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세리에A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 축구의 리그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세리에A의 전반기 일정이 거의 마무리된 가운데, 파비오 콸리아렐라는 인생 최고의 반년을 보냈다. 예전만큼 화려한 선수는 아닌 대신 간결하고 치명적이다.
지난해 12월 30일(한국시간) 이탈리아 제노바에 위치한 스타디오 코무날레 루이지 페라리스에서 19라운드 경기를 가진 삼프도리아는 SPAL에 2-0 승리를 거뒀다. 잔디 상태가 최악이어서 평소 삼프도리아가 추구하는 짧은 패스 플레이가 잘 되지 않았다. 삼프도리아는 컵대회 포함 1무 4패로 부진한 상태였다. 하위권인 SPAL을 상대로도 골이 잘 터지지 않았다.
콸리아렐라, 잔루카 카프라리, 데니스 프라에트, 가스톤 라미레스가 돌아가며 슛을 시도했지만 골문과 먼 곳에서 날린 슛은 골키퍼를 뚫지 못했다. 코너킥을 받아 에드가 바레토가 날린 헤딩슛이 골라인을 거의 넘을 뻔 했으나 역시 선방에 막혔다. 오히려 막판으로 갈수록 SPAL 공격수 미르코 안테누치가 결정적인 슛을 날리는 등 삼프도리아가 위험에 빠졌다.
경기가 득점 없이 추가시간으로 들어가며 무승부가 유력해지던 시점, 마침내 삼프도리아에 확실한 기회가 찾아왔다. 라미레스가 페데리코 비비아니에게 밀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획득했다. 콸리아렐라가 골대 구석으로 가볍게 차 넣었다.
SPAL이 모험적인 플레이를 하려고 수비라인을 전진시키자 삼프도리아의 조직적인 공격이 드디어 통했다. 상대 압박의 틈바구니에서 바레토가 연결한 전진 패스를 루카스 토레이라가 다시 밀어줬고, 다비드 코브나스키가 문전으로 보낸 패스를 콸리아렐라가 넘어지며 밀어 넣었다. 공 없는 선수들의 연쇄적인 움직임이 돋보이는 삼프도리아 특유의 속공이었다.
전반기에 한 경기를 덜 치른 가운데, 콸리아렐라는 12골 5도움으로 두 부문 모두 팀 내 최고다. 세리에A 12골은 득점 순위 4위, 5도움은 공동 7위에 해당한다. 두 부문을 더한 공격 포인트 순위는 공동 3위다.
삼프도리아는 팀 득점의 약 61.8%(34골 중 21골)에 어시스트가 있을 정도로 조직적인 공격을 하는 팀이다. 드리블이나 우연히 주운 공에 의한 골이 아니라 동료의 패스를 받아 찬스를 만든 뒤 득점하는 플레이가 좋다. 라미레스, 토레이라, 프라에트 등 유기적인 플레이에 가담할 줄 아는 선수들이 많다. 이들을 한 팀으로 묶어낸 마르코 잠파올로 감독의 공격 전술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조직적인 축구에 대한 신조가 강한 마우리치오 사리 나폴리 감독은 “우리를 상대하러 와서 축구다운 축구를 시도한 팀은 삼프도리아뿐이었다. 대단한 감독인 잠파올로 덕분”이라고 칭찬했다.
좋은 공격 전술이 성적으로 이어지려면 결정력을 갖춘 공격자원이 필요하다. 득점은 대부분 콸리아렐라의 몫이다. 공격 파트너 두반 사파타가 6골, 선발과 교체를 오가는 스트라이커 잔루카 카프라리가 3골을 넣는데 그쳤다.
콸리아렐라는 착착 돌아가는 ‘집단 공격’ 속에서 적절한 움직임과 빠른 패스로 효율적인 플레이를 한다. 라미레스 등 동료들이 공을 빠르게 순환시키며 상대 수비를 교란하면, 수비가 알아채지 못하는 방향으로 침투하며 스루 패스를 이끌어내는 역할이다. 슛이 여의치 않을 때도 공을 오래 끄는 대신 중앙으로 짧은 크로스나 리턴 패스를 보낸다. 콸리아렐라가 골과 도움을 계속 기록할 수 있는 비결은 효율적인 플레이다.
한때 효율성은 콸리아렐라와 거리가 먼 단어였다. 대신 20대의 콸리아렐라는 화려한 선수로 기억됐다. 골문에서 다소 먼 곳이더라도 과감한 플레이로 득점하는 것이 특기였다. 발리 슛,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로빙 슛 등 상대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가 많았다. 이탈리아인들이 사랑하는 ‘판타지아(fantasia)’ 즉 상상력을 자극하는 환상적 플레이를 할 줄 알았다. 독특한 재능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대표로도 활약했다.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해 망신을 당했던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콸리아렐라의 아름다운 로빙슛은 이탈리아가 체면을 살린 유일한 장면이었다.
그렇다고 골이 많은 선수는 아니었다. 세리에A에서 12시즌을 뛰는 동안 13골을 넣은 적이 3번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우디네세, 나폴리, 유벤투스 등을 거쳤다. 2016년 1월 삼프도리아로 이적한 뒤 반 시즌 동안 3골에 그쳤을 때만 해도 한물 간 선수 같았다.
이번 시즌 간결하고 정확한 플레이에 집중하면서 콸리아렐라의 득점력이 부활했다. 단순한 부활을 넘어 데뷔 이래 최고 시즌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기당 패스 횟수가 16.1회에 불과한데, 이는 삼프도리아의 주전급 선수 중 압도적으로 낮은 수치다. 드리블 돌파도 거의 시도하지 않는다. 최적의 위치를 찾아다니며 공을 받으면 바로바로 처리하는 스타일이 수치에도 드러난다. 전방 압박에 맹렬하게 가담하는 건 아니지만, 수비 기록이 팀 내 공격수중에서는 가장 좋다.
잠파올로 감독은 “콸리아렐라는 정말 열심히 뛴다. 언제 전력질주 해야 할지도 잘 판단한다.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고 말했다. 최근 농구계에서 조직적인 공격을 추구하는 팀은 수비와 슛 정확도가 높은 가드(3&D)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다. 팀 전체가 어시스트를 많이 기록하는 골든스테이트워리어스가 대표적이다. 삼프도리아 공격 전술은 이런 농구팀들의 모션 오펜스와 비슷하다. 콸리아렐라는 대단한 개인기 없이 좋은 위치선정에 이은 슛, 열성적인 수비로 핵심 역할을 하는 클레이 탐슨에 비유할 수 있다.
콸리아렐라는 한때 멋진 골을 가장 많이 넣는 선수였지만 이제는 심심하게 밀어 넣는 골이 대부분이다. 대신 득점의 숫자는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축구를 더 쉽게 하는 법을 깨달은 듯 보인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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