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점점 더 깊고 복잡해지고 있다. 현상과 주제는 점점 늘어나는데, 그에 대한 정보는 충분하지 않다. '풋볼리스트'는 매달 뜨거운 주제를 잡아 자세한 설명을 담은 기사. 풋볼리스트M(montly)을 낸다. 2018년 1월 주제는 스포츠 과학이다. <편집자주>

운동 선수의 부상에는 전조 증상이 있기 마련이다. 가벼운 통증을 무시하고 과격한 훈련을 하다가 큰 부상을 당하는 선수들이 많다. 엉덩이 근육이 불편하다는 느낌을 무시하고 운동하다가 십자인대를 다치는 것처럼 부위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미연에 예방할 수 있는 부상들이다. 부상을 줄이기 위한 스포츠과학의 노력은 선수들에게 불편한 곳은 없는지 끊임없이 물어보는 작업에서 출발한다.

이상기 MIT 대표는 지난해까지 서울이랜드FC의 골키퍼였다. 32세에 이른 은퇴를 택한 이상기는 현역 시절 영향을 받은 댄 해리스 피지컬 코치의 스포츠과학 기법을 더 효율적으로 개량할 수 있는 방법을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에서 찾았다.

이 대표는 현역 시절 괴짜 선수였다. 훈련 틈틈이 이모티콘으로 범벅된 ‘휴먼 블로그체’로 블로그를 운영하며 팬들과 소통하려느 시도를 했다. 서울과학기술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고, 스포츠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땄다. 출장 명단에서 제외됐을 때도 원정 선수단과 동행해 사기를 올리는 역할을 했을 정도로 전문 분위기 메이커였다. 해리스 코치에게 배운 스포츠과학 기법과 대학원에서 공부한 심리적인 부분을 조합한 서비스가 떠올랐다. 이 대표는 은퇴와 동시에 회사를 차리고 앱을 개발했다. 올해 시즌부터 상용화된 팀 매니저(TM)다.

해리스 코치는 서울이랜드 선수들에게 수시로 설문지를 나눠주곤 했다. 설문지는 현재 신체 중 불편한 곳은 어디인지, 그 정도는 1에서 10 중 어느 정도인지를 표시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아가 식사 상태, 어젯밤 수면 시간과 수면의 질, 현재 심리, 고민거리 등 컨디션 체크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자가진단 사항이 포함돼 있었다. 스포츠과학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이다.

TM은 이 설문지를 휴대전화로 옮겼다. 선수들은 훈련 전에 앱을 열고 몸 상태, 마음 상태, 근육 상태, 수면 시간, 수면의 질, 체중 등을 간단한 터치로 기입해야 한다. 훈련이 끝난 뒤에는자신이 느낀 훈련 강도, 훈련 만족도, 회복 속도, 개인 훈련 내용을 입력한다. 감독과 코치는 코칭 스태프용 프로그램을 통해 선수들이 입력한 사항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통계를 낼 수 있다.

선수들의 자가진단은 컨디션 조절과 부상 방지를 위한 1차 자료로 쓰인다. K리그 한 구단은 선수들의 컨디션을 설문 형태로 꾸준히 확인했다. 그랬더니 선수들이 ‘컨디션 좋음’을 의미하는 4점이나 5점을 많이 입력한 시기에 성적도 크게 향상되는 걸 볼 수 있었다. 반면 ‘컨디션 나쁨’을 의미하는 1점이나 2점이 많았던 달에는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두 시기의 승률은 각각 86%, 29%였다.

설문을 통해 개별 훈련, 영양 섭취, 수분 섭취를 각각 다르게 하는 건 레스터시티를 비롯해 유럽 빅리그에서 스포츠과학으로 효과를 본 팀들의 방식이었다. 훈련 전후 체중 변화는 선수가 얼마나 땀을 흘려 수분을 잃어버렸는지를 보여준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각 선수에게 주는 물의 양도 개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통증 체크 화면은 부상을 방지하는데 더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 선수들은 사람의 몸이 그려진 화면을 열고 통증이 있는 부위를 손가락으로 터치하면 된다. 터치를 한 번 하면 옅은 노란색이 나오고, 터치 횟수를 늘리면 진한 붉은색으로 바뀐다. 색이 진할수록 많이 아프다는 뜻이다. 통증 부위를 표시한 선수는 의무적으로 부상에 대한 코멘트를 남겨야 한다.

선수들은 부상을 당하기 전 약간의 통증을 느꼈지만 무시하고 그냥 뛰다가 화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아주 가벼운 통증이라도 표시하게 돼 있는 TM의 시스템은 자가진단을 더 정확하게 만들어준다. 한 K리그 구단은 부상 체크 설문을 꾸준하게 실시했을 때 49%의 부상 감소 효과를 봤다. “의학계에서는 예방 가능한 부상 비율을 40%로 보고 있다”(정태석 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현 스피크 재활의학과/퍼포먼스센터 원장)는 전문가의 말과 비슷한 효과다.

이 대표는 현역 시절 몸이 불편해 훈련에서 빠져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가, 감독으로부터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눈총을 받았던 적이 있다. 축구 팀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는 오해다. 어깨가 심하게 아프기 전부터 이미 1, 2 정도의 통증 강도를 TM에 표시해 왔다면 이 선수의 부상이 꾀병은 아니라는 걸 감독에게 납득시킬 수 있다.

TM은 이미 복수의 K리그 구단에서 사용되고 있다. 심리 상담, 동기 부여, 감독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소통 기능, 훈련 스케줄을 앱으로 공유하는 기능 등 팀 관리를 위한 다양한 기능이 포함돼 있어 반응이 좋다. PC 게임에서 과업을 성취하는 것처럼, TM에서도 특정 목표를 달성하면 ‘퀘스트’를 클리어한 것 같은 효과를 줬다.

TM은 축구계의 최신 화두인 스포츠과학 강화와 맥을 같이 한다. 김판곤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 위원장도 취임 기자회견에서 “스포츠 사이언스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TM이 한국 축구계에서 널리 쓰이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실제로 전면 도입 제안을 받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김진형 홍보팀장은 “미팅을 하고 나서 좋은 아이템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현장에 도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K리그 주장간담회 등을 통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스포츠과학자들이 앱까지 써 가며 선수들의 컨디션을 수시로 체크하는 건 크게 두 가지 목표를 갖는다. 첫 번째는 부상 예방이다. 두 번째는 고강도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단순히 활동량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같은 거리를 뛰더라도 전력질주(스프린트)와 점프처럼 몸에 무리가 가는 동작을 더 자주 할 수 있는 선수를 만들어내는 게 목표다. 레스터가 2015/2016시즌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할 때도 다른 팀보다 더 폭발적인 역습 속도가 비결이었다.

이 대표는 TM을 사용했을 때 부수적으로 생기는 심리적인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어쩌면 신체 능력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 심리일지도 모른다. 이 대표는 “스포츠과학으로 관리하기 위한 설문을 진행하다보면, 선수들은 잘 관리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아시아의 문화적 전통 때문에 코칭 스태프의 적절한 간섭이 있어야 오히려 신뢰관계가 생긴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도자가 꾸준히 선수에게 관심을 갖고 관리한다는 느낌을 줘야 선수는 안정적으로 훈련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 MI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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