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강원FC는 측면도 중앙도 아닌 그 사이 공간에서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어 나갔다. 최근 세계축구의 화두 중 하나인 하프 스페이스(half-space)가 강원 공격의 요충지였다.

강원은 1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2라운드에서 FC서울에 2-1 승리를 거뒀다. 강원은 전반전에 조직적인 공격으로 서울을 흔들었다. 서울의 크로스 공격에 실점을 내준 뒤 공격 숫자를 늘리고 속공 위주 운영으로 전환해 두 골을 터뜨렸다. 골은 후반전에 터졌지만, 경기력은 전반전부터 강원이 더 우세했다.

하프 스페이스는 경기장을 길게 5등분했을 때 측면도 중앙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공간을 말한다. ‘왼쪽, 좌중간, 중앙, 우중간, 오른쪽’으로 경기장을 나눌 경우 좌중간과 우중간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할 때 생기는 첫 번째 이점은 시야다. 오른발잡이가 좌중간에서 공을 잡았을 경우, 상대 골문을 비스듬히 바라보며 편하게 공격을 전개할 수 있다. 측면 돌파, 중앙으로 패스, 백패스 등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기 때문에 상대를 공략하기 편하다.

두 번째 이점은 상대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윙어가 상대 풀백을 끌어낸 뒤 하프 스페이스로 침투하는 두 번째 선수에게 패스했다면, 이때 상대 포백의 센터백과 풀백 사이가 벌어져 있게 된다. 센터백으로서는 막으러 가기도 뭣하고, 방치하기에도 뭣한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 쉽다. 이때 공을 가진 선수가 수비수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다면 바로 득점 기회가 생긴다. 상대 수비수가 가장 골치아파지는 공간이 하프 스페이스다.

전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팀인 맨체스터시티의 경기에서도 하프 스페이스 활용은 매 경기마다 잘 보인다. 윙어가 측면으로 상대 풀백을 끌어내면 수비진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다비드 실바나 케빈 더브라위너가 이 공간으로 침투해 본격적으로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곤 한다. 모범적인 하프 스페이스 활용법이다.

이 용어는 세계적으로 축구 전술의 화두가 된지 오래기 때문에 국내 지도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프로뿐 아니라 학원 축구 지도자들 역시 지도자 강습회 등을 통해 하프 스페이스를 잘 활용하면 공격의 위력이 높아진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이 공간을 의식하지 않고 공격하는 팀들도 결정적인 상황은 하프 스페이스에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전북현대의 이재성이 본능적으로 이 공간을 잘 활용하는 대표적인 선수다.

그러나 K리그에서 하프 스페이스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팀은 드물다. 일단 측면 공격을 통해 상대를 끌어낸 뒤 하프 스페이스로 침투하는 두 번째 선수에게 대각선 스루 패스를 보내는 것이 정석인데, 침투하는 선수도 패스하는 선수도 타이밍에 맞춰 플레이하기 쉽지 않다. K리그에서 윙어들은 직접 드리블로 돌파하거나, 돌파가 막혔을 경우 풀백에게 공을 돌리며 공격 속도를 늦추는 경우가 많다.

한 국내 지도자는 하프 스페이스를 활용하기 힘든 이유에 대해 “상대 수비진 사이에 공간이 생기면 재빨리 패스를 넣어야 하는데, 스루 패스와 같은 모험적인 플레이는 어려서부터 꺼리는 것이 국내 축구의 현실 아니냐. 일단 들어가 공을 받은 다음에도 문제가 생긴다. 상대 수비수보다 판단이 빨라야 하프 스페이스의 활용도가 높아지는데, 국내 선수들이 가장 힘겨워하는 부분이 상황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강원은 의도적으로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전술을 보여줬다. 송경섭 감독은 이날 미드필더 정석화를 선발 기용하며 “공간을 찾아가는 능력이 뛰어나다”라고 설명했다. 전반 30분 득점 기회가 대표적이다. 왼쪽 윙어 김경중이 서울 라이트백 신광훈을 측면으로 끌고 나갔다. 이때 정석화가 하프 스페이스로 침투했다. 레프트백 정승용은 김경중이 아니라 정석화에게 패스를 보냈다. 정석화는 서울 페널티 지역 안에서 자유롭게 공을 잡을 수 있었고, 김성준이 부랴부랴 막으러 왔지만 간단한 페인팅 동작으로 돌파한 뒤 오른발로 감아찬 슛을 날렸다. 앙한빈의 선방에 막혔지만 좋은 공격이었다.

그 외에도 강원이 전반전에 보여준 위협적인 공격은 대부분 하프 스페이스에서 벌어졌다. 전반 3분 제리치가 하프 스페이스로 나와서 공을 받은 뒤 중앙으로 빠져들어가며 중거리 슛을 날렸다. 전반 26분 하프 스페이스에서 공을 잡은 미드필더 맥고완은 서울의 압박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여유 있게 얼리 크로스를 날릴 수 있었고, 제리치가 위협적인 헤딩슛을 시도했다.

강원의 골은 후반전에 속공을 강화한 뒤 터졌지만, 전반전에도 강원은 아슬아슬하게 득점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 서울보다 앞선 경기를 했다. 하프 스페이스를 활용하는 빈도는 강원이 훨씬 높았다.

한 K리그 관계자는 “강원은 이날 하프 스페이스 공략을 의도적으로 시도했다. 외국에서는 워낙 유명하고 중요하게 다뤄지는 개념이기 때문에 다들 알고 있지만 K리그에서는 그 활용도가 낮은 편이었다. 의도적으로 집중 공략하면 막기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사진= MBC 스포츠플러스 방송 중계 캡쳐,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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