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적 시장이 열렸다. K리그 이적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리그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 리그다. K리그는 더 이상 주도적으로 아시아 시장을 이끌어가지 못한다. 아시아 리그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리그에 파급력이 미치는 이유다. '풋볼리스트'는 2018년 겨울 이적시장을 주도하는 '아시안 마켓'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2018년 새해 첫날 일본 사이타마 현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에서 열린 세레소오사카와 요코하마F마리노스의 제 97회 일왕배 결승. 경기장에 등장한 양 팀 선발 선수 22명 중에는 한국 선수 2명이 포함돼 있었다. 세레소의 골키퍼는 김진현, 요코하마 수비진의 한 자리는 박정수였다.

일본 프로축구 경기에서 한국 선수를 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J1리그(1부)부터 J3리그(3부)까지 많은 팀들이 한국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2017년 2월 1일 기준 J리그에 등록된 한국 선수는 모두 44명이었다. 2016년 41명보다 소폭 상승한 수치다.

일본 J리그는 과거부터 한국 선수들이 가장 많이 뛰는 해외 리그였다. 홍명보, 황선홍, 유상철 등 한국을 대표했던 선수들은 J리그로 진출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국 선수들의 선택지가 중동, 중국 등으로 넓어지면서 J리그 진출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었으나 최근 들어 한국 선수들이 J리그로 이적하는 흐름이 다시 늘고 있다.

 

초대형 중계권 계약, 두둑해진 주머니가 투자로

J리그는 2017년부터 영국 스포츠 미디어 기업 퍼폼 그룹이 운영하는 스포츠 스트리밍 서비스 DAZN과 새로운 중계권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 10년, 중계권료는 2,100억 엔(약 2조 200억 원)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이었다. 연간 중계권료가 65억 원(추정치) 수준인 K리그와 비교하면 30배 이상 차이 나는 액수다.

중계권료의 상승으로 J리그 클럽들이 받는 돈도 크게 증가했다. 2017시즌 J1리그 우승 상금은 3억 엔(약 28억 원)이었다. 우승 팀 뿐 아니라 J1리그 모든 팀은 중계권료를 3억 5,000만 엔(약 33억 원)씩 분배 받는다. J1 상위 4팀에게는 순위에 따라 선수 영입이나 육성, 훈련비용을 충당하라고 강화 배분금도 지급된다. 이 액수 역시 상당한다. 모든 금액을 합하면 2017시즌 J1리그 우승팀은 21억 5천만 엔(약 207억 원)을 받게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돈을 많은 쓰는 리그는 중동과 중국이었다. 거액의 몸값으로 유럽에서 뛰는 선수를 영입하고, 아시아쿼터로 대표급 선수를 영입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동에서 임금체불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고, 중국이 아시아쿼터를 폐지하고 외국인 선수 영입 관련 규정을 개정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도 이제 거액의 이적료와 연봉으로 루카스 포돌스키와 조처럼 유명한 선수를 영입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의 선택지도 같은 이유로 좁아졌다. 대외적 상황과 중계권 계약으로 얻은 재정적 여유가 맞물려 일본이 다시 한국 선수들의 행선지로 부각되고 있다. 장현수(FC도쿄), 정우영(빗셀고베), 황석호(시미즈S펄스)가 중국을 떠나 J리그로 이동했다.

 

한국 선수의 강점 : 피지컬과 뛰어난 적응력

2017시즌 J1리그 8위를 차지한 사간도스에는 한국 선수가 4명(김민혁, 정승현, 안용우, 조동건) 속해있었다. J리그는 외국인 선수 3명에 아시아쿼터 한 명까지 총 4명의 외국인 선수를 등록할 수 있도록 한 아시아축구연맹(AFC)의 규정을 따르고 있다. 추가로 태국, 베트남 등 협정을 맺은 국가 선수를 1명 더 등록할 수있다. 사간도스는 이례적으로 협력 국가 출신 선수를 제외한 외국인 쿼터 4장을 모두 한국 선수에게 사용했다. 요코하마에서 뛰던 박정수가 최근 김보경, 윤석영이 뛰는 가시와레이솔로 이적하면서 이 팀도 2018시즌 3명의 한국 선수를 보유하게 됐다.

J리그 팀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포지션은 체격이 좋은 수비수나 스트라이커, 또는 활동량이 뛰어난 미드필더다. 일본 선수들은 대체로 한국 선수들보다 체격이 작다. 그러다 보니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한국 선수를 상대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J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한국 선수 중 센터백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포항스틸러스에서 세레소로 이적한 양동현의 경우도 키가 커 제공권에 강점이 있고 힘이 좋은 정통 스트라이커 유형이다.

한국 대표급 골키퍼들이 J리그에서 각광 받는 이유도 육체적으로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 골키퍼들은 일본 골키퍼에 비해 대체로 신장이 커서 공중볼 경합에서 우위를 보인다. 최근에는 한국 골키퍼들이 신장만 큰 게 아니라 순발력과 빌드업 능력까지 갖추면서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있다. 2017시즌 J1리그 18팀 중 5팀의 주전 골키퍼가 한국 선수였다.

한국 선수들은 적응력 면에서도 다른 국적 선수들에 비해 우위에 있다. 브라질 등 남미에서 일본으로 건너오는 선수들은 문화적 차이 등으로 일본 적응에 실패하고 기대만큼 활약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 선수들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일본 선수들과 큰 차이가 없어 선수단과 잘 어울리고 적응도 빠르다. 통역에 의지하는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 달리 일본어를 스스로 공부하는 열의도 있다.

 

유망주의 일본 진출도 여전

국가대표급 스타가 일본으로 건너가는 만큼, 어린 선수들이 일본에서 도전할 자리가 없어질 거라는 전망이 있었다. 실제로는 큰 영향이 없었다. 고교, 대학무대에서 뛰는 유망주들의 J리그 입단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올 겨울에도 아마추어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대거 J리그 팀에 입단했다. 2018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새로운 계약이 발표될 가능성도 높다.

한국 국가대표 선수 중에는 프로 경력을 일본에서 시작한 선수들이 많다. 1월 전지훈련에 소집될 한국 1월 전지훈련 선수 명단에 포함된 김영권, 장현수, 김진수, 정우영은 일본에서 프로에 처음 데뷔했다.

J리그 구단은 한국 아마추어대회에 꾸준하게 스카우트를 보내 선수들을 관찰한다. 한국과 일본 대학선발팀이 겨루는 덴소컵은 물론이고, 매년 2월 통영에서 열리는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도 경기를 관전하는 일본 스카우트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중퇴한 뒤 베갈타센다이에 입단한 이윤오와 같은 사례도 나온다.

유망주들이 K리그 대신 J리그를 선택하는 는 K리그 규정의 문제도 있다. 고교와 대학 무대에서 활약한 최상위권 유망주라도 해도 K리그에 입단하면 계약금 최고 1억 5천만 원과 기본급 3,600만 원을 받고 뛰어야 한다. 계약금을 최대 한도로 주는 팀도 몇 안 된다. 한 에이전트는 “최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어린 선수도 K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개선했지만, 최고 유망주가 대기업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보다 적은 금액을 받아야 하는 현실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유망주가 해외로 넘어가는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J리그가 K리그에 비해 신인 선수들에게 훨씬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J2리그에서 신인 선수들이 평균적으로 받는 기본급은 K리그보다 높긴 하지만 크게 차이가 나진 않는다. 그럼에도 선수들이 J2리그로 향하는 이유는 2년차 이후에 더 많은 연봉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K리그에서는 신인 선수가 아무리 뛰어난 활약을 펼쳐도 1년 뒤 두 배 넘게 연봉을 올릴 수 없다. 반면 J2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 상위권 구단으로 이적이 가능하고 기대되는 보상도 크다.

글= 김완주 기자

사진= J리그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