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이청용은 여전히 한국 대표팀에서 남다른 패스 센스를 가진 선수다. 그러나 센스를 살리기 위해 측면 수비로 배치하는 건 무리수로 드러났다.

원래 윙어였던 이청용은 7일(한국시간) 러시아전 2-4 패배, 10일 모로코전 1-3 패배 등 유럽 원정 친선경기 2연전에서 모두 오른쪽 수비수로 배치돼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청용은 공격과 수비에서 극단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이청용의 공격력은 특히 패스 전개 측면에서 뛰어났다. 이청용은 상대 선수의 견제를 받지 않을 때 뛰어난 패스 능력을 보였다. 넓은 시야, 재치 있는 패스 방향 선택으로 공격을 풀어 나갔다.

반면 수비적인 문제는 컸다. 특히 모로코가 왼쪽 공격에 주력하자 이청용의 부족한 수비 경험이 매번 문제를 드러냈다. 이청용은 위치 선정, 상대 윙어와의 적절한 간격 유지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너무 거리를 벌리고 수비하다 크로스를 내주는 상황이 반복됐다. 수비 위치를 너무 늦게 찾아가다가 이미 실점한 뒤에야 자기 자리에 도착하는 장면도 있었다.

윙어 출신인 선수를 스리백의 윙백으로 배치하는 건 최근 세계적인 강팀 사이에서 유행하는 선수 배치다. 대표적인 예가 첼시의 주전 오른쪽 윙백으로 활약 중인 빅터 모제스다. 첼시는 지난 시즌부터 모제스의 포지션을 윙어가 아닌 윙백으로 이동시켰고, 모제스는 서툰 수비에도 불구하고 폭발적인 공격력으로 상대 측면을 먼저 압도하며 우승에 일조했다. 윙어에서 윙백으로 이동했다는 면에서 모제스의 사례는 비슷한 면이 있다.

그러나 모제스와 이청용의 윙백 기용은 비슷한 점보다 차이점이 크다. 무엇보다 폭발적인 신체능력이 다르다. 모제스는 속공 상황에서 윙어로 변신해 팀의 파괴력을 높여줄 수 있고, 수비가 서툴지만 빠르게 후퇴해 열정적인 수비를 할 수 있는 지구력도 갖췄다. 반면 이청용은 한때 갖췄던 순발력을 오히려 잃어버린 상태다. 반복된 부상과 소속팀에서 이어진 후보 생활 때문에 폭발력이 다소 떨어져 있다. 모제스는 신체 능력이 뛰어나고 센스가 부족한 반면, 이청용은 신체 능력이 떨어져 있고 센스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반대 경우다.

그 외에도 윙어 출신으로서 윙백에 배치되는 선수들은 이청용과 다른 특징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주젭 과르디올라 감독이 바이에른뮌헨 시절 시도한 더글라스 코스타와 맨체스터시티에서 시도하는 르로이 자네의 윙백 배치, 독일 대표팀의 율리안 브란트 윙백 실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모두 윙백 혼자 상대 측면에 위협을 줄 수 있을 만한 돌파력과 폭발력의 소유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애초에 상대가 측면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밀어낼 수 있는 선수들이다.

윙백 이청용과 비슷한 성공 사례를 찾으려면 윙어 출신이라는 단편적 사실이 아니라 구체적인 특징을 봐야 한다. 이청용은 이번 2연전을 통해 윙백이면서도 후방에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짧고 긴 패스에 강점을 보였다. 상대 압박이 적은 후방에 배치돼자 패스 능력이 살아났고, 공격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땐 오버래핑도 했다.

이청용과 비슷한 스타일로 최근 큰 성공을 거둔 윙백은 다니 아우베스가 대표적이다. 아우베스는 지난해 33세 나이로 유벤투스에 합류, 다시 전성기를 되찾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때 폭발적인 신체 능력의 소유자였던 아우베스는 이미 느려진 뒤였지만, 느린 윙백의 생존법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아우베스가 특히 뛰어났던 건 오른쪽 측면에서 짧은 패스와 긴 패스를 자유자재로 섞어가며 공격을 전개했다는 점이었다. 수준은 다르지만 장점만 보면 윙백 이청용의 활용법을 고민할 때 참고할 만한 사례다.

그러나 지난 시즌 유벤투스도 아우베스의 수비력 부족 때문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러다 끝내 보완에 실패한 바 있다. 유벤투스는 아우베스의 영향력을 더 높이기 위해 지난 시즌 말기 팀 전술을 포백 기반에서 스리백 기반으로 바꾸고, 아우베스를 풀백에서 윙백으로 전진시켰다. 그러나 아우베스의 배후 공간이 여러 차례 공략 당하자 나중엔 아예 아우베스를 윙어로 전진시키고 그 뒤에 센터백 출신 안드레아 바르찰리를 라이트백으로 배치하는 변칙 기용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수비 불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팀의 약점으로 작용했다.

유벤투스와 같은 세계적인 팀조차 중요한 경기 때는 아우베스의 윙백 기용을 포기하고, 차라리 미드필더로 전진 배치할 정도로 수비 불안이 컸다. 신체 능력이 하락한 윙백을 공격적으로 쓰는 게 얼마나 전술적으로 큰 위험을 불러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청용의 수비 문제는 내년 6월 열리는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해결하기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더 조심스럽다. 소속팀에서 여전히 미드필더로 간주되는 한, 이청용은 대표팀에 소집됐을 때만 측면 수비 훈련을 할 수 있다. 전술적 역할만 습득하는 게 아니라 측면 수비의 기본적인 수비 기술부터 배워야 한다. 개선해야 할 점이 너무 많고, 클럽이 아닌 대표팀에선 어렵다.

이청용은 한때 박지성의 뒤를 이어 한국 2선을 책임질 인재로 기대를 모았다. 그 뒤로도 대표팀에서 보여준 모습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신체적 컨디션과 경기 감각을 회복한다면 지금도 대표팀에서 가장 기민한 기회 창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다. 신 감독의 실험은 이청용만의 장점을 대표팀에서 활용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청용의 활용 방안은 앞으로도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측면 수비 전환은 장점보다 단점이 컸다. 아우베스처럼 위대한 선수도 나이를 먹으면 수비적인 문제 때문에 미드필더로 올라갈 정도로, 측면 수비수의 수비력은 중요한 요소다. 이청용 실험을 통해 개선하기 힘든 문제들이 발생했다. 한국의 두 경기는 여전히 이청용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줬지만, 측면 수비는 답이 되지 못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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