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가 탈락했다. 지난 20차례의 월드컵 중 18차례에 참가했고, 그 중 4차례나 우승을 차지한, 지구상 가장 축구를 잘하는 나라 셋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이탈리아가 무려 60년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조차 밟지 못하게 됐다. 

이탈리아가 스웨덴과 ‘2018 러시아 월드컵’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을 때, 스웨덴이 어려운 상대이기는 해도 이탈리아가 본선에 진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1차전을 지켜본 사람은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이탈리아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유로 2016이 끝나고 난 뒤, 이탈리아 대표팀의 미래는 밝아 보였다. 비록 지난 두 차례의 월드컵에서 실패했지만, 역대 최약체라고 평가받던 대표팀은 스페인을 상대로 완벽한 경기를 선보였으며, 독일을 상대로도 끈질기게 버티며 승부차기까지 끌고 갔다. 콘테 감독은 대회가 시작되기 전인 3월에 이미 월드컵 후 대표팀을 그만둔다고 선언했고, 후임인 감독도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콘테의 뒤를 잇게 된 사람은 토리노의 감독이었던 잠피에로 벤투라. 이미 바리 시절 콘테 감독의 팀을 이어받은 적이 있었던 벤투라 감독은 토리노에서 3백으로 성공을 거둔 적이 있었기에 이 교체는 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벤투라 감독의 선임에는 다소 의심의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35년이 넘는 감독 기간 동안 그가 성공이라고 부를 만한 성적은 단 한 번. 리그 7위를 기록해 유로파 리그에 진출한 것뿐이었다. 그는 선수 생활과 감독 생활 모두 주로 하부리그에서만 보냈으며, 토리노 이전에는 레체를 이끌고 연속 승격(C에서 A까지)한 것이 내놓을 만한 경력의 전부였다. 벤투라가 선임되기 이전 물망에 오르던 후보들이 만치니, 도나도니, 라니에리와 같은 감독들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부정적 시각은 오히려 당연했다.

 

물론, 의심의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르첼로 리피는 벤투라가 아직 토리노를 맡고 있던 시절에 '토리노는 벤투라라는 이탈리아 최고의 감독을 갖고 있다'며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고, 실제로 벤투라의 이탈리아 대표팀은 초기에는 콘테의 시스템과 거의 비슷하게 운용하며 안정적으로 승점을 쌓았다. 그러다 그라치아노 펠레가 감독과의 불화로 대표팀을 떠나게 되었고 이 때부터 벤투라는 벨로티와 임모빌레를 동시에 기용하며 4-4-2(혹은 4-2-4) 포메이션으로 변화했다. 

#최악의 감독이 되어버린 벤투라

이탈리아가 속한 유럽 지역예선 G조는 실질적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싸움이었는데, 양팀 간의 맞대결도 중요했지만 조 최약체인 리히텐슈테인과의 대결에서 얼마나 많은 골을 뽑아내느냐도 중요했다. 따라서 리히텐슈타인과의 경기를 기점으로 전술을 바꾼 것은 일견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도 이탈리아는 전반에만 4골을 뽑아냈을 뿐 후반에는 상대의 대응에 해법을 찾지 못하고 결국 스페인과의 경쟁에서 크게 불리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이탈리아의 경기력은 점점 내려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스페인 원정에서 3-0으로 패한 뒤부터는 조의 모든 팀들이 이탈리아의 약점을 알아 버렸다. 벤투라의 이탈리아는 우수한 미드필더를 보유하고도 늘 상대의 중원에 밀렸고, 인시녜와 같은 리그 최고의 공격수는 대표팀에서는 아무런 장점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팀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감독의 아집은 점점 더해 갔다.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미드필더인 조르지뉴는 완고한 감독에게 외면 받다 팀의 운명이 걸린 스웨덴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 가서야 데뷔할 수 있었고, 바로 그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는 1차전부터 다시 3백으로 회귀했지만 이미 콘테 시절의 그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콘테 시절의 이탈리아는 1선과 2선이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유기적으로 공격을 이끌어 갔던 반면에, 벤투라의 이탈리아는 중앙은 실종되고 공은 오직 측면으로만 흘렀다. 팀의 공격 방식은 오직 크로스 밖에 없었고, 이는 스웨덴같이 체격조건이 좋은 팀을 상대로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탈리아에게 60년만에 치욕을 안긴 그는 스웨덴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이 끝나고 1시간이나 지난 뒤에 기자회견을 갖고 '협회와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아직 사임할 수 없다'는 충격적인 발언으로 또 한번 이탈리아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 두 차례의 월드컵에서 리피와 프란델리 감독은 모두 조별 라운드가 끝나자 마자 사임 의사를 밝혔다. 벤투라의 인터뷰가 문제가 된 것은 이번 만이 아니었다. 경직된 전술과 선수기용, 조르지뉴, 인시녜 활용등에 대해서 물을 때마다 그는 모두 외부의 비판을 부당한 것으로 돌렸다. 도대체 이탈리아는 왜 이런 감독을 골랐을까.

#잘못된 감독, 잘못된 회장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실패를 책임지고 전임 아베테 회장이 물러나, 새로운 회장 선거를 치러야 했다. 그 때 당선된 것인 현 회장인 카를로 타베키오. 그는 오랜기간 이탈리아의 아마추어 리그 연맹의 회장으로 일했고, 그 덕분에 당시 회장 선거에서 하부리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당시 그의 경쟁자였던 알베르티니는 이탈리아 축구에 큰 획을 그은 레전드로 개혁을 외쳤지만, 타베키오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타베키오는 선거과정 중 '잉글랜드에서는 프로의식을 가진 외국인 선수를 뽑는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바나나를 먹는 옵티 포바(가상의 인물)라는 외국인 선수가 주전으로 뛴다'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UEFA에 의해서 징계를 받기에 이른다. 

 

타베키오의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 공무원으로 일했던 적도 있는데, 1970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5번이나 범죄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는 인물이다. 문서 위조부터 탈세, 직권남용 등등 죄목도 다양하다. 애초에 이렇게 공적인 일을 맡기에 부적절한 인물을 축구협회 회장으로 뽑았으니 축구협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타베키오는 과거 감독이 유력했던 만치니 감독을 일컬어 '아직 경력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했다.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차지한 감독이 단 한번 유로파 리그에 나간 감독보다 경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한 셈이다. 이탈리아의 실패는 모두 부적절한 인사의 문제였다. 잘못된 리더가 어떻게 조직 - 협회와 대표팀 모두 - 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래도 더 밝은 내일을 위해

한편으로, 이탈리아가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긴 했지만, 대표팀의 앞날 그 자체가 어두운 것은 아니다. 부폰, 바르찰리, 키엘리니, 데 로시 등의 베테랑 선수들은 모두 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지만 현재의 이탈리아는 남아공 월드컵의 실패 이후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전 포지션에 걸쳐 포진하고 있다. 90년대 이후 태어난 선수들만 살펴 보자면, 골키퍼에는 돈나룸마, 페린, 수비수로는 칼다라, 로마뇰리, 루가니, 안드레아 콘티, 플로렌지 등이 있다. 미드필드에도 조르지뉴, 베라티, 갈리아르디니, 펠레그리니, 바렐라, 바셀리 등이 있고, 공격수로는 인시녜, 엘 샤라위, 베르나르데스키, 페데리코 키에사, 임모빌레, 벨로티, 자자 등 이미 리그 정상급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들 중 일부는 다음 월드컵에는 30대가 되겠지만, 여전히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는 나이다.

 

다만, 이런 선수들이 계속해서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리그나 협회 차원에서 이탈리아 유소년들에게 더 많이 경기에 뛸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이탈리아는 2군팀이 없어 유소년 팀은 19세 이하 팀인 프리마베라가 마지막이다. 프리마베라 리그는 있지만, 한창 성장할 시기인 19~23세까지의 선수들은 주로 하부리그에서 임대를 전전하는 불안한 신분이 계속되는 경우가 많다. 유벤투스, 밀란, 인테르 같은 빅 클럽들은 저마다 어린 선수들을 일찍 데려오지만, 이들이 성인팀으로 경기에 나서기란 쉽지 않다. 스페인이나 독일에서 2군팀들이 하부리그에 참가해 안정적으로 경기경험을 쌓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에는 잉글랜드도 23세 이하 팀이 참가하는 리그를 만들어 어린 선수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 과거에 이탈리아는 말디니나 토티, 카사노 같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선수들이 어린 나이에 데뷔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천재들이 나타나던 시기가 특별했던 것일 뿐이다. 시스템은 몇 명의 천재가 아니라 수십명의 평균 이상의 선수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60년만에 이탈리아가 없는 월드컵은 매우 낯선 광경이 될 것이지만, 그래도 이탈리아가 다시 끈끈한 모습을 보이며 다시 일어나기를 희망한다. 거인에게는 거인이 해야 할 의무가 있다.

 

글=박찬우(MBC 축구해설위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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