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세리에A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 축구의 리그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 주>

아탈란타의 주전 미드필더 브라이안 크리스탄테가 토트넘홋스퍼, 유벤투스, 인테르밀란, AS로마 등 강팀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아탈란타는 또 미드필더 재목을 키워냈다.

잉글랜드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토트넘이 크리스탄테 영입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적료는 최소 2,500만 유로(약 328억 원)로 전망된다. 보도에 따르면 크리스탄테가 더 큰 팀으로 이적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팀이 되든 아탈란타를 떠날 가능성이 높다.

크리스탄테의 성장세는 기록과 수치로 확인된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대표로 데뷔해 A매치 2경기를 치렀다. 세리에A 8골은 미드필더 중 세르게이 밀린코비치사비치(라치오, 9골)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팀내 모든 선수 중 조십 일리치치(10골 7도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득점이다.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까지 더하면 시즌 11골을 넣으며 미드필더 중에서는 최상급의 득점력을 발휘하고 있다.

 

밀란의 실패한 유망주, 포르투갈 거쳐 깜짝 부활

일곱 시즌에 걸친 프로 경력을 돌아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급격한 성장이다. 크리스탄테는 AC밀란 소속의 유망주로서 이탈리아 청소년 대표팀을 단계적으로 거쳤다. 그러나 밀란에서는 높은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한 번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2014년 포르투갈의 벤피카로 이적했고, 여기서도 주전 경쟁에 실패했다. 이때부터 크리스탄테에 대한 관심은 급격하게 떨어졌다. 2015/2016시즌 후반기 팔레르모로 임대됐지만 역시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2016년 여름, 여전히 21세에 불과했던 크리스탄테는 임대를 통해 선수 경력의 반전을 일구기 시작했다. 페스카라 임대를 통해 처음 세리에A 주전으로 뛰었다. 대단한 성적은 아니었지만 2017년 1월에는 아탈란타로 임대 팀을 옮길 수 있었다. 아탈란타는 로베르토 갈리아르디니를 인테르로 이적시킨 뒤 대체 자원이 필요한 팀이었다.

지난 시즌 후반기 3골, 이번 시즌 전반기에 유로파리그 포함 9골을 터뜨리자 아탈란타는 재빨리 크리스탄테의 소유권을 사들였다. 벤피카에서 임대해올 때 조건으로 걸어뒀던 400만 유로(약 52억 원)를 지불하고 공식 계약을 맺었다. 그 직후에 빅 클럽으로부터 영입 제안이 쏟아졌다. 아탈란타는 수백억 원의 차익을 남길 수 있게 됐다.

 

선수가 잘 하는 것만 시키는 가스페리니의 전술

아탈란타의 크리스탄테 활용법은 독특하다. 크리스탄테는 186cm의 큰 키와 탄탄한 체격을 가진 공격형 미드필더다. 흔히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요구되는 볼 키핑, 기술, 창의성도 나쁘진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큰 무대에서 경쟁하기 힘들었다. 특히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큰 짐을 지우는 이탈리아 축구에서 경쟁하기 힘든 이유기도 했다.

아탈란타는 크리스탄테가 잘 할 수 있는 플레이에 집중하도록 해 줬다. 크리스탄테는 주전 미드필더지만 경기당 평균 패스 횟수가 팀내 9위인 42.7회(이하 세리에A 기록)에 불과하다. 패스 성공률은 78.8%로 주전 미드필더 중 오히려 낮은 편이다. 크로스, 스루 패스 등 직접 득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패스 기록이 아예 없다. 어시스트도 아직 기록하지 못했다.

대신 슛을 경기당 1.9회 날려 8골을 뽑아낼 정도로 뛰어난 결정력을 지녔다. 공중볼 획득은 경기당 2.7회로 팀 내 모든 선수 중 1위고, 세리에A 전체에서 14위다. 센터백과 공격수에 비해 공중볼 경합을 할 일이 적은 미드필더들의 특성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순위다. 미드필더 중에서는 공중볼 획득 1위다. 그래서 발로 넣는 골 못지않게 헤딩골 비중이 높다. 상대 수비의 배후로 침투하는 것이 아니라, 수비 틈으로 파고들어 패스가 들어오는 지점을 찾아내는 감각이 좋다. 그래서 오프사이드를 거의 범하지 않으면서 득점 기회를 잡는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뛸 경우 수비에도 열심히 가담한다. 크리스탄테가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며 상대를 열심히 따라다니면, 동료 선수가 비교적 편하게 수비를 할 수 있다. 그래서 크리스탄테의 수비 능력은 수치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파울 횟수에서 팀 내 2위인 1.7회를 기록한 점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설 경우에도 직접 상대 선수를 괴롭히는 역할을 많이 하고, 공간 커버와 가로채기는 동료 미드필더인 레모 프리울러에게 맡긴다.

가스페리니 감독은 크리스탄테뿐 아니라 모든 선수에게 딱 맞는 역할을 부여해 잠재력을 끌어내는데 능하다. 득점력을 갖춘 센터백 마티아 칼다라가 자유롭게 공격에 가담할 수 있도록 역할을 조정해 지난 시즌 7골을 넣게 해 준 것도 가스페리니 감독의 전술이었다. 2003년 프로 감독으로 데뷔한 가스페리니는 그리 순탄한 경력을 쌓아오지 못했다. 2008/2009시즌 제노아를 세리에A 5위로 올려놓으며 돌풍을 일으켰지만, 2011년 인테르 감독을 맡았다가 조기 경질된 아픔도 있다. 아탈란타에서 가스페리니 감독은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누리는 중이다.

아탈란타 떠나자마자 고전 중인 선수들, 크리스탄테는?

루카 페르카시 아탈란타 단장은 “크리스탄테는 우리 팀에 합류한 뒤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그는 현대적인 미드필더다. 기술, 힘, 득점 감각을 지녔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 활약상만 보면 크리스탄테는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잔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이 절묘한 역할을 부여해 크리스탄테의 능력을 더욱 살려냈다. 아탈란타는 지난 시즌부터 뛰어난 미드필더를 여럿 길러냈다. 갈리아르디니가 돌풍의 주역이 된지 반 시즌 만에 인테르로 떠났다. 지난해 여름에는 프랑크 케시에가 AC밀란으로 이적했다. 아탈란타는 거액을 벌어들이자마자 크리스탄테를 다음 주축 선수로 키워냈다.

갈리아르디니, 케시에 모두 새 팀에서 아탈란타 시절만큼 활약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스페리니 감독이 이들을 잘 활용했다는 방증이다. 아탈란타는 스타로 성장한 미드필더들을 판 뒤에도 크리스탄테뿐 아니라 프리울러, 마르턴 더룬 등 새로운 미드필더들을 잘 활용해 전력 공백을 최소화했다.

크리스탄테도 다른 팀으로 이적한 뒤 아탈란타에서의 경기력을 재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장점만큼 한계도 큰 선수기 때문이다. 특히 토트넘처럼 미드필더들에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팀이라면 크리스탄테와 잘 맞을지 미지수다. 인테르에서 갈리아르디니이 느린 스피드가, 밀란에서 케시에의 경기 운영 능력 부족이 들통 났던 것처럼 크리스탄테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선수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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