국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독일과 스웨덴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사벨은 “한국은 멕시코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라며 이 씨를 무시했다. 이 씨는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2014년 부부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마침 한국과 멕시코의 평가전이 열렸고, 당시 한국은 0-4로 패했다. 한국이 골을 먹힐 때마다 아파트 단지 내에는 침묵이 흘렀고, 오직 이사벨만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고 이 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이 씨는 축구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1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한국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경기를 관전하기로 했다. 이 씨에게는 4년 전 이사벨과 함께 본 멕시코전이 가장 최근에 본 한국의 A매치였다. 멕시코에서는 기사로만 한국 축구 소식을 확인할 뿐 영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사벨은 한국에서 축구장에 가본 적이 없었다. 전주에 축구장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킥오프 1시간 전 경기장에 도착한 이사벨은 붉은 옷을 입고 모인 많은 사람들을 보고 놀라는 모습이었다. 한국이 왜 보스니아와 경기를 하는지 기자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보스니아는 가상 스웨덴 상대이고, 지난 주에는 멕시코전을 대비해 온두라스와 경기했다”라고 알려주자 “온두라스는 멕시코와 같은 레벨이 절대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두 사람에게 예상 스코어를 물었다. 이 씨는 “2-1, 당연히 한국이 이긴다”라고 예상했고, 이사벨은 “3-0 또는 3-1로 한국이 이길 것 같다”하고 답했다. 경기에 앞서 애국가가 흘러나왔다. 이사벨은 관중석에 태극기가 펼쳐지는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애국가 연주가 끝나고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릴 때는 재미있는 경기를 기대하며 박수를 쳤다.

경기 시작 후 관중석 곳곳을 훑어보던 이사벨은 “테니스장에 온 것 같다. 사람들이 너무 얌전하다”라고 말했다. 이 씨는 “멕시코 축구장은 경기가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사람들이 계속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고, 곳곳에서 욕도 쉴새 없이 들린다. 그곳과 비교하면 여기는 엄청 조용한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멕시코 경기장에는 벨트도 못 차고 들어간다. 그걸로 사람을 때릴 수도 있어서 반입이 금지돼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사벨은 남편의 조국이자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을 응원하며 관전했다. 곳곳에서 “대한민국” 구호와 함께 박수소리가 들리자 이사벨도 동참했다. 한국 선수들이 공을 잡으면 박수를 치며 스페인어로 응원했고, 보스니아 선수가 파울을 범하면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질렀다. 전반 초반 구자철의 슈팅이 빗나가자 “어떻게 저걸 못 넣었을 수 있지”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씨는 “멕시코에서는 슈팅이 빗나가면 ‘발이 삐뚤어졌다’라는 표현을 써 가며 선수를 놀린다. 멕시코의 응원 문화다”라고 설명했다.

경기의 주도권은 보스니아가 잡았다. 보스니아는 미랄렘 퍄니치와 에딘 비슈카를 중심으로 한국을 압박했다. 한국 선수들은 잦은 패스 미스를 범했고,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사벨은 한국 선수들이 경기가 답답했는지 “한국 선수들은 왜 안 뛰어? 다칠까봐 일부러 열심히 안 뛰는거야?”라고 묻기도 했다.

한국이 측면에서 공격기회를 잡을 때면 “가운데로, 가운데로”라고 외쳤다. 한국의 패스는 이사벨의 외침보다 2~3박자씩 늦었다. 전반 27분 한국이 선제골을 내준 다음 이재성의 골로 동점을 만들었을 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전반 추가시간에 다시 골을 내주자 이사벨은 “보스니아 선수들은 기회가 오면 망설이지 않는데, 한국 선수들은 계속 머뭇거리면서 기회를 놓치고 있다”라며 축구팬 시각의 분석을 내놓았다.

후반이 시작한 후에도 이사벨은 빨리 빨리 패스하고 많이 뛰라고 소리쳤다. 신태용 감독이 첫 교체 카드를 사용했을 때에는 “좋은 선택이다. 선수들이 너무 안 뛰고 있었다. 많이 뛸 수 있는 선수를 넣어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후반 중반 이후 이승우와 문선민이 투입되며 공격이 활발해지기 시작할 때에는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한국을 응원했다. 앞 줄에 앉은 어린이는 외국인이 “꼬레아 골, 골”하며 소리치는 게 신기한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한국인 남편보다 더 열정적으로 한국을 응원했다.

한국의 대승을 예상했던 이사벨은 경기가 1-3으로 끝나자 많이 아쉬워했다. “경기 끝날 때가 되니까 공격적으로 하기 시작했다”라며 ”전반에도 더 공격적으로 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는 멕시코한테 완전 박살 난다”라며 멕시코의 절대 우세를 점쳤다. 이 씨는 옆에서 “한국이 이겨야 4년 동안 구박을 안받는다. 4년 전 복수를 꼭 해야 한다”라며 한국을 응원했다.

이사벨은 경기가 끝난 뒤 한국과 멕시코의 조별예선 경기가 정확히 언제 열리는 지 물어본 후 경기를 지켜본 소감에 대해 이어 말했다.

“나는 축구가 인생과 같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살면서 찾아온 기회를 놓쳐버리면 다음은 없다. 축구도 똑같다.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그걸 살리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한국 선수들은 너무 생각이 많은 것 같다. 더 빨리 패스를 줄 수 있고, 좋은 자리에 동료가 있는데도 공을 끌면서 머뭇거리면서 기회를 다 놓친다. 멕시코 선수들은 넘어져도 바로 털고 일어나서 다시 공을 향해 달려가고, 공을 잡으면 최대한 앞으로 보내려고 한다. 한국이 잘 알고 있는 과우테모크 블랑코처럼 창의적인 선수들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한국에는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사진=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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