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지네딘 지단 레알마드리드 감독은 전략의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수없이 받아 왔다. 그러나 파리생제르맹(PSG)을 꺾은 건 모처럼 나온 지단의 지략 덕분이었다.

15일(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2017/2018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16강 1차전을 치른 레알이 PSG를 3-1로 꺾고 16강 진출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 3월 7일 열리는 원정 2차전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최근 레알의 부진 때문에 UCL에 대한 전망은 어두웠다. 레알의 부진은 전반기부터 이어졌다. 올해 들어 각종 대회에서 5승 3무 2패에 그쳤다. 승리가 절반에 불과했다. 반면 PSG는 올해 10승 1패로 훌륭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UCL 조별리그 당시를 돌아봐도 PSG가 더 강했다.

레알이 위기 속에서 내놓은 전술은 지난 시즌 UCL 우승의 원동력이었던 ‘다이아몬드’ 4-4-2, 혹은 4-3-1-2였다. 중앙이 강한 전술이다. 붙박이 미드필더인 토니 크로스와 루카 모드리치 뒤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카세미루가 받치고, 앞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 이스코가 공 소유 및 압박을 거들었다. 전방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가 배치돼 공격을 맡았다.

측면이 약해지는 걸 감수해가며 중원 강화를 택한 레알은 의도대로 경기를 풀어갔다. 레알이 중앙 집중형인 4-3-1-2를 쓰면서도 지난 시즌 막강한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좌우 풀백인 마르셀루와 다니 카르바할의 거대한 영향력 덕분이었다. 이번 시즌은 두 선수의 경기력 저하로 측면 공격이 약해진 상태였다. 이날은 마르셀루의 컨디션이 좋았지만, 대신 카르바할은 징계로 결장했다. 나초 페르난데스의 오른쪽 공격으로는 한계가 컸다. 레알은 측면을 내주더라도 중원 장악을 택했다.

반면 PSG는 중원을 내주고 측면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4-3-3 포메이션으로 나온 PSG는 미드필더들이 궂은일에 집중하고 좌우 측면의 네이마르, 킬리앙 음밥페에게 공을 몰아줬다. 특히 네이마르에게 빠른 타이밍에 공을 넘기는 데 집중했다. 레알은 PSG의 고속 돌파를 저지하는데 힘들어 했다. PSG의 풀백 유리 베르치체와 다니 아우베스의 영향력은 레알 풀백들 이상이었다. PSG 미드필더들은 레알보다 밀리는 기술 대신 활동량과 전방 압박으로 대등한 싸움을 벌였다.

PSG가 측면 공격을 통해 선제골을 만든 건 당연한 결과였다. 전반 33분 오른쪽 측면에서 음밥페가 마르셀루를 돌파한 뒤 크로스를 올렸다. 에딘손 카바니를 지나치고 네이마르의 절묘한 뒤꿈치 패스를 거친 공이 문전에 떨어졌고, 아드리앙 라비오가 달려들어 가볍게 밀어 넣었다. PSG의 스리톱이 만들어준 득점이었다. 레알은 세트피스 상황에 이은 크로스의 돌파로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전반 45분 호날두가 킥을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들고 전반전을 끝냈다.

후반 들어 두 팀의 교체 카드에서 승패가 갈렸다. 먼저 전략에 변화를 준 건 PSG의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었다. 후반 21분 공격수 카바니를 빼고 풀백 토마 뫼니에를 투입, 수세에 돌입했다. 레알은 후반 23분 벤제마 대신 가레스 베일을 넣어 공격 조합을 바꿨다.

결정적인 교체가 후반 34분 벌어졌다. 레알이 카세미루와 이스코를 빼고 루카스 바스케스, 마르코 아센시오를 투입했다. 아센시오는 왼쪽 미드필더, 바스케스는 오른쪽 미드필더를 맡는 선수들이다. 레알의 포메이션은 이번 시즌 자주 보여준 4-4-2로 바뀌었다.

측면 공격을 강화한 레알의 선택은 PSG와 대조적이었다. PSG는 음밥페를 공격수로 돌리며 측면에 대한 지배력을 일부러 포기한 상태였다. PSG가 수비라인까지 아래로 내렸기 때문에 레알이 주도권을 잡기 더 쉬웠다.

후반 38분 드디어 호날두에게 완벽한 득점 기회를 만들어 준 선수는 교체 투입된 아센시오였다. 아센시오는 속공 상황에서 얼리 크로스가 수비에 막힌 뒤에도 계속 기회를 노렸고, 모드리치가 다시 내준 공을 받아 재차 땅볼 크로스를 날렸다. 알퐁소 아레올라 골키퍼가 겨우 쳐낸 공이 바로 앞에 있던 호날두의 무릎을 맞고 들어갔다.

측면 공격을 강화한 레알은 곧장 측면에서 시작된 골을 하나 추가했다. 전반전 내내 왼쪽에서 외롭게 공격을 전개했던 마르셀루가 아센시오, 크로스와 호흡을 맞추며 쉽게 측면을 뚫어냈다. 후반 41분 아센시오의 땅볼 크로스를 마르셀루가 논스톱 슛으로 마무리한 뒤 포효했다.

PSG는 부랴부랴 미드필더 지오바니 로셀소를 빼고 공격형 미드필더 율리안 드락슬러를 투입, 공격을 강화해 봤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PSG의 소극적인 교체와 레알의 공격적인 교체가 맞물리며 레알의 역전승이 완성됐다.

PSG가 레알에 주도권을 일부러 내주다시피 했다는 점에서 자멸로도 볼 수 있다. 레알이 한정된 라인업으로 시즌을 치르느라 후반전에 페이스가 떨어지는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메리 감독은 전반전의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기보다 물러나 지키는 쪽을 택했다. 확실하게 걸어잠그는 것이 아니라 애매한 후퇴를 택한 에메리 감독의 소극적인 선택은 결국 패배로 돌아왔다.

호날두는 전반기 내내 부진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올해 들어 스페인라리가에서 7골을 몰아치며 득점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여기에 UCL 11호골까지 넣으며 후반기 들어 확실히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호날두는 현재 UCL 득점 공동 선두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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