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한때 국내 축구 팬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축구 감독 중 한 명이었다. 그의 팀이 망가진 모습, 그가 조롱의 대상이 된 모습을 보는 건 슬픈 일이다. 이스널을 떠날 거라는 이야기가 진지하게 나오고, 이번엔 진짜일지도 모른다. 작별의 예감이 드는 지금, 아스널이 아직 멋졌던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보려 한다. 벵거의 행복한 시간, 일명 벵행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르센 벵거가 아스널에 갓 도착했을 때, 그는 잉글랜드 축구계에 남아있던 구식 문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스널은 벵거의 인도에 따라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 가장 세련되고 체계적인 팀이 되어갔다. 지금은 세계 어느 팀이든 일상적으로 하는, 콘과 장애물을 놓고 벌이는 다양한 패턴 훈련을 벵거가 선구적으로 도입했다. 일본 경험을 살려 독자적으로 만든 식이요법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그 전까지 조기축구회처럼 “거 경기 끝나고 맥주나 한잔 하지” 분위기였던 몇몇 선수들에겐 충격적인 변화였다.

당시 벵거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영입 수완을 가진 감독이기도 했다. 벵거는 비교적 저렴한 이적료에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영연방 바깥을 집중 공략했다. 다른 잉글랜드 구단보다 넓은 시장에서 선수를 골랐기 때문에 값싸고 실력이 뛰어난 선수를 찾기 쉬웠다.

 

#거상 시절 아스널의 영입 능력

앞선 시즌 3위를 차지하며 ‘지루하고 지루한 아스널’이라는 팀 컬러를 바꾸기 시작한 벵거는 1997/1998시즌 두 번째 시즌에 첫 업적을 이룩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승점 1점차 레이스를 벌인 끝에 EPL 우승을 차지하며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과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벵거 특유의 영입 능력이 빛을 발한 여름이었다. 벵거가 영입한 선수 8명 중 7명이 바다 건너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 등에서 건너왔다. 마르크 오베르마스, 에마누엘 프티가 곧장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시즌 영입한 니콜라스 아넬카, 파트리크 비에이라와 함께 막강한 공격 라인업이 만들어졌다. 벵거 이전부터 아스널 공격을 책임지고 있던 데니스 베르캄프는 더 기술적인 동료들과 만나 재능이 한층 만개했다. 아스널의 전설 이안 라이트는 마지막 시즌을 준비했다. 토니 아담스를 비롯한 ‘철의 포백’ 멤버들과 잉글랜드 대표 골키퍼 데이비드 시먼이 후방을 지켰다.

우승 주역들이 나중에 얼마나 비싸게 팔려갔는지를 보면 왜 벵거가 세기말 최고 거상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아넬카는 약 50만 파운드에 영입했고, 레알마드리드로 갈 때는 2,230만 파운드짜리 선수가 돼 있었다. 오베르마스는 700만 파운드에 영입해 2,500만 파운드를 받고 바르셀로나에 팔았다. 프티는 250만 파운드에 영입해 오베르마스와 함께 700만 파운드에 팔았다.

 

#EPL, FA컵 ‘더블’ 달성하며 퍼거슨의 라이벌로 발돋움

아스널은 초반 12경기에서 6승 6무로 무패 행진을 달리며 우승 후보의 자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11월과 12월에는 심한 부진에 빠졌지만 그 와중에 라이벌 맨유를 3-2로 잡아낸 건 우승을 위해 꼭 필요한 승리였다. 아스널은 아넬카, 비에이라가 골을 넣었고 맨유는 테디 셰링엄의 두 골로 응수했으나 경기 막판 데이비드 플래트가 결승골을 터뜨렸다.

20라운드부터 부진에서 벗어난 아스널은 진짜 상승세를 시작했다. 17경기 무패 행진으로 우승을 향해 전진했다. 특히 뒤쪽 10경기는 전승을 거뒀다. 후반기에도 맨유전에서 승리하며 라이벌의 승점을 또 깎아내는데 성공했다. 막판 두 경기에서 2패를 당했지만 아스널의 우승에는 문제가 없었다.

FA컵 우승은 순탄치 않았다. 3라운드에서 만난 첫 상대 포트베일, 5라운드 상대 크리스털팰리스, 6라운드에서 만난 웨스트햄과 모두 무승부 후 재경기까지 갔다. 포트베일, 웨스트햄은 승부차기를 거쳐 힘겹게 꺾었다. 준결승에서 울버햄턴원더러스를 잡은 아스널이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 전망은 밝지 않았다. 직전에 열린 EPL 두 경기에서 모두 패배했고, 베르캄프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졌기 때문에 전력 손실도 있었다. 뉴캐슬은 당대 최고 스트라이커 앨런 시어러가 이끄는 팀이었다. 그러나 아스널이 오베르마스와 아넬카의 골로 2-0 승리를 거뒀다.

 

#당시 주전 멤버

데이비드 시먼 - 나이젤 윈터번, 토니 아담스, 마틴 키언, 리 딕슨 - 마르크 오베르마스, 에마누엘 프티, 파트리크 비에이라, 레이 팔러 - 데니스 베르캄프, 이안 라이트

(기타 : 알렉스 마닝거, 스티브 보울드, 데이비드 플래트, 니콜라스 아넬카)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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