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남해] 김완주 기자= 우리 나이 23세. 또래 친구들은 중국에서 ‘2018 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에 참가하는 동안 황인범(아산무궁화)은 논산훈련소에 있었다. 그는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입대를 선택했다.

황인범은 어릴 때부터 각급 대표팀을 거친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대전시티즌에 입단해 팀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2017시즌 도중 황인범이 경찰청 입대를 지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많은 이들이 놀랐다. 나이도 어린 데다 2018년에는 아시안게임도 있기 때문이다.

축구선수치고 빠른 입대를 선택한 분명한 이유가 있다. 황인범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입대를 택했다. 이명주, 주세종, 김선민, 김도혁 등 쟁쟁한 미드필더들과 경쟁도 두렵지 않다. 그는 오히려 “형들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들 기회를 얻었다”라며 즐거워했다. 세 시즌 연속 K리그2 베스트 일레븐에 뽑히고 싶다는 당찬 포부도 밝혔다.

지난 12월 7일 동기 13명과 함께 입대한 황인범은 1월 팀에 합류해 선임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난달 전남 광양에서 진행된 전지훈련에서는 체력을 끌어 올렸고 경남 남해에서는 전술 훈련을 진행 중이다. ‘풋볼리스트’는 지난 6일 훈련을 마친 ‘이경’ 황인범을 만났다.

다음은 황인범과 인터뷰 전문.

 

- 축구선수치곤 빠른 입대를 선택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20살 때 아버지가 그냥 흘리는 말로 “인범아, 군대를 빨리 갔다 오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대 생각은 전혀 없었다. 프로 데뷔하고 축구를 정말 재밌게 했었는데 작년에는 힘들었다. 프로 3년 차가 되면서 현재에 안주하는 나를 발견했다. 동기부여가 잘 안됐다. 그러다 보니 더 높은 무대에서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 진출도 추진했는데 이적료 문제나 여러 문제로 번번이 무산됐다. 유럽에서 내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어린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언제까지나 유망주일 수는 없다. 나이가 아닌 다른 메리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군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가 대전 형들이 서로 경찰청 서류 넣었냐고 물어보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언제 모집을 하는지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다. 깜짝 놀라서 아버지께 바로 전화 드리고 부랴부랴 준비해서 다음 날 바로 입대 지원을 했다.

- 또래 축구 선수들의 반응은 어땠나.

(황)희찬, (황)기욱이랑 친하다. 내가 군대 간다는 기사를 보고 기욱이는 “황인범답다”라고 이야기 했다. 희찬이는 나보다 본인이 더 아쉬워했다. 희찬이랑은 연락도 자주 하고 희찬이 에이전트를 통해서 유럽구단 오퍼가 오기도 했다. 기욱이는 희찬이가 나를 부러워 하는 거 같다고 하더라. 희찬이는 외국에 있어서 군대를 가고 싶어도 못 가니까. 희찬이랑 (김)민재는 월드컵을 준비해야 하니까 안 다치고 잘했으면 좋겠다. 16세 때 이후로 같이 해본 적이 없다. 특히 희찬이랑은 둘이 항상 같은 팀에서 뛰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둘이 서로 너무 잘 맞는다. 희찬이는 뒷 공간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이는 선수고, 나는 그런 쪽으로 패스를 넣어주는 걸 즐긴다. 내가 노력해서 A대표팀에서 만나고 싶다.

- 대전 입장에서는 팀의 에이스를 보내고 싶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윤장석 사장님과 김종현 코치님이 계셨다. 먼저 입대 지원을 하겠다고 구단 팀장님께 말씀을 드렸다. 김종현 코치님한테는 면접 보러 가기 전날 방에 가서 “내일 아산 가봐야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코치님께서 네가 아산을 왜 가냐고 하시더라. 그래서 경찰청 지원했다고 말씀 드리니 처음엔 놀라시다가 나중에는 잘 생각했다고 군대는 빨리 갔다 오는 게 최고라고 하시며 응원해주셨다. 합격자 발표가 난 다음에 새로 오신 김호 사장님이 아쉬워하셨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 훈련소 생활은 어땠나.

걱정을 전혀 안하고 들어갔다. 훈련소라는 개념도 없었다. 군대 갔다 온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다 편하다고 하더라. 임대 전날도, 당일 날도 전혀 긴장을 안 했고 걱정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니까 주변에는 똑같이 머리 짧은 남자들만 있고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소 안쪽 건물로 걸어 들어가는데 ‘아 진짜 잘못 왔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앞이 캄캄했다. 처음 사나흘은 정말 시간이 안 갔다.

훈련은 힘들지 않았다. 팀에서 훈련하는 게 훨씬 힘들다. 밥을 너무 조금 주는 게 제일 스트레스였다. (양)형모 형이랑 같은 분대였는데 둘이서 밥을 너무 적게 준다고 불평을 많이 했다. 형들이 왜 군대가면 몸이 망가진다고 하는지 그때 알겠더라. 일반 동기들과도 잘 지냈다. 축구가 아닌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는 게 나와 형모형에겐 신세계였다.

- 팬들에게 편지를 많이 부탁하고 간 거로 알고 있다. 많이 받았나.

입대 전 인터뷰를 통해 그렇게 인터넷 편지를 많이 써달라고 부탁하긴 했지만 편지의 소중함을 사실 잘 몰랐다. 여자친구한테도 많이 쓸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고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 보니 편지의 힘이 대단하더라. 아침에 편지를 받고 하루를 시작하는 게 엄청난 힘이 됐다. 주소를 따로 올려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도 팬들이 직접 찾아서 편지를 많이 써주셨다. 친구들도 많이 써줬다.

- 분대 동기 양형모랑 비교했을 때는 누가 더 많이 받았나.

처음에는 형모 형도 나처럼 지인들한테만 조금씩 왔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편지가 갑자기 엄청 많이 오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다른 연대에 있던 (안)현범이 편지를 제일 많이 받는 훈련병이라는 소문이 팬들 사이에 퍼져서 수원삼성 팬들이 형모 형 기를 살려줘야 한다고 지면 안 된다고 보내기 시작한 거였다. 아침에 편지 나눠주는데 조교가 양형모, 양형모, 양형모 맨날 이랬다.

- 훈련소 마치고 자대에 왔을 때는 편하지 않았나.

신병 13명이 수료식 마치고 이제 힘든 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산에 오니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소대장님께서 정말 엄격하시다. 잡담도 못 하고, 웃는 건 상상도 못 했다. 한번은 복도에서 (김)선민이형이랑 (김)동진이형이랑 이야기하다가 잠깐 웃었는데 소대장님이 보시고 “황인범, 자꾸 이 보일 거야?”라고 하셨다. 정말 무서웠다. 훈련소보다 아산에서 군기가 제대로 잡혔다. 또 부대에 오자마자 눈이 엄청 왔다. 왜 다들 군대 갔다 오면 눈 치운 이야기를 하는지 이제 이해했다. 점호 끝나고 자는 시간이 하루 중 제일 행복했다.

 

- 광양에서 1차 전지훈련을 마치고 2차 전지훈련 중이다. 몸 상태는 어느 정도인가.

아직 다 올라오지 않았다. 군대 갔다 온 형들이 훈련소 갔다 오면 몸이 완전히 올라오는데 3~4개월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 작년에 시즌이 일찍 끝나고 쉬다가 훈련소까지 갔다 오다 보니 오래 걸리는 거 같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속도로 몸이 올라오고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고 싶다. 처음 온 팀이라고 무리하다 다치면 더 손해니까. 하던 대로 천천히 올리고 있다.

- 아산은 기존 선수들뿐 아니라 동기들까지 미드필더진이 쟁쟁하다. 경쟁에 대한 부담은 없나.

입대가 확정되고 멤버를 확인했다. 정말 쟁쟁한 선수들이다.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선수들이다. K리그1 상위권 팀에서도 충분히 게임을 뛸 수 있는 선수들이 모여 있다. 나와 같은 위치에서 뛰는 좋은 선수들의 장점을 가까이에서 보고 직접 흉내 내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1년 9개월 동안 더 발전할 수 있을 거 같아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기대되고 설렌다.

- 전부터 올해 아시안게임 출전이 목표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속팀 활약이 중요하다.

당연히 소속팀 활약을 바탕으로 평가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너무 욕심내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몸 상태에 맞춰서 최선의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처음엔 바로 주전으로 못 뛰더라도 기다리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팀에서 못 뛰는 상황에서 대표팀에 뽑히는 것보단 아산의 좋은 멤버 속에서 경쟁에 살아남고 대표팀에 가는 게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 여기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먼저다. 그러면 대표팀에서도 불러주실 거로 생각한다. 선임들과 동기 형들도 아시안게임에 나가야 한다고 많이 응원해주신다. 훈련할 때 누가 나에게 거칠게 수비를 해서 내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 같이 “우리 인범이 아시안게임 가야 하니까 살살 좀 해”라고 이야기하면서 챙겨준다.

- K리그2 2시즌 연속 베스트 미드필더에 뽑혔다. 올해도 욕심이 날 거 같다.

구단에 처음 와서 신병들 소개 영상 촬영을 했다. 다른 형들은 우승이나 승격이 목표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승격은 당연한 거고 3시즌 연속 베스트 미드필더가 목표라고 이야기했다. 형들이 “황인범 클라스~” 이러면서 놀리더라. 이번 시즌 잡은 목표는 경쟁에서 이겨 게임에 나가는 것과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소집되는 것, 그리고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드는 것이다. 큰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했다. 같이 뛰는 동료들이 워낙 좋아서 내 역할만 충실히 하면 재미있는 축구를 할 수 있을 거 같다. 기대되는 시즌이다.

- 이번 시즌 대전이랑 맞붙게 된다. 대전이랑 경기하는 걸 상상해본 적은 있나?

대전을 상대로 뛴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국내에 내가 뛸 팀은 대전과 군경팀 밖에 없다고 생각해왔다. 경기 일정 나오고 제일 먼저 확인한 것도 대전이랑 언제 경기하는지, 대전 원정이 언제 인지였다. 대전월드컵경기장에 가면 기분이 묘할 거 같다. 경기장에서 대전을 만나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게 대전 팬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대전이 항상 잘됐으면 좋겠다. 대전에 대한 기사도 좋은 기사만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사진= 풋볼리스트

* 황인범이 황희찬, 김민재, 황기욱에게 보내는 경고(영상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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