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세리에A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 축구의 리그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 주>

한국이 6월 1일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치를 ‘2018 러시아월드컵’ 출정식 상대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이하 보스니아)의 소집 명단이 발표됐다. 가장 주목 받는 선수들은 유벤투스 소속 미드필더 미랄렘 퍄니치, AS로마 공격수 에딘 제코다.

현재 보스니아 대표 선수들은 세리에A 중에서도 AS로마와 인연이 깊다. 한때는 로마 한 팀에 보스니아 선수 세 명이 모이기도 했다. 2015/2016시즌 후반기에 수비수 에르빈 주카노비치(현 제노아)까지 합류했다. 주카노비치, 퍄니치, 제코가 각각 수비, 미드필드, 공격의 주전 선수로서 활약했다. 로마 선발 라인업에 이탈리아 선수보다 보스니아 선수가 더 많았던 특이한 시기다. 지금은 세 선수가 이탈리아의 3개 구단에 흩어져 활약 중이다.

보스니아의 간판 스타 퍄니치와 제코가 세리에A에서 보여준 모습을 통해 어떤 선수인지 특징을 정리했다. 한국 선수들에게는 세계적인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상대해 볼 좋은 기회다.

 

미랄렘 퍄니치 : 힘과 볼 키핑은 약하지만 지능과 킥이 ‘월드클래스’

퍄니치는 내전을 피해 어린 나이에 보스니아를 떠났다. 룩셈부르크를 거쳐 프랑스에서 본격적으로 축구 선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때 올랭피크리옹의 핵심 유망주였고, 로마에서 다섯 시즌을 보내며 세계적인 미드필더로 발돋움했다. 2016년 여름부터 두 시즌 동안 유벤투스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퍄니치는 동유럽 선수가 힘이 좋다는 인식과 달리 체구가 작고 몸싸움이 약한 미드필더다. 178cm 신장이 아주 작은 건 아니지만, 상대 미드필더가 거친 몸싸움을 걸고 들어오면 잘 버티지 못한다. 공을 안정적으로 지킬 만큼 절묘한 발재간을 가진 것도 아니라서 공 소유 시간이 길어지면 불안한 장면이 생긴다는 약점이 있다.

퍄니치는 신체적, 기술적 약점을 지능과 기본기로 덮는 선수다. 공격할 때나 수비할 때나 끝없이 움직이며 최선의 위치를 찾아다닌다. 유벤투스가 공을 가졌을 때는 상대 미드필더에게 견제당하지 않으면서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지점을 확보하기 위해 계속 움직인다. 수비할 땐 왕성한 활동량으로 꾸준히 상대를 견제한다. 팀 플레이가 잘 이뤄진다면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압박을 수월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선수다.

퍄니치의 가장 큰 장점은 킥이다. 오른발 프리킥은 현재 전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력하다. 골문과 먼 곳에서 활동할 때도 과감한 롱 패스와 얼리 크로스를 통해 어시스트를 할 수 있는 재주가 있다. 세리에A에서 7시즌 동안 최소 5도움, 많으면 12도움을 기록하며 정상급 찬스 메이커로 인정받았다. 특히 2015/2016시즌에는 로마 소속으로 10골 12도움을 기록할 정도로 오른발이 강력했다.

퍄니치는 ‘가상 토니 크로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만날 선수 중에는 독일의 주전 플레이메이커 크로스와 스타일이 비슷하다. 퍄니치처럼 공을 처리하는 속도가 빠른 선수를 압박해 보는 건 한국 선수들에게 좋은 예행연습이 될 수 있다. 퍄니치의 킥과 보스니아 선수들의 높은 키가 결합된 세트피스 공격을 막아보는 것도 한국으로선 좋은 경험이다.

 

에딘 제코 : 현존 최강 장신 공격수

보스니아 내전 당시 수도 사라예보에 살고 있던 제코는 사라예보 포위, 학살 사태를 가까이에서 겪으며 불안한 유년기를 보냈다. 제코는 고난을 극복하고 일류 선수로 성장해 독일분데스리가 득점왕(2009/2010), 세리에A 득점왕(2016/2017)을 모두 수상하는 특급 공격수로 성장했다. AS로마에서 세 시즌 동안 활약하며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제코의 플레이를 얼핏 보면 엉성하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193cm 신장에 다리가 길기 때문에 발놀림이 그리 빠르지 않다. 공을 쉽게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이 들 때도 있다. 슛을 하기 전 스윙이 길어서 더 느려보일 때도 있다.

제코는 단점을 감추고 장점만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아는 선수다. 제코는 그리 힘이 좋아 보이지 않는 체격이지만 수비수를 등지면 거의 밀리지 않고 자기 자세를 유지한다. 꼿꼿하게 선 자세로 동료의 롱 패스를 안정적으로 받아낼 수 있다. 그래서 제코의 소속팀은 미드필드에서 밀리더라도 수비수의 롱 패스 한 번이면 바로 최전방까지 공을 운반할 확률이 높다. 제코는 공을 받은 뒤 첫 번째 동작도 절묘하다. 농구의 피벗 동작처럼 기습적으로 몸을 돌리며 수비수를 끼고 돌파하거나, 바로 슛 기회를 만들 줄 안다. 2017/2018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8강에서 바르셀로나 수비진을 농락할 때 잘 보여준 플레이다.

제코의 슛 방식은 신체조건이 비슷한 김신욱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만하다. 제코는 긴 다리 때문에 슛을 하는데 오래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일단 슈팅 타이밍이 열리면 슛을 시작하는 속도가 빠르다. 슈팅이 충분히 강력하지만, 상대 수비가 밀집돼있을 때는 강슛보다 타임이 빠른 슛에 주력한다. 그래서 제코의 슛은 데굴데굴 약하게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공의 속도 대신 타이밍과 정확도를 높였기 때문에, 상대 골키퍼가 반응하기 전에 골문 구석으로 느릿느릿 굴러가는 슛을 자주 구사한다.

제코는 한국이 본선에서 만날 스웨덴, 독일의 어느 장신 공격수보다 더 포스트플레이와 제공권이 좋은 선수다. 한국 수비수 중 제코와 정면승부를 벌일 수 있을 정도로 헤딩 능력이 좋은 선수는 없다. 제코를 상대하며 유럽파 장신 공격수에 대한 내성을 길러볼 수 있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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