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성남] 김정용 기자= 지난해 K리그 챌린지에서 가장 수비가 좋았던 팀은 성남FC고, 그중 핵심 역할을 한 선수가 이지민과 연제운이었다. 두 선수는 지난해를 통해 명실상부한 성남의 주축으로 올라섰다.

5일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난 이지민, 연제운은 전에 없던 책임감이 생겼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명 다 자신의 달라진 위상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선수단 소집 2일차에 불과하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난해까지 형들에게 의존했다면, 이젠 실력이나 나이 모두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성남의 선수단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변화가 더 빨라졌다. 성남 구단은 성남시에 올해 예산안 70억 원을 제출했지만 단 15억 원만 승인됐다. 선수단 규모를 줄여야 한다. 이지민과 연제운은 격동의 시기를 헤쳐나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불안감과 책임감을 숨김 없이 밝혔다. 솔직한 청년들이었다.

 

△ 고참 없는 팀, 우리가 중심?

풋볼리스트(이하 ‘풋’) : 성남 예산이 대폭 삭감됐고, 김두현과 이후권을 비롯해 자유계약 대상자들은 대부분 팀을 떠나는 분위기예요. 남기일 감독이 새로 왔고요. 격동의 새 시즌을 시작하는 기분이 어떤가요?

이지민 : 약간 부담이 돼요. 혼자 있을 땐 계획을 세울 수가 없더라고요. 우리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으니까요. 선수단이 작년보다 약해질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왔어요. 일단 들어와 보니까 기분이 좀 나아졌어요. 감독님의 철학이 있으시고. 작년보다 오히려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도 있어요.

풋 : 상당히 솔직하시네요?

연제운 : 지민이 형이 원래 솔직하고 말이 많아요. (이지민 : 분위기메이커라고 해라.) 분위기메이커예요.

작년까지 팀에 노장 형들이 많았기 때문에 경기장 밖에선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형들이 하자는 대로 했어요. 그런데 한순간에 제가 팀에서 중간 정도 나이가 됐더라고요. 책임감이 생기고, 더 희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은 바뀐 팀 분위기가 많이 어색해요. 감독님, 코치님들이 하나로 만들려고 노력하시는 것 같아서 저희도 빨리 따라야 될 것 같아요.

이지민 : 제운이 말이 맞아요. 작년에는 형들을 따라갔는데, 올해는 이끌고 가야 되잖아요. 쓸데없는 책임감이 생겼어요. 원래 진지한 성격이 아닌데 그렇게 해야 될 것 같고.

풋 : 그동안 이끌어주던 형은 누군가요? 역시 김두현 선수인가요?

연제운 : 두현이 형이 엄마 같은 존재라면 (박)성호 형이 아빠랄까? 성호 형이 일부러 좀 무섭게 일부러 했고, 두현이 형은 뒤에서 어린 애들 챙겨줬어요.. 서로 다르게 이끌었던 것 같아요.

이지민 : 이제 고참이 별로 없어요. 제운이가 (김)동준이와 함께 중간에서 중심을 잡아야죠. 저는 그냥 좀 도와주는 정도.

연제운 : 지민이 형이 그래도 후배들 잘 챙겨줘요. 어린 선수들 챙겨서 종종 밥도 사 주고요.

이지민 : 무서운 애들이라 잘 보여야 되거든요. 백숙 사줬어요. 왜 웃으시죠? 제가 백숙 사줄 형편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연제운 : 제가 올해 3년차인데요. 2년차 까지는 워낙 형들이 많아서 선수단의 방향을 결정할 일이 전혀 없었어요. 의견을 낸 적도 없고.

이지민 : 너 두현이 형한테 의견 잘 내잖아. 경기 중에 두현이 형한테 “좀 뛰세요”라고 했잖아.

연제운 : 경기 중엔 할 말은 해야 되니까요. 경기 끝나고 미안하다고 했어요.

이지민 : 안 하면 큰일 나지.

 

△ 경기장에서 부딪치고 삐치며 친해졌죠

풋 : 이지민 선수는 장학영 선수의 뒤를 이어서 왼쪽을 맡고 있는데, 말하자면 성남 레전드의 후계자가 되는 거잖아요.

이지민 : 학영이 형은 지금이야 축구 인생 막바지니까 제가 경쟁할 수 있는 거지, 제 나이 때는 훨씬 대단했잖아요. 국가대표도 하고 우승도 했으니까. 따라잡는다고 생각하긴 힘들고 제 나름대로 저만의 것을 찾아가고 있어요. 작년에 제가 더 많이 뛰었다고 해서 경쟁에서 이겼다고 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감독님 스타일에 맞고 운이 좋아서 뛴 거죠.

풋 : 연제운 선수는 누군가의 후계자는 아니지만 비교적 어린 23세에 수비의 중심으로 뛰었어요.

연제운 : 제가 이 팀에서 중심이 됐구나 생각했어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동계훈련 때 다쳤다가 복귀할 때 오르슐리치도 마침 컨디션이 올라와서 함께 복귀했어요. 그때가 형들은 다치시거나 안 좋은 시기였고요. 형들이 원래 기량이 안 나오신 덕분에 운 좋게 제가, (이지민 : 결국 자기 자랑 하려고 저러는 거예요.) 네. 작년에 솔직히 제가 잘하긴 했죠. 감독님이 믿어주시니까 힘이 났고, (김)동준이가 골키퍼니까 먹힐 것 같은 공도 막아줘서 최소실점을 할 수 있었어요.

풋 : 두 분은 경기장에서 어떤 관계인가요?

이지민 : 제가 레프트백이고 제운이가 왼쪽 센터백이라서 바로 옆 자리예요. 처음엔 별로 친하지 않았어요. 기존 성남 선수들은 승격하겠다는 각오로 시즌을 시작했고, 저는 갓 이적한 처지니까 일단 출장하는 게 중요했죠. 제운이와 제가 비슷한 시점에 선발로 들어갔어요. 몇 경기 뛰다보니 서로 요구가 많아졌는데 서로 물러서질 않았어요. 경기 중에는 마음이 급하고 흥분이 되니까 각자 고집을 부렸죠. 예를 들어서, 제운이가 “형 수비 위치를 더 땡겨야죠”라고 말할 때 저는 더 공격으로 올라가고 싶었거든요. 계속 부딪치다가 나중엔 경기 내내 말을 안 한 적도 있어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가까워진 것 같아요.

풋 : 이지민 선수가 보는 연제운은 어떤 선수인가요?

이지민 : 머리가 좋아서 인터셉트를 잘 하고, 그 뒤의 패스가 좋아요. 패스의 속도와 선택이 엄청 좋아요. 또 얘는 스피드도 빠르니까 웬만큼 빠른 공격수는 따라잡을 수 있고, 커버도 잘 해주고. 1년차 때는 중앙 미드필더를 봤을 정도로 빌드업도 잘 하죠. 남들이 안 가진 걸 가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과대평가를 좀 했죠. 제가 공격에 치중해도 뒤에서 잘 막아줄 거라고.

풋 : 연제운 선수가 보는 이지민은?

연제운 : 사이드백이 갖춰야 할건 다 갖춘 것 같아요. 빠르고 힘도 좋고. 키가 작은데도 탄력이 좋아서 헤딩도 잘 따고 (이지민 : 저는 키 콤플렉스 없어요. 오래전에 버렸어요.) 드리블 좋고 패스 좋은데. 단점 하나 이야기하자면, 볼을 주면 저한테 볼이 안 와요. 저한테 주면 쉽게 풀 수 있는데 그러질 않더라고요. 근데 조금의 단점은 있지만 공격적인 성향에는 장점이 더 많아요. 작년 챌린지에서는 제일 좋은 왼쪽 수비수였죠. 아쉽게 상은 못 받았지만.

 

△ 이지민의 올해 목표, 탄천에서 보드 타기?

풋 : 아직 어느 팀도 전력의 윤곽이 나오지 않은 시기지만, 그래도 올해 각오를 밝혀 볼까요?

이지민 : 친구들에게 전 이렇게 이야기 하거든요. 클래식에서 2년 동안 뛰었는데, 확실히 클래식보다 챌린지가 더 힘들더라. 실력이 아니라 뛰는 양이 120%여야 한다는 느낌이 들고. 올해 바라는 건 탄탄하고 꾸준한 경기력이에요. 작년에 되게 들쭉날쭉했잖아요. 나쁜 시기엔 한없이 나빴고요. 올해는 지더라도 우리 플레이 많이 하고 아쉽게 지고, 이길 땐 상대를 제압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집을 쌓을 때도 밑에부터 탄탄하게 쌓아야 안 무너지니까. 그러다보면 좋은 성적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남기일 감독님도 조직적인 스타일이니까 선수들이 잘 따라가면 되겠죠. 작년보다 상황이 안 좋아졌지만 전화위복으로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연제운 : 작년에 솔직히 챌린지를 조금 얕보고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수준이 높고 느낀 게 많아요. 작년에는 원래 준비한 플레이가 볼 소유를 많이 하고 빌드업을 하는 축구였어요. 그게 안 되다보니까 팀 색깔을 선수비 후역습으로 바꿨어요. 올해는 동계에 만든 팀 색깔로 끝까지 가서 승격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풋 : 구단 예산 삭감 때문에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요. 선수들끼리 이야기 많이 해요?

이지민 : 깊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죠. 기사가 많이 나니까 접할 수밖에 없잖아요. 지원이 줄어들었으니까 신경이 쓰여요. 솔직히 프로 선수가 이런 걸 신경 쓴다는 것 자체가 처음엔 이해가 안 됐거든요. 운동장에서 팬들께 좋은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 못한 문제가 나와서 불안하고 답답해요.

연제운 : 어느 정도는 예상했거든요. 승격 못 하면 많이 깎이겠구나.

이지민 : 그런데 예상한 것보다 2, 3배가 깎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솔직히 사기가 떨어진 것 같고. 다른 쪽으로 사기를 올려야죠. 우리가 잘 하면 다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해야겠죠.

풋 : 긍정적인 면을 제시해보자면, K리그 챌린지는 선수단 총연봉이 좀 적어도 승격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잖아요. 연봉 순서대로 갔다면 작년에 부산, 성남이 승격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고요.

연제운 : 사실 챌린지 내려올 때 예산을 많이 안 줄였잖아요. 그런데 초반에 꼴찌를 하고 있었으니. 진짜 멘붕이었어요.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요. 클래식은 기술적으로 축구한다면, 챌린지는 더 간절한 사람이 이기는 리그인 것 같아요. 더 많이 뛰고 더 간절하게 뛰어야 유리해요. 제가 작년에 주전으로 뛸 수 있었던 이유와도 비슷해요. 우리 팀 형들이 저보다 좋은 기술을 갖고 있으시지만 제가 더 간절했기 때문에 많이 뛸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지민 :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 챌린지에 대한 주목이 너무 떨어진다는 게 정말 아쉬워요. 오늘 경기를 했는지, 결과가 어땠는지 친구들도 몰라요.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유럽에서는 1부와 2부의 실력차가 많이 나고 주목도 차이는 덜 나는 것 같은데, 솔직히 K리그는 클래식과 챌린지 실력차는 크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주목을 너무 못 받는 것 같아요. 빨리 클래식 가고 싶어요. (연제운 : 그래서 이적할 거라고?) 아니 저는, 심장이 검은색이라서….

풋 : 마지막으로 올해 목표가 있다면?

이지민 : 승격이 첫 번째죠.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FA컵 포함해서 공격 포인트를 7개 기록했는데 올해는 두 자릿수를 하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스케이트보드를 배우고 싶어요. 날이 좀 풀리면요. 실력이 좀 늘면 경기 당일에 경기장 트랙에서 보드를 타는 퍼포먼스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손글씨를 좀 배우고 싶어요.

연제운 : 팔뚝 이만하고 종아리가 이렇게 굵은데 저런 소녀소녀한 취미를.

이지민 : 제가 관심 받는 거 좋아합니다.

연제운 : 그래서 서포터들에게 최고의 선수예요. 서포터 한분 한분께 그렇게 잘 할 수가 없어요. 제가 볼 때 ‘오늘은 못했다. 욕 좀 먹겠구나’ 싶은 날에도 지민이 형은 무조건 박수!

이지민 : 나처럼 살아야 사는 거야.

연제운 : 제 목표는 당연히 승격이고, 개인적으로는, 음.

이지민 : 골 좀 넣어봐.

연제운 : 아, 작년에 한 골도 못 넣었거든요. 득점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인 목표는 따로 없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실천하기 힘들어서. 책 읽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이지민 : 원래 60페이지 넘기는 게 어려워. 그게 고비야.

 

△ 부록 : 개인상 못 받았지만 작년 챌린지 최고였던 선수는?

이지민 : 저는 골키퍼 김동준. 우리 팀 최소실점이었잖아요. 동준이는 꼭 기억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윙어 중에서는 안산그리너스의 장혁진, 그리고 공격수 라울. 둘 다 아주 뛰어났고. 경남FC에서 상 못 받은 정현철과 최영준은 정말 잘 하는 미드필더였거든요. 그런데 빠져서 좀 의아했어요.

연제운 : 저도 김동준. 그리고 왼쪽 수비수는 지민이 형. 지민이 형이 측면 수비수 중에서는 제일 잘 했다고 생각해요.

사진= 풋볼리스트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