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이탈리아는 늘 꼼꼼한 전술로 이득을 보는 나라였다. 감독을 잘못 선임한 대가는 사상 두 번째 월드컵 예선 탈락이라는 충격적 결과다.

14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에 위치한 쥐세페 메아차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을 가진 이탈리아는 스웨덴과 0-0으로 비겼다. 앞선 1차전에서 승리한 스웨덴이 본선에 진출했다.

이탈리아는 1958년 스웨덴 대회 이후 처음으로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아예 참가하지 않은 초대 대회를 제외하면, 역대 두 번째 예선 탈락이다.

비판의 화살은 잔피에로 벤투라 감독에게 쏟아졌다. 벤투라 감독은 이탈리아 하부리그부터 경험을 쌓은 36년차 베테랑이다. 그러나 유명한 선수들을 다뤄본 적이 없었다. 약체 바리를 세리에A에 잔류시키고, 토리노를 하위권에서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리긴 했지만 국가대표 경험이 없는 건 물론 프로 무대에서도 큰물을 겪어 본 적이 인물이다. 비극은 예견돼 있었다.

벤투라 감독은 예선 조별리그부터 소극적인 전술로 비판 받아 왔다. 스페인과 가진 맞대결에서 단 한 번 패배해 조 1위를 내준 결과가 아니라, 경기력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었다. 스페인을 제외하곤 대부분 약체를 상대하면서도 멤버 구성과 공격 전술에서 충분한 실험이 이뤄지지 않았다.

선수 선발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특히 브라질 태생 미드필더 조르지뉴가 이탈리아 대표 발탁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술적으로 자리가 없다”고 완강히 거부하다가, 브라질이 먼저 발탁할 분위기가 되자 플레이오프에서 부랴부랴 선발한 건 최악의 선수단 운용이었다. 지난 시즌 세리에A에서 스리톱이 유행하며 로렌초 인시녜 등 수준급 윙어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투톱을 고수하느라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스웨덴전에서 미드필더들이 대거 결장하자 벤투라 감독은 조르지뉴에게 대회 경기 데뷔전을 지시했다. 조르지뉴가 미드필드 후방에서 동료들을 지휘하는 3-5-2였다. 부담스런 상황에서 데뷔전을 치렀지만 조르지뉴의 경기력은 훌륭했다. 조르지뉴는 같은 포지션에서 주전 자리를 지켜 온 다니엘레 데로시보다 전진 패스 비중이 높았다. 더 일찍 발탁했다면 이탈리아 공격을 강화할 수 있는 선수였다.

전반전 경기 내용은 그나마 나쁘지 않았다. 창의성이 부족한 이탈리아는 공을 오래 끄는 대신 조르지뉴를 활용해 빠른 템포로 전진시키며 위협적인 크로스를 올리려 했다. 어차피 측면 공격에 의존할 거라면 무의미한 지공보다 훨씬 나은 양상이었다. 전반 39분 조르지뉴의 멋진 스루 패스를 받아 치로 임모빌레가 날린 슛이 골키퍼를 통과했지만, 골라인으로 달려간 스웨덴의 안드레아스 그란키비스트가 극적으로 걷어냈다.

문제는 후반전이었다. 지켜야 할 시간이 줄어든 스웨덴은 더 노골적으로 수비에 치중했고, 이탈리아는 전반전과 달라진 양상을 타개하기 위해 교체 카드를 써야 했다. 3-5-2는 그리 공격적인 전형이 아니기 때문에 창의적인 공격 자원을 투입할 것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벤투라 감독은 교체 카드 세 장을 쓰긴 했지만, 막판까지 3-5-2 포진을 유지하며 소극적인 선택을 했다. 후반 18분 마놀로 가비아디니 대신 안드레아 벨로티로 공격수를 바꿨다. 동시에 왼쪽 윙백 마테오 다르미안을 빼고 스테판 엘샤라위를 투입했다. 같은 왼쪽 윙어라면 로렌초 인시녜가 최근 더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엘샤라위는 왼쪽 윙백을 맡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전술 변화 없이 다르미안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선수다. 벤투라 감독의 선택은 엘샤라위였다.

후반 31분 마지막 교체카드도 공격 자원을 늘린 게 아니었다. 오른쪽 윙백 안토니오 칸드레바를 빼고, 왼발잡이 2선 자원 페데리코 베르나르데스키를 투입했다. 미드필더로 뛰고 있던 알레산드로 플로렌치가 윙백으로 가고 베르나르데스키가 중앙에 투입돼 역시 3-5-2 전형을 유지했다.

엘샤라위와 베르나르데스키는 각각 AS로마와 유벤투스에서 붙박이 주전이 아닌 선수다. 반면 인시녜는 세리에A 선두 나폴리의 주전 윙어다. 벤투라 감독은 교체 카드조차 자신의 딱딱한 포메이션에 맞는 선수로 채웠다.

엘샤라위는 왼쪽 윙백으로서 고군분투했지만 플레이에 큰 위력이 없었다. 문전 침투를 통해 득점에 가담하는 것이 엘샤라위의 특기지만, 이미 스웨덴이 뒤로 물러나 있었기 때문에 엘샤라위가 측면으로 벌려 공격을 전개해야 했다. 맞지 않는 옷이었다. 나중에는 스리백 중 조르조 키엘리니를 노골적으로 전진시켜 왼쪽 공격을 강화했다. 엘샤라위는 공중에서 흐르는 공을 멋진 발리슛으로 한 번 연결했으나 선방에 막혔다.

이탈리아의 공격 전술은 끝까지 크로스뿐이었다. 후반 40분 이후에 크로스와 세트피스를 통해 슈팅 가능한 상황을 네 차례 만들긴 했지만 모두 득점과 거리가 멀었다. 스웨덴은 체격의 우위를 바탕으로 침착한 수비를 하며 이탈리아의 공격을 모두 막아냈다. 앞선 1차전과 같은 양상이었다.

스웨덴 공격이 답답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무기력증이 더 눈에 띄었다. 스웨덴은 페널티킥을 얻을 만한 상황 세 차례를 주심이 그냥 넘어간 것 외엔 득점 기회가 없었다. 이탈리아도 페널티킥을 주장할 만한 상황이 나왔으나 스웨덴만큼은 아니었다. 스웨덴의 빈공, 판정 행운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승리하지 못했다.

벤투라 감독은 왜 인시녜를 투입하지 않냐고 선수들의 항의를 받았을 정도였다. 데로시가 몸을 풀라는 지시를 받고 코칭 스태프에게 고함 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칼초메르카토닷컴’에 따르면 데로시의 말은 “인시녜를 투입해야지”라는 내용이었다. ‘스카이스포츠’ 등 여러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벤투라 감독은 경질이 유력하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