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월드컵의 해다. '풋볼리스트'는 러시아에서 한국과 경기할 3개국의 축구 문화를 다양한 시각에서 해부한다. 행정, 전술, 관중문화 등 주제를 가리지 않고 독자 여러분께 흥미로운 내용을 전달해 드릴 예정이다. <편집자 주>

 

역사에 기억되는 건 승자인가, 선구자인가. 시간이 흐른 뒤 기억되는 건 트로피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아름다운 축구를 하는 2인자가 무미건조한 승자보다 더 오래 기억된다고 말하는 호르헤 발다노같은 사람도 있다. 전자는 실리주의자, 후자는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독일은 실리주의자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축구 대표팀이다. 한 번도 세계 축구 트렌드를 선도한 적은 없지만 최소한 뒤쳐지지 않으려는 끝없는 노력이 독일 역사를 만들었다. 독일은 늘 전술적으로 최고가 아니었고, 성적은 최고였다.

 

크루이프, 마라도나, 메시를 갖지 못했지만 막을 줄 아는 나라

1970년대 초반 세계축구를 바꿔 놓은 팀은 분명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토털풋볼의 핵심 원리는 40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바르셀로나를 통해 효용을 입증했다. 1980년대 말 아리고 사키 등의 감독이 현대축구의 기본 모델을 만들 때도 가장 중요한 참고 자료는 토털풋볼이었다. 전술 역사에 미친 영향을 따지자면 당시 네덜란드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팀으로 꼽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 시기의 승자는 서독이었다. 서독은 ‘1974 서독월드컵’ 결승전에서 네덜란드를 꺾었다. 이 경기는 요한 크루이프와 프란츠 베켄바워의 대결이었다. 크루이프는 당대 가장 뛰어난 축구를 상징하는 선수였다. 크루이프의 자유로운 움직임은 토털풋볼의 중요한 요소였다. 공으로 하는 모든 종류의 기술뿐 아니라 공 없을 때의 움직임도 크루이프가 최고였다.

반면 프란츠 베켄바워는 크루이프와 비슷하면서도 반대 성향을 가진 선수였다. 베켄바워는 골키퍼 바로 앞에서 프리롤 수비수 역할을 맡다가, 공을 잡으면 직접 전진하며 공격을 지휘하는 리베로의 개념을 확립시킨 선수다. 앞선 시기 이탈리아식 수비 축구에서 수비에만 전념하던 스위퍼의 개념과, 크루이프와 같은 프리롤의 개념이 베켄바워의 플레이스타일에 모두 들어있었다. 크루이프만큼은 아니지만 베켄바워 역시 축구사에 영향을 미친 포지션 선구자였다. 서독은 네덜란드만큼은 아니지만 전술적으로도 완성도가 높고 당대 다른 팀보다 유기적이었다.

결국 공격적이면서 유기적인 네덜란드를 수비적이면서 유기적인 서독이 꺾었다. 크루이프는 아름다운 첫 골의 시발점 역할을 했지만 그 뒤로 베르티 포그츠의 대인방어에 막혔다. 결승전 내내 네덜란드 공격은 답답했다. 서독은 그다지 멋지지 않은 두 골로 역전을 달성하며 ‘혁명은 크루이프, 트로피는 베켄바워’라는 공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대회는 ‘당대 가장 아름답진 않지만, 가장 아름다운 팀을 꺾을 줄 아는’ 독일의 특징을 잘 보여줬다. 독일은 네 차례 우승하는 동안 그 시대에 가장 위대했다고 일컬어지는 선수들을 모두 결승전에서 꺾었다. 1954년에는 ‘매직 마자르’ 헝가리를 꺾고 우승했다. 1974년에는 크루이프와 네덜란드를 잡았다. 19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다. 2014년 브라질에서도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잡아냈다. 독일 축구에 대대로 전해지는 ‘비기’는 세계 최고 스타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술의 차용은 독일 전통, 뢰브도 펩과 나겔스만을 참고한다

현재 독일 대표팀도 실리주의적인 전통을 잘 따르고 있다. 요아힘 뢰브 감독은 자기 신념에 맞는 전술만 고집하는 사람이 아니다. 당대 가장 앞선 전술을 들여와 독일에 적용해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보수적인 성격을 조금 가미해 더 간단한 축구를 만들어낸다.

세계 축구의 주도권이 국가대표에서 클럽 축구로 넘어간 지금, 뢰브 감독이 참고하는 축구도 대표팀이 아닌 프로 축구의 세계에 있다. 대표적인 감독이 주제프 과르디올라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2013년부터 세 시즌 동안 바이에른뮌헨을 지도하며 온갖 파격적인 전술을 시도했지만 다른 감독들이 영향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과르디올라의 감독을 용감하게 차용한 건 뢰브였다. 어차피 바이에른 선수들이 독일 대표팀의 주축을 이루는 상황이었다. 필립 람, 토마스 뮐러, 제롬 보아텡 등의 몸에 익은 전술을 도입하는 건 실용적인 발상이었다. 뢰브 감독은 원래 풀백인 람을 바이에른처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변칙 전략으로 ‘2014 브라질월드컵’ 초반을 보냈고, 나중에 풀백 포지션의 문제를 확인한 뒤에야 람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러면서도 보수적인 성격을 가미하는 것이 뢰브 감독의 개성이었다. 뢰브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초반에 람을 미드필더로 올리고, 양쪽 풀백에는 모두 센터백을 겸할 수 있는 장신 선수를 배치했다. 수비수들이 점점 빨라지고 미드필더에 가까워지는 요즘 추세와 거꾸로 가는 선수 구성이었다. 독일은 측면 공격이 약해진 대신 제공권과 세트피스 득점력에서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결국 뢰브 감독은 결승전에서 왼쪽에는 장신인 베네딕트 회베데스, 오른쪽에는 람을 배치하는 전략으로 타협을 봤다.

최근에도 뢰브 감독은 과르디올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과르디올라는 스리백을 쓸때 좌우 수비를 도와줄 윙백을 없애버리고, 윙어의 공격력과 수비 가담으로 측면을 장악하게 하는 과감한 공격 전술을 쓴다. 뢰브 감독 역시 독일 대표팀의 윙백 자리에 원래 윙어인 율리안 브란트를 쓰며 비슷한 선수 기용을 시험했다.

뢰브 감독은 독일 안에서 가장 유행하는 축구를 받아들이는데 여전히 거리낌이 없다. 지난해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율리안 나겔스만 호펜하임 감독, 랄프 하젠휘틀 RB라이프치히 감독의 전략을 부분적으로 차용했다. 신선한 전술로 주목받는 분데스리가의 지략가들이다.

독일 전술은 한 번도 앞서간 적이 없다. 대신 선구자 뒤에 바짝 붙어 그 핵심을 독일식으로 흡수하고, 트로피를 수집해가며 여기까지 왔다. 검증된 축구를 차용하는 것이 축구 역사상 가장 꾸준히 성공을 거둔 비결이다. 독일은 월드컵 우승 4회, 준우승 4회, 4강 5회, 8강 3회 등 월드컵 누적 성적을 볼 때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상대국 해부 시리즈 링크

① '실패해도 괜찮아' 유소년 재기 돕는 독일 축구의 힘

② 선구자를 포기하고 승자를 택한다, 독일 전술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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